폭풍우 치던 밤에

태풍 볼라벤이 북상하던 날, 나는 시골 어머니 집으로 갔다. 어머니는 콩대, 고양이 밥그릇, 호미, 빈 화분 등 바람에 날릴 만한 것을 몽땅 창고에 넣었다.

심지어 마당에서 놀던 고양이 두 마리도. 당신은 아마 이번 태풍이 고양이도 날려버릴 것이라 판단하신 모양이다.

바람이 심상치 않게 불기 시작한 저녁 무렵, 진주 집에서 아내가 전화를 했다. 아내는 아무래도 유리창에 젖은 신문지를 붙여 보강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재난 대비 방송에서 방금 보도한 따끈따끈한 정보라는 말에 내 귀가 팔랑거렸다. 나는 슬그머니 현관으로 가서 아까 유리창마다 대각선으로 붙여 놓은 노란색 테이프를 과감하게 떼버렸다. 그리고 아내가 권장한 작업에 들어갔다.

세상에 말처럼 쉬운 것이 있으랴. 분무기로 물을 뿜고 신문지 양 귀를 잡아 유리창에 반듯하게 붙이는 작업은 천장 도배보다 더 힘들었다. 어찌어찌 겨우 창문 한 짝을 붙였을 즈음, 창원에 사는 누님한테 전화가 왔다. 그 집도 유리창에 신문지 붙이기가 한창이란다. 누님이 말했다. “신문지를 실내 쪽에서 바르면 소용 엄따. 바깥쪽에서 붙여야 된다 카더라!”

아뿔싸. 누님의 카더라 통신을 증명이라도 하듯, 유리창에 붙어 있던 내 작품들이 스르르 떨어져 내렸다. 물기가 증발되면서 유리와의 접착력이 저하된 것이다. 원래부터 팔랑귀였던 나는 누님의 말도 믿어보기로 했다.

그래서 신문지를 옆에 끼고 비장한 마음으로 현관문을 나섰다. 아! 강풍이 깽판을 치고 있었다. 내 머리카락이 쑥대머리가 되고 옷이 깃발처럼 나부꼈다. 그 와중에 고군분투하여 어렵사리 붙인 신문지는 불법 전단지처럼 뜯겨 하늘을 날았다.

오기가 발동했다. 나는 분무기를 던져버리고 세숫대야에 물을 퍼서 유리창을 향해 뿌렸다. 그리고 떡메를 치듯 신문지를 발랐다. 태풍도 ‘진짜 한번 해보자는 거냐!’며, 내 옆구리에 끼고 있던 신문지를 낚아채 내동댕이쳤다. 결국 우리 모자는 항복하고 집 안으로 후퇴했다.

초대형 태풍 볼라벤이 밤새 지붕을 잡고 흔들었다. 나는 내 안의 불안과 공포를 다독거리다 거실로 나갔다. 그런데 휘청휘청거리는 유리창 너머, 누군가 외롭게 태풍과 맞서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것은 나무였다. 무궁화나무 울타리가 강 쪽에서 들이닥치는 바람을 온몸으로 막고 있었다. 무자비한 태풍이 억센 손으로 나무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흔들었다. 나무는 뿌리가 뽑힐 듯 이리저리 휘둘렸지만 기적처럼 버티고 있었다.

제 분에 못 이긴 바람이 도적처럼 울타리를 넘어왔다. 마당 가장자리에 있던 관목들이 야윈 가지로 폭풍의 길을 막았다. 나무는 잎이 찢기고 가지가 부러지면서도 눈물겨운 저항을 멈추지 않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는 숨을 죽인 채 중얼거렸다.

고맙다. 나무야. 미안하다. 나무야. 다음 날 아침, 마당은 상처 난 나무의 잔해들로 가득했다. 밤새 탈진한 나무가 파리하게 지쳐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새 떼가 날고 있었다. 대열을 지어 나르는 새들은 사령처럼 날갯짓을 하였다. 태풍이 물러가고 있다는 신호였다.
최형식 & 일러스트 유기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