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화를 다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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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2학년 다운이와 나원이는 같은 해 같은 동네에서 태어났다. 부모님끼리도 잘 아시는 사이라 매일 얼굴을 보다시피 하며 자랐다. 일곱 살 때 다운이가 이사를 가면서 헤어졌던 둘은 3년 후 청소년 마음수련 캠프에서 다시 만났다. 친구들이 조금만 건드려도 화가 났던 다운이와 동생과 잘 다투었던 나원이. 마음수련 명상을 하고 난 뒤 이제는 친구들의 친절한 상담자가 될 정도로 너그러워졌단다. ‘그냥 절친’에서 ‘진짜 절친’이 됐다는 두 소녀의 성장 이야기.

정리, 사진 김 혜 균


“니는 돌멩이한테도 화냈다”
다운   나원이 니는 진짜 내성적이었잖어. 낯가리고 말도 잘 안 하고.
나원   니는 진짜 많이 셌어. 다혈질에다 조금만 짜증 나도 발끈발끈하고.
다운   그래. 니가 내 성질 많이 받아줬지. 고맙다 친구야. 역시 베프(베스트 프랜드). 니는 학교보다 집에서 짜증 많이 냈다고 했지. 동생이 말 안 듣는다고.
나원   동생이 자기 멋대로 하고 자기 맘대로 안 되면 드러눕고 떼쓰니까.
다운   난 엄마 때문에 힘들었다. 조금만 잘못해도 혼내니까 무서웠어. 니 알잖아. 엄마가 안 돼, 하면 내는 더 이상 물어보지도 않았던 거. 스트레스받으니까 사소한 것에 짜증 내고, 학교에서 심했지. 맨날 남자애들이랑 싸우고, 막말하고, 그때도 난 멀쩡한데, 개념 있고 착한 나를 사람들이 가만 안 둔다고 생각했어.
나원   나는 맨날 동생한테 시비 걸고 때리고 화내고 그랬어.
다운   만만한 사람이나 친구들한테 그렇게 하게 되잖아.
나원   맞다. 친구들 중에 되게 순했던 친구를 골리기도 했지. 그래두 니는 내가 봐도 진짜 이상했단 말이야. 말하는 자체가 ‘뭐 했어? 왜 상관이야?’ 따지듯이 그랬어, 니는.
다운   그랬지. 누가 밥 먹었니? 물으면, 왜요? 밥이라도 사주게요? 밥 먹었으면 어쩔 건데요? 그러고, 지나가다 그냥 쳐다볼 수 있는 건데도 쳐다본다고 화내고. 날씨가 더우면, ‘우이씨~ 해를 다 뿌셔 버려!’ 그러고.
나원   니는 가만히 있는 돌멩이한테도 화냈다. 진짜 힘들었어.
다운   무조건 내 맘대로 하고, 내 맘대로 안 되면 그 자리에서 퍼부었어. 뇌에 필터가 없었던 것 같애. 할 말을 걸러서 해야 하는데 그냥 막 하는 거야. 근데 5학년 땐가 니가 친구들한테 따돌림을 받고 나서 점점 나처럼 돼가는 거야. 6학년 땐 우리 성격이 서로 바뀌었잖아. 니는 별거 아닌 거에 짜증 내고, 오히려 나는 들어주고.
나원   맞다. 잘 지내던 남자애들이랑 싸우고. 그땐 다 귀찮았단 말이야. 말 거는 것도 싫고.
다운   나두 5학년 때부터 애들이 만만하게 보니까 힘들었다. 찐따찐따 하면서. 엄마한텐 무서워서 말도 못 하고, 니한테 전화 많이 했잖아. 왜 학교에서 이런 취급당해야 하냐면서 울고. 그때 니도 안절부절못했잖아. 죽고 싶다 하니까 조금만 참으라고 괜찮다고. 그땐 살도 많이 쪘었어. 난 내 분에 못 이기면 미친 듯이 먹거든. 말 그대로 성격파탄자였다. 책 다 찢고 문제집 다 던지고, 막 울고.
나원   진짜 한 문장 한 문장 말할 때마다 욕이 들어갔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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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나원 평상시엔 온순하다가도 동생과 다툼이 있으면 폭발하는 성격에 별것 아닌 일에 짜증도 잘 냈다고 한다. 하지만 명상 후 엄청나게 변화했다. 소심하고 겁 많은 성격도 크게 바뀌었다.

애들한테 상처 준 게 미안해 펑펑 울었어
다운   그때 정말 맨 밑바닥까지 갔다. 친구 관계도 성적도 부모님하고도. 그때 니한테 하루에 몇 번씩 문자 하면서 청캠(청소년 마음수련 캠프) 가자고 졸랐잖아. 진짜 마지막 소원이다 사람 살리는 셈 치고 제발 같이 가자고. 그전엔 솔직히 엄마가 명상하라 해도 그렇게 절실한 적은 없었다.
나원   난 원래 명상하는 건 재밌었는데. 수영하고, 놀이공원도 가고 새로운 친구도 사귈 수 있었으니까.
다운   명상하면서 선생님, 엄마, 아빠를 떠올리는데, 감정이 복받쳐 올라오니까 처음엔 버리기가 힘들었어. 선생님한테 혼났던 거, 엄마 아빠와 싸웠던 거 버리면서 계속 울었다. 그게 허상인데 버리면 없는 건데, 아무것도 아닌 걸 붙잡고 슬프다고 괴롭다고 죽고 싶다고 언제까지 들고 있어야 하냐고, 이거 들고 있으면 내가 만신창이가 되는 걸 아니까, 제발 버리게 도와달라고 목메어 울었데이.
나원   난 동생하고 싸웠던 거, 친구한테 집착하는 마음을 많이 버렸다. 따돌림당했던 것도 버리고….
다운   내도 친구들 많이 버렸다. 근데 진짜 상처 준 게 너무 미안해서 펑펑 울었다. 얼마나 막말하고 못되게 굴었으면 애들이 나한테 그랬을까. 내가 보낸 하나의 화살이 백 개로 돌아오더라. 말을 함부로 뱉으면 안 된다는 걸 그때 알았다.
나원   나도 그랬다. 다행인 건 명상하면서 저 친구도 나고, 이 친구도 나라는 걸 알게 되잖아. 친구한테 나쁜 말을 하면 나한테 한 것과 똑같다는 것도 알게 되고.
다운   엄마한테 왕따당한 거 이야기했을 때 ‘니가 한 만큼 돌아온다. 그건 알아야 된데이’ 이러시는 거라. 처음엔 엄마가 내 편을 안 들어줘서 섭섭했는데 명상하니까 무슨 말씀인지 알겠더라. 사실 어른들이 하는 말을 우리는 잔소리로 듣잖아. 근데 명상하고 달라지는 거 같애.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말이라는 거 알게 되지.
나원   명언인데!(웃음) 그거 나도 되게 느끼고 있다. 동생 괴롭힌 거, 친구한테 막말한 거 다 미안했다. 엄마한테 짜증 낸 것도 미안하고.
다운   나도 엄마한테 쌓인 게 많았지만, 명상하면서 엄마가 아빠한테 받은 스트레스를 나한테 푸는 걸 알겠더라. 그냥 엄마가 불쌍했어. 미안하기도 하고. 엄마가 우리한테 집착이 강했어. 우리만은 잘됐으면 좋겠고, 좋은 대학 가야 하고. 아빠도 큰딸이라고 날 강하게 키우려 했어. 맨날 기둥이다, 니가 우리 집 짱이다, 니가 잘돼야 동생이 잘된다 하고. 엄마가 수련하고 많이 바뀌었는데도 나는 내 틀로 보니까 엄마가 변한 줄을 몰랐어. 처음엔 엄마가 옛날엔 잘못하면 때렸는데 말로 조용조용하니까 그게 더 무서운 거야. 나중에 확 폭발할까봐. 근데 끝까지 좋은 말로 하시는 거야. 우리 엄마가 왜 그러지? 그랬다.
나원   우리처럼 어른들도 마음을 버리면서 틀이 깨지니까 관대해지고 남의 입장에서 이해를 잘하게 되니까 변하시는 것 같애.
다운   내 틀이 네모난 창틀이라면, 다른 사람은 둥글 수도 있고, 세모일 수도 있잖아. 그 사람을 내가 맞춰줄 수도 있는 건데 내 네모 틀에 맞추려고, 그 사람을 깎아내리거나 상처 주고 잘라 버렸잖아.
나원   맞아. 근데 그런 게 없어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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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다운 초등학교 2학년 때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심리 치료를 권유받을 정도로, 제 분을 참지 못하면 머리카락을 뜯는 습관이 있었다. 지금은 공부도 스스로 하고, 특히 친구들과의 관계가 좋아졌다고 한다.

내 별명이 ‘엄마’야, 편한가봐
다운   정말 명상은 지우개 같아. 그 틀을 조금씩 지워주니까. 옆 창틀도 없어지고 위의 창틀도 없어지고. 텅텅 비워지니까 네모도 세모도 받아줄 수 있고 관대하게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이 돼.
나원   우리도 이제 사소한 것에 짜증 안 내잖아. 완전 관대, 관대.
다운   대박! 우린 베프(베스트 프렌드) 비비(베스트 오브 베스트)!! (웃음)
나원   난 어쨌든 이 명상 끝까지 할 거야. 어쩔 땐 애들하고 얘기하다 보면 좀 답답할 때 있지 않나? 난 답답하다. 분명히 안 좋을 걸 알면서도 하고 나서 후회하고. 우리는 안 좋은 일 있으면 마음 비우면 되잖아.
다운   싸우고 나서 힘들다고 울고. 사람들이 너무 불쌍해. 자신을 못 이겨서 힘들어하잖아. 한 번만 돌아보면 자기 잘못인 줄 알게 되는데, 무조건 남 탓 하고 자기 탓인 거 인정하기 싫어하잖아.
나원   전엔 동생하고 싸워도 무조건 동생 잘못이다 생각했는데, 마음을 버리니까 내가 잘못했다는 거 알겠어.
다운   나도 친구들한테도 사과했어. 내가 왕따시킨 애한테 전에 못되게 굴었다고 진심으로 사과하니까 그 친구도 나한테 못할 짓 했다고 미안해하더라. 이제 뇌에 큰 필터가 생긴 거 같애. 옛날엔 막말했는데 지금은 할 말만 하고. 그러니까 애들이 나를 좋아해줘. 완전 용 됐지.
나원   니 진짜 달라졌어. 똑같은 말을 해도 기분 나쁘게 안 하고, 성격도 되게 순해졌다. 나도 요즘엔 친구랑도 잘 지내고 엄마랑도 연애상담 하고 그래. 전엔 엄마랑 말할 때 뭔가 편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편해. 난 또 친구 집착이 진짜 강했거든. 화장실도 혼자 못 가고, 혼자 길도 못 다니겠는 거야. 친구 없으면 죽을 거 같고, 외톨이가 된 거 같고, 왕따당할 거 같은 불안감, 그런 게 없어졌다.
다운   내가 그랬잖아. 옛날에 내 주위엔 친구가 없었다고. 전엔 솔직히 너밖에 없었잖아. 근데 요즘은 친구들이 다가와. 상담도 진짜 많이 들어 와. 하루에 5명씩 해주는 거 같다. 내 별명이 ‘엄마’야. 그만큼 편한가봐.(웃음)
나원   나도 애지만 요즘 애들 스트레스 많다.
다운   솔직히 부모님들이 자꾸 자기 틀에 가두려고 하시니까 더 반항하게 되잖아. 근데도 어른들은 자기 탓이라 안 해. 그래서 부모님들이 먼저 명상을 해야 하는 것 같애. 요즘 엄마한테 고마운 게 나를 존중해주셔. 옛날엔 엄마 틀에 맞추려 했는데 지금은 나를 인격체로 대해 줘. 그러니까 나를 믿으시는구나 싶어 안심이 돼. 전엔 뭘 해도 엄마가 무섭고, 혼날 것만 같았거든. 어떻게 변명하나, 무슨 말을 해야 믿어줄까, 그것 때문에 힘들었다. 근데 이젠 우리가 알아서 하잖아.
나원   맞아. 요즘 되게 느끼는 게 엄마, 아빠가 명상 안 하고, 성적으로 구속했으면 난 가출했을 거 같아.
다운   세상의 부모님들이 다 명상하셨으면 좋겠다. 그래야 애들도 바뀌고, 엄마도 아빠도 애들도 다 편해지니까.(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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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9. September 월간마음수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