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란 조하르 감독의 인도 영화 ‘내 이름은 칸’

이라크 전쟁 발발 이후 할리우드 영화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이라크전’을 다룬 영화, 혹은 그렇지 않은 영화로 나눌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이러한 양상에 더하여 할리우드 영화에 대한 새로운 기준이 하나 더 있었으니, 바로 2001년 9월 11일의 9.11테러다.

그러나 무수히 쏟아졌던 이라크전을 소재로 한 영화들, 혹은 9.11테러를 소재로 한 영화들 대부분은 철저히 미국인들의 시각에서 그려졌다. 미국인, 특히 참전한 미군들의 정신적 피해나 충격, 그로 인한 사회 부적응 등 그들의 피해만을 부각시킨 것이다. 그런데 여기 그런 할리우드 영화들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낸 영화가 하나 있었으니, 바로 ‘내 이름은 칸’이다.

아스퍼거장애를 앓고 있는 영화 속 주인공 ‘리즈완 칸’. 어딘가 어눌해 보이고, 걸음걸이, 말투 등 모든 면에서 정상인들과 차이점을 보이지만, 무엇이든 고장 난 것도 척척 고치고, 뛰어난 숫자 개념과 집중력 등 방대한 지식을 소유한 그가 바라보는 세상은 오로지 이분법이다.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 좋은 행동을 하는 사람과 나쁜 행동을 하는 사람!’

칸에게 있어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판단하는 기준은 오로지 그 사람의 행동이다. 종교도 피부색도 언어도 그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지는 않는다. 그런 그가 미국 대통령을 만나야 한다며, 아니 만나겠다며 커다란 배낭 하나를 멘 채, 무작정 ‘워싱턴 D.C’로 향해 간다. 바로 이 영화의 첫 장면이다. 이렇게 시작된 영화는 ‘칸’의 내레이션과 함께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그리고 대통령을 꼭 만나야 한다는 그의 절박한 이유 속에 바로 9.11테러가 있음이 밝혀진다.

칸은 한눈에 반한 여성 ‘만디라’ 그리고 그녀의 아들 ‘사미르’와 알콩달콩 예쁜 가정을 꾸렸다. 하지만 이들의 행복은 이내 산산조각이 난다. 바로 칸이 ‘무슬림’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9.11테러 후 미국에서의 무슬림은 함께 살 수 없는 악의 화신, 분노의 대상, 소외시켜야 할 차별의 대상으로서만 존재했다. 그 혼란의 와중에 맞게 되는 사미르의 비통한 죽음. 만디라는 칸을 향해 울부짖는다.

“그 아이는 성이 칸이라서 죽었어. 내가 당신과 결혼하지만 않았다면 죽지 않았을 텐데. 가서 미국 대통령에게 말해! 우리 아이는 테러리스트가 아니라고!”

“My name is Khan. I’m not a Terrorist!”

칸은 오직 이 한마디를 미대통령에게 전하기 위해 길을 떠난다. 그것이 사랑하는 아내를, 그리고 자신 때문에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아들을 위하는 유일한 길이기에.

이 영화가 많은 부분에서 감동을 주는 이유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IQ 168의 아스퍼거증후군을 가진 한 남자가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벌이는 고군분투에 빠져들고, 이윽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이를 때쯤 우리는 우리의 의식 안에서 어떤 작은 변화가 일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바로 편견을 깨뜨리는 의식의 변화! 한쪽 방향에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의 입장까지도 바라볼 줄 아는 넓은 의식으로의 전환이다.

우리 역시 누군가를 판단할 때, 보편적, 일반적 기준들을 들이대지 않는가. 보통 흑인들이 그렇다더라, 무슬림들이 그렇지, 동양인들은 다 그래, 하는 식으로 말이다.

감독 ‘카란 조하르’는 그렇게 세상 사람들이 어떤 판단을 할 때 들이대는 일반화의 오류, 그 편견이 가져오는 참극과 비극에 대해 말하고 있다.

배정희 문화칼럼니스트

배정희님은 1974년생으로 계명대 회계학과를 졸업했으며, 2009년부터는 자신의 블로그에 ‘누비아’라는 이름으로 영화, 드라마, 예능의 리뷰를 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