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소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되다

비로소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되다

송순영 39세. 경기도 안성시 봉산동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후, 어머니는 파출부, 막노동을 하면서 4남매를 키우셨다. 엄마는 항상 ‘힘들다, 지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셨고, 그럴 때마다 난 하늘을 보며 다짐했다. ‘정신 차리고 살자’고. 당시 내 인생의 목표는 돈 많이 벌어서 잘사는 거였다.

 

그러다 스물두 살 때 연애를 하게 되었다. 길을 걷는데 나를 보고 쫓아온 그는 고위직 집안에다 유학도 다녀온 너무나 좋은 조건의 남자였다. 그 앞에 서면 내 속의 깊은 열등감이 고개를 쳐들었다. 일단, 학벌이라도 따고 싶었다. 당시 직장을 다녔던 나는 어렵사리 야간 전문대학에 진학했고, 5년의 연애 기간을 거치면서 자연스레 결혼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 어느 날 그가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4년제 대학으로 편입해 보자. 같이 노력하면 잘될 거야.” 서로 잘해보자는 거였지만, 내겐 큰 상처였다. 야간 전문대학도 얼마나 죽을 둥 살 둥 다녔는데…. 그가 야속했다. 인연이 아니다 싶어, 그날로 이별을 고했다.

너무나 괴로운 마음으로 보낸 6개월 후, 우연히 친구를 통해 한 남자를 만나게 되었다. 대학 졸업 후 골프장 운영을 하던 남자였다. 지칠 대로 지쳐 있던 나는 그럴싸한 모습에 마음이 기울었고 연애를 시작했다. 처음 남자 친구 집에 인사 간 날, 부모님은 쪽지 한 장을 꺼내시며 ‘며느리의 30가지 조건’을 쭉 읽으셨다. ‘안경 쓴 며느리는 안 된다, 두 부모님 밑에서 자라야 한다…’ 등등 까다로운 조건들이었지만, 이미 큰 상처를 받은 나로서는 이쯤은 아무것도 아니라 생각했다. 누구보다 잘 살 수 있다며 오기로 결혼을 강행했다. 하지만 주변의 우려대로 기막힌 상황이 펼쳐졌다. 남자는 소위 ‘마마보이’에다 부모님께 기대 살며 눈치만 보는 무능력한 남자였다. 결국 5년 만에 이혼을 했고, 실패한 인생의 괴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즈음 직장 동료로부터 우연히 마음수련에 대해 들었다. 그는 시골 아저씨 같은, 해맑은 모습이 늘 편안함을 주는 사람이었다. 내 마음도 편안해질 수 있을까….

수련을 하며 나는 사랑을 믿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단지 내 이상을 맞춰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다닐 뿐이었다. 열등감과 콤플렉스로 채워진 좁디좁은 마음이었기에 어떤 사랑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마음을 버리지 않으면 평생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끔찍했다. 감사하게도 나에게 수련을 알려준 그 직장 동료는 나를 대신해 혼자 계신 어머니를 살뜰히 돌봐주었고, 덕분에 나는 수련에 정진할 수 있었다. 나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지나온 상처와 열등감을 버리는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으니, 아무 걱정 말고 마음부터 다스리라고 말해주던 사람. 그 마음이 참 고마웠다.

그가 프러포즈 했을 때, 나는 펑펑 울고 말았다. 그 과분한 사랑이 차고 넘쳐서…. 남편은 지극히 평범한 남자다. 하지만 나에겐 은인이자 스승 같은 존재다. 그를 만나 콤플렉스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찾을 수 있었고, 참으로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