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 제천 의림지

호수에 섬이 있고, 노송과 버드나무가 우거진 제방에 오래된 정자까지 있다. 가야금 선생 우륵이 둑을 쌓고 여생을 보냈다는데, 낭랑한 선율에 물결과 산 그림자가 춤을 췄을 법하다. 협곡 앞 누각에 앉아 다리만 달랑달랑 내놓은 청춘들, 단풍 앞에서 으스대며 쏟아지는 인공 폭포. 무지개형 목교와 늘어진 버드나무 가지. 다들 멋스럽다. 그저 오래된 방죽일 거라고만 생각했던 의림지가 이토록 예쁠 줄이야!

의림지는 전북 김제의 벽골제, 경남 밀양의 수산제와 더불어 삼한 시대에 축조한 3대 인공 저수지이다. 매끄러운 산을 끼고 있어서 풍광이 수려하고 포천 산정호수나 진안 마이산처럼 산 그림자도 깊다.
위치는 충북 제천시 모산동 해발 871m의 용두산 남쪽 자락. 도심에 가까워 주말이면 시민이 많이 찾는다. 호수 둘레는 1.8km. 저수량은 약 50만m2, 수심은 8~13m. 안내문에는 몽리면적 197m2라고 씌어 있다. 몽리란 입을 몽(蒙), 이로울 리(利)로 저수지 물의 혜택을 입을 수 있는 농토의 면적을 나타낸다.

그런데 제방은 언제 축조됐을까? 우륵 또는 이곳 현감을 지낸 박의림이 쌓았다는 설이 있는데 그건 신빙성이 떨어진다. 제천시가 2009년에 탄소연대를 측정한 결과 저수지 생성 연대는 약 2000년 전인 삼한 시대라고 밝혔다. 6세기 중반 신라 진흥왕 시대의 인물인 우륵이나, 우륵보다 약 700년 뒤에 태어난 박의림도 이 시기와는 동떨어진 인물이다.

어쨌거나 중요한 것은 현재도 팔팔하게 저수지로써의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의림지가 국가 명승 제20호로 지정된 데에는 숲이 큰 몫을 했다. 제방을 걷다 보면 아름드리 노송을 비롯해 단풍나무, 벚나무 등이 눈에 띈다. 제천현지도, 의림지도 등의 옛 지도에 ‘제림(제방의 숲)’이란 말이 표기된 것으로 보아 애초에 나무를 다양하게 심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제방 숲은 한 폭의 그림 같다. 자전거를 타거나 사람들이 나란히 산책을 하며 호수를 구경한다. 영화나 CF처럼 멋지다. 조선 순조 7년(1807)에 세운 영호정과 1940년대에 만든 경호루 등 정자도 있고 수려한 인공 폭포도 있다. 높은 폭포가 아니라 눈높이에서 치맛자락처럼 펼쳐지는 물줄기가 단풍과 어우러져 마음을 환하게 밝혀준다.

호반을 한 바퀴 돌면 30분이 걸린다. 수면에서 ‘오리 배’ 페달을 밟는 가족들을 바라보거나 우륵정에 앉아 석양을 감상하면 행복의 느낌이 온몸을 감싸온다. 겨울이면 호수에서 공어축제(의림지 공어축제)가 벌어진다니 겨울 낭만을 즐기고 싶거든 다시 가봐야겠다. 공어는 빙어의 다른 이름이다. 속이 투명하게 보이기에 그렇게 불린다.

글 & 사진 이두영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여행지>의 저자

 

<여행 쪽지> 서울에서 의림지로 갈 때는 중앙고속도로 제천IC로 가서 제천으로 빠지지 말고 제천IC 전의 산림IC에서 국도로 빠져 탁사정에 들러 보자. 강을 따라 시골길을 따라 달리는 드라이브의 묘미가 있다. 탁사정은 제천 10경의 하나로 조선 시대의 정자다. 계곡 벼랑 위 소나무 숲에 정자가 있다. 탁사정이란 명칭은 중국 초나라의 정치가 굴원이 쓴 시 ‘어부사’를 참조했다. ‘맑은 물에서는 갓끈을 씻고 흐린 물에서는 발을 씻는다’라는 뜻의 청사탁영(淸斯濯瓔) 탁사탁족(濁斯濯足)에서 따온 말이다. 탁사정에서 봉양읍을 지나면 바로 제천으로 이어지고 금세 의림지에 도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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