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영혼들이, ‘돌아가라’ 말합니다


 
고무줄놀이
캄보디아에서 만난 아이들입니다. 익숙하거나 낯선 길 위에서 얻은 작은 영혼들…. 앞만 보고 내달리기만 하다가 문득 정신이 들어 돌아보니 가늠할 수 없는 울림이 가슴을 저며 옵니다. 잊고 있었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다시 돌아갈래
어릴 적엔 빨리 어른이 되길 누구보다 원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힘없는 어린 처지가 싫었습니다. 언젠가부터 오히려 어른이 된 내가 싫었습니다. 다시 돌아가고 싶습니다. 이젠 어디가 길인지 조금 알 것 같습니다. 낯선 길 위에서 만난 한 소녀의 가늠할 수 없이 우아한 미소 앞에 서서 이젠 행복하렵니다.

 
 
누드 사진 한 장
투둑대며 내리는 빗줄기 속에서 실오라기 하나 남김 없이 홀라당 벗고 있는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고인 빗물에서 뒹굴며 물장난을 치고 있는 모습이 번쩍 눈에 감겨왔지요. 가만히 있을 수가 있나요. 허락이야 나중에 사탕 몇 개랑 바꿔 얻자는 묘수를 쓰며 그냥 셔터를 누를 수밖에요. 쉴 새 없이 웃고 떠들며 장난을 멈추지 않습니다. 벗어던졌던 옷을 빗물에 담그며 딴에는 빨래질을 합니다. 가엾은 애들 어미에겐 빨랫거리만 늘어날 일인데, 사진사는 룰루랄라 콧노래를 불렀습니다.

작은 우주
한순간에 쏘옥 빠져들었습니다.
잘 웃지도 않고 별다른 몸짓도 보여주지 않는
수줍은 한 아이에게 그냥 반해버렸습니다.
커다란 눈자위에 담긴 맑고 투명한 눈동자.
세상 모두 담아도
채워지지 않을 만큼 가늠할 수 없이 깊기만 합니다.
아무런 모자람 없이 그렇습니다.

 

천사의 새치기
처음엔 요 녀석에게 별 관심이 없었답니다. 그 옆에 아주 귀여운 놈이 따로 있었거든요. 가만히 지켜보다가 한 컷 건지려 했지요. 이제 되었구나 싶어 셔터를 누르는 순간, 살살 눈치만 보며 기웃거리던 요 녀석이 불쑥 뛰어든 겁니다. 도저히 내칠 수 없는 환한 웃음을 코에 걸고…. 어쩌겠습니까. 마냥 따라 웃을 수밖에요.

 

이제 나서는 길
이젠 가야 한다며 마음을 먹었습니다. 아픔이 짙은 땅입니다.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그 땅입니다. 그렇지만 숨소리 같은 하얀 미소가 더없이 곱기만 한 그런 곳입니다. 주려고 간 줄 알았다가 오히려 한가득 받아오기 마련인, 바로 그런 곳입니다. 이 사내 녀석처럼 맑은 웃음다발을 들이대면서 다시 돌아오라며 성화이니 어쩌겠습니까. 가야지요.

사진가 임종진은 <월간 말>과 <한겨레신문> 사진기자를 지냈으며, 오랫동안 ‘대상과의 소통을 통한 사진 찍기’ 강좌를 진행해왔다.
사진집으로 <천만 개의 사람꽃> <어디 핀들 꽃이 아니랴>(공저) 등이 있다.
사진 출처 <천만 개의 사람꽃>(넥서스BOOKS) : 사진가 임종진이 세계 곳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