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장면 세 그릇

 

중학생 2학년 때였다. 기차를 타고 수학여행을 떠났다. 점심때가 되어서 부산역에 도착했다. 선생님은 역 근처 중국집에서 자장면 한 그릇씩 먹고, 경주로 가는 열차로 갈아탄다고 하셨다. 아! 자장면! 우리는 환호성을 질렀다.

부산역을 빠져나와 중화반점을 향해 조랑말처럼 달렸다. 빨간 차양이 드리워진 입구를 통과하자 뚱뚱한 반점 주인이 우리를 맞이하였다. 그는 속속 도착하는 들뜬 조랑말들을 2층 내실 안쪽 자리부터 착착 배치하였다. 선착순에 강한 나는 제일 먼저 자장면을 받아 그야말로 게 눈 감추듯 한 그릇을 해치웠다. 양이 너무 적었다. 간에 기별도 오지 않았다. 아쉽기 짝이 없지만 별수 없었다. 나는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향해 굶은 사람처럼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뒤늦게 좁은 계단을 우르르 올라오는 친구들 덕분에, 나는 밀리다시피 하여 뒷걸음질을 쳤고, 어쩌다 보니 자의 반 타의 반 빈자리에 다시 앉게 되었다. 친구 녀석들은 모두 자장 그릇에 코를 박고 있는지라 이런 상황을 감지하지 못했다. 바쁜 종업원도 내 앞에 또 한 그릇의 자장면을 내려놓았다. 호박이 넝쿨째 떨어진 기분이었다. 그렇게 뚝딱 두 그릇을 비우고 나니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 미련 없이 일층으로 뚜벅뚜벅 내려오는데, 아래층에 계시던 선생님이 나를 보고 꽥 고함을 질렀다.

“야, 임마! 넌 왜 또 내려오는 것이야?”

아이들 지도하시느라 가뜩이나 시장하실 선생님에게 나는 차마 진실을 말할 수 없었다. 나는 우물쭈물하였다. 그런 내 모습이 당신이 보시기에 힘없고 배고파 보였는지 선생님은 주방을 향해 소리쳤다.

“아저씨, 여기 자장면 한 그릇 더 빨리 갖다 주소!”

선생님은 당신 자리를 옆으로 비켜 공간을 만들고 나를 불러 앉혔다. 그리고 내 귀를 잡아당기며 ‘짜식, 멍청하게 제 자리도 못 잡고 말이야’라고 속삭였다. 내 귀가 당나귀 귀처럼 늘어져도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왕재수! 나는 선생님 옆에 다소곳이 앉아 나무젓가락으로 마침내 세 그릇째 자장면을 비비기 시작했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호박이 넝쿨째 무려 세 덩이나 떨어졌는데 왠지 마음 한구석이 찡했다. 한때 가난한 것이 부끄러워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기억이 불쑥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국민학교 6학년 때. 수학여행을 떠나는 아이들이 역전에 집결해서 완행열차를 기다리던 그 시간, 가정 형편상 수학여행을 가지 못한 아이들은 강둑에 모여 새마을 청소를 하였다. 우리는 빗자루를 하나씩 들고 긴 강둑을 쓸었다. 하필 그 시간에 멀리서 기적 소리가 들려왔고, 잠시 후 열차가 강둑 위 철교를 지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강둑에서 비질을 하던 아이 한 명이 갑자기 기차를 향해 큰 소리로 친구의 이름을 불렀다. 저 멀리 달리는 기차에서 차창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손을 흔드는 아이가 보였다. 손나발을 만들어 이쪽을 향해 무어라고 소리치는 아이들도 있었다. 우리 학교 아이들이었다. 나는 못 본 척 고개를 돌렸다.  글 최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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