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소 \'알바\'의 미친 존재감

 
 

 

백일성

 
그의 존재를 안 건 두세 달 전이다. 담벼락 하나를 두고 주유소와 우리 사무실은 붙어 있다. 담 너머에서 들려오는 우렁찬 소리에 언제부턴가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어셔옵셔~ 얼마 넣어 드릴까요~ 5만 원 주유합니다~ 뭐 도와드릴 거 없습니까~ 감솨~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일주일에 두세 번 그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는 나로서는 그의 존재를 확인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차를 대자마자 귀에 익은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그가 다가왔다. 그의 외모는 외국 모 타이어 회사의 마스코트를 닮았다. 그리고 그는 개그맨 이혁재의 눈을 가졌다. ‘기차 화통을 삶아 먹었냐’는 말이 나올 정도의 우렁찬 목소리로 귀에 익은 멘트를 나열한다. 나는 카드 한 장을 내밀었다. 잠시 후 10여 미터 떨어진 카운터에서 그가 뛰어오면서 외친다. “손님~ 거래 정지 카든데~ 다른 카드 있으세요~?” 난 속으로 생각한다. ‘그런 얘기는 이리 와서 해라. 현금 줄게. 이 눈치 없는 놈아.’

 

 
 
 

 
 

 
이것이 그와의 첫 만남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나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가끔 눈인사까지 나누는 사이가 됐다. 어느 날 주유를 마치고 자동 세차기 앞에서 그와 딱 마주쳤다. 오늘따라 세차기 앞에 쓰여 있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세차 할인권+1,000원’

나는 그 주유소의 5년 단골. 몇 년간 주유를 마치고 할인권을 받고 세차를 하면서 천 원을 내본 적은 없다. 소장님이나 가끔 다른 알바생이 지키고 있어도 눈인사만 나누고 세차를 했다. 빨리 들어오라는 그의 손짓이 보이고 우렁찬 목소리가 들린다. “어서 옵쇼~~”

창문을 열었다. 이혁재의 눈과 다시 마주쳤다. 그가 뭘 원하는 눈치다. 천 원짜리 한 장을 내밀었다. 오늘따라 천 원이 커 보인다. 그런데 그가 뭘 더 원하는 눈빛이다. 난 속으로 생각했다. ‘뭐? 뭐? 천 원 줬잖아?’ 그가 우렁차게 말한다. “손님~~ 세차 할인권과 같이 주셔야 됩니다.” 안 받아 왔다는 내 말에 특별히 봐준다는 듯한 그의 눈빛과 한마디.

“담부터 꼭 받아 오세요~ 들어가세요~ 중립하시고 브레이크 밟지 마시고~ 오라이~” ‘이런… 십자수.’

 

며칠이 지나고 그가 나에게 미친 존재감으로 다가온 사건이 있었다. 밖이 시끄러워 사무실 앞으로 나갔더니 싸움이 벌어졌다. 그 싸움의 당사자들은 우리 사무실 주변에 항상 불화를 일으키고 다니는 앞 건물 부동산 사장님. 내가 붙여준 별명이 ‘꼴통산’일 만큼 나잇값 못 하는 꼴통 사장님이다. 그런데 지금 그 사장님과 맞짱을 뜨는 존재가 바로 그였다. 어떤 사연으로 싸움이 붙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꼴통산 사장님이 말 한마디 못 하고 멍하니 서 있는 건 처음 봤다. 극도로 흥분해서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그의 말을 그대로 옮기지는 못하고 그냥 느낌만 적어 본다면….

“이런 씹장생… 눈깔사탕… 오징어 먹물… 쪽~ 사시미… 곱창… 줄넘기… 콱~ 쓰리 강냉이… 쓰리 쪽갈비… 요단강 건너… 이 세상 하직… 콱~ 밤길… 뒷짱구… 퍽~!!”

 

 
 
 

 

 
 

 
난 사십 평생에 처음으로 욕에도 랩처럼 음률과 리듬이 있다는 걸 알았다. 세 명의 동료 알바가 와서 그를 끌고 가다시피 하면서 일단락이 됐다.

그는 인상이 험악하다. 그는 눈치도 없다. 그는 융통성도 없다. 그는 앞뒤 안 가리고 대책도 없다. 그런데… 그런 그가… 부럽다.

중년으로 넘어가는 소심한 회사원인 나에게 요즘 그는 미친 존재감으로 다가온다. 그는 개성 있게 생겼다. 그는 당당하다. 그는 타협하지 않는다. 그는 용감하다.

오늘도 악성 거래처와 전화 통화를 했다. 목구멍까지 넘어오는 욕을 참으면서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담 너머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서 옵셔~ 얼마… 감솨합니다~” 난 끊어진 빈 수화기를 집어 들고 말했다. “수금해줘~ 이 십장생… 십자수…같은 쌔리야~ 눈깔사탕… 오징어… 쪽~ 곱창… 콱~ 쓰리 쪽갈비… 콱~ 밤길… 짱구… 퍽~~!!” 부하 직원이 물끄러미 날 쳐다본다. 속은 시원하다.ㅎ

 

 

 
 
 

올해 마흔두 살의 백일성님은 동갑내기 아내와 중학생 남매 그리고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평범한 가장입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 이야기 방에 ‘나야나’라는 필명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남기고 있으며, 수필집 <나야나 가족 만만세>를 출간한 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