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게 돌아온 고향, 편안하게 지내셨으면 하는 마음이지요

사할린동포후원회 오창석 회장

취재 최창원 사진 홍성훈

“사할린 분들은 고국을 떠나서 젊음을 거기서 다 바친 사람들이에요. 낯선 타국에서 그렇게 고생하다가 돌아왔는데, 외롭게 떠나시는 게 안타까웠습니다.”

경기도 안산시 고향마을, 사할린 동포 840여 명이 모여 사는 곳이다. 안산에서 장례식장을 운영하는 오창석(63)씨는 이분들에게 ‘참 고마운 사람’으로 통한다.

고향마을이 형성된 것은 지난 2000년 2월 일제 강점기 때 사할린으로 강제 징용을 당했던 분들에게 고향에 돌아올 길이 마련됐다. 하지만 영주 귀국 대상자를 1945년도 광복 이전에 출생한 사람으로 제한했기 때문에 자녀들은 모두 사할린에 두고 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 고령의 분들이었고, 한두 달도 안 돼 돌아가시는 분들이 생겼다.

하지만 세상 떠나는 길 배웅할 가족조차 없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오창석씨가 직접 수의를 입혀 드리고, 염을 하며 장례식을 치러드리기 시작했다.

2002년에는 아예 ‘사할린동포후원회’를 만들어, 설날이면 떡국을 끓여드리고 5월에는 어버이날 잔치도 해드렸다. 마을 회관 짓는 것도 돕고, 11월엔 김장을 해서 나누어드렸다.

“어렵게 찾은 고향에서 조금이나마 편안하게 지내셨으면 하는 마음이지, 특별한 건 없어요. 진짜 뭐 한다고 하기가 부끄러운데….”

 

쑥스러운 듯 목소리를 낮추는 오창석씨. 하지만 주변에서는 이미 그를 ‘삶 자체가 봉사인 사람’이라 말한다. 사할린 동포뿐 아니라 평소에도 나누고 사는 게 일상인 사람이라는 것.

그가 이렇게 나누고 사는 걸 당연하게 여기게 된 건 어린 시절 경험 때문이라 한다.

오창석씨는 1948년,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14살 때 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시고, 어머니마저 일본으로 떠났다. 그 이후 고생은 말로 다 할 수가 없다 한다. 그는 “나중에 잘살게 되면 나처럼 배고픈 사람들을 도우며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고기잡이, 야채 장사, 노동일….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영어 한마디 할 줄 몰랐지만, 외제 물건 장사를 할 만큼 수완과 배짱도 있었다.

생활이 자리 잡히자 젊은 시절의 약속대로 그는 주변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무의탁 노인 시설을 만들어 17년 정도 운영을 했고, 13년 전부터는 장례식장을 운영하면서 어려운 분들의 장례를 무료로 지내 드렸다. 21년째 많은 양의 김장을 해서 양로원, 고아원 등에 나눠주고, 생면부지의 학생에게 신장을 기증하고…. 그의 나눔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가족들도 처음에는 반대를 많이 했어요. 남들한테 해줘야 소용없다면서.
뭐 소용 있으라고 하는 건가요? 그런 거 생각하면 아예 주지 말아야죠.”

앞으로의 계획은 ‘사할린동포후원회’를 전국 단위로 넓히는 것. 그리고 ‘만원의 집’이라는 무료 급식소도 만들고 싶다 한다. 만 명이 모여 만 원씩 내면 1억, 1억이면 1년 365일 무료 급식을 해줄 수 있을 것이다.

“남을 돕는다는 게 어려울 거 없어요.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나눠주고,
어려운 사람 옆에 같이 있어주는 거예요. 그런 생각을 품은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오창석씨의 선행을 알고 찾아온 분이 그가 운영하는 장례식장에 벽화를 그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