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양천구 김구이 봉사단 ‘김 굽는 아줌마들’

김종순, 박종득, 이춘희, 이청미씨 (왼쪽부터)

취재 김혜진 사진 홍성훈

“형편이 어려운 어르신들에게 반찬 배달을 한 적이 있었어요. 제일 편하게 드실 수 있는 반찬이 뭘까 생각하다가 복지사 선생님한테 제안한 게 김이었어요.” 김구이 봉사단의 맏언니, 이춘희(64)씨는 매주 금요일이면 서울 양천구 신정동에 위치한 자원봉사센터로 향한다. 그렇게 봉사자들이 속속 모이면 이내 고소한 김 굽는 냄새가 퍼지기 시작하고, 한쪽에선 김을 굽고, 한쪽에선 포장을 하느라 분주해진다.

다섯 아줌마로 구성된 ‘김구이 봉사단’은 매주 금요일 오후 1시부터 3시간 동안 김을 굽는다. 이렇게 구운 1,000장의 김은 해누리 푸드마켓을 통해 양천구의 기초생활수급권자 4,000가구에 전달된다. 해누리 푸드마켓은 서울시와 양천구가 운영하는 곳으로, 한 달에 한 번 기초생활수급권자들에게 4~5가지의 식료품을 무상으로 지급하는데, 김구이 반찬은 쌀, 라면과 함께 인기 품목으로 꼽힌다고 한다.

3년째 김구이 봉사단을 하고 있는 맏언니 이춘희씨는 “50대에 들어서며 자식들을 다 키우고,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생각한 것이 봉사”였다고 말한다. 그 후 7여 년간 어르신들을 위한 이동 목욕, 반찬 배달 등을 하면서 홀로 지내시는 어르신들을 볼 때마다 안타까웠다는 그녀는 자원봉사를 하면서 알게 된 김종순(58)씨와 김구이 봉사단을 처음 만들었다.

“김을 구울 때면 혼자 지내시는 어르신들, 결손 가정 어린이들이 떠올라서, 다들 맛있게 드시고, 건강하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한 장 한 장 굽죠.”

김을 구워야 하는데 비라도 오는 날이면 김이 눅눅해질까 봐 난로를 피면서 굽고, 몸이 아파서 못 나오면 대체할 봉사자를 찾는다. 박종득(59)씨의 경우도 2년 전 아파서 못 나오게 된 분을 대신해서 왔다가 김구이 봉사단에 합류했다.

“봉사도 하며 살아야지 하면서도 엄두가 안 나잖아요. 문턱을 넘기가 참 힘들었는데 아픈 분 대신 왔다가 계속하게 됐어요. 봉사는 돈도 시간도 여유가 있는 사람만 하는 거라 생각했는데, 마음만 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거더라고요.”

이웃과 함께하는 기쁨은 삶의 변화로 이어졌다. 박종득씨는 수요일엔 봉사단에서 만난 김종순씨와 함께 장애인 복지관에서 어르신들 안마도 해드리는 등 점점 봉사가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어갔다 한다. 그런 데엔 김구이 봉사단의 가족 같은 분위기도 한몫했다.

금요일 오전 요양보호사 일을 마치고, 바로 출근하는 그녀를 위해 도시락을 챙겨주는 언니들. 서로 알뜰살뜰 챙겨주는 반가운 얼굴들을 자주 보고 싶은 마음도 컸다는 그이다.

김종순씨 역시 봉사를 하면서 갱년기를 이겨낼 수 있었다 한다.

“봉사한 지 벌써 11년째예요. 항상 나와 가족이란 울타리 안에서만 살아오다가 주변에 어렵게 살아가시는 분들을 뵈면서 감사하는 마음도 배우고 나를 돌아보게도 되었지요.”

거창하지는 않지만 다른 사람들을 위해 무언가를 하면서 삶에 자신감도 얻었다고 한다.

김을 구우면서 그동안 있었던 일, 가정의 대소사나 남편, 자식, 시댁 이야기 등 속에 묻어둔 것들을 털어놓으니 마음도 가벼워지고, 좋은 일을 한다는 기쁨도 있으니 ‘일석이조’ 아니겠냐는 김구이 봉사단 아주머니들.

푸드마켓의 소장인 이청미(53)씨가 주부들에게 당부의 말을 전했다.

“집 안에만 있지 말고, 밖으로 나왔으면 좋겠어요. 나와서 움직이면 나이가 거꾸로 가는 기분이 들어요. 나누고 살면 마음이 즐거워지고, 건강해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