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에서

백두산에 갔습니다. 천지의 축소판인 소천지에 이르자 수피가 하얀 나무들이 파란 연못에 발을 담그고 있었습니다. 자작나무 사촌 격인 사스레나무였습니다. 사스레나무는 지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만 자라는 낙엽활엽수입니다. 거친 바람에 밀려 한쪽으로 비스듬히 누워 있던 사스레나무. 흰 껍질은 거칠게 벗겨져 있고 굽은 가지는 아무렇게나 뻗어 있을지언정, 백두산만은 내가 지키겠노라는 강인한 생명력이 느껴졌습니다.

백두산. 2006년 11월

“저 낭구레 연인 낭구라요.” 조선족 사진작가 맹철(길림성 안도현) 선생의 설명입니다. “바위에 뿌리를 박아 먼저 크고서니, 죽으면서 솔씨를 키워준다 말이오.” 그러고 보니 사스레나무들이 거친 바위 위에 뿌리를 내리고 위태롭게 서 있었습니다. 죽어가는 몇몇 사스레나무 주위에는 소나무 종류인 이깔나무가 함께 자라고 있었습니다. 척박한 땅에 먼저 뿌리를 내리고, 자신은 죽어가도 솔씨를 키워내는 사스레나무. 저 두 나무를 왜 연인 나무라 부르는지 선뜻 이해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큰 것은 늘 작은 것을 끌어안는 법이라는, 자연의 이치를 배울 뿐입니다.

사진, 글 김선규

백두산 정상에서 사스레나무를 생각했습니다. 거센 바람과 모진 추위를 이겨내면서 자라는 나무, 그 강인함으로 바위를 뚫고 자라면서 새로운 생명 또한 품어주는 나무, 이 사스레나무 앞에서 무슨 소원이, 어떤 다짐이 소용 있을까요. 그저 사스레나무처럼 살아야겠습니다.

백두산. 2006년 11월

사진가 김선규님은 1962년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나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습니다. 1987년 한겨레신문에 입사하여 시사주간지 한겨레21 초대 사진팀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문화일보 사진부 부장으로 재직중입니다. 보도사진전 금상, 한국언론대상, 한국 기자상 등을 수상했으며, 생명의 숲 운영위원과 서울그린트러스트 이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우리고향산책> <까만 산의 꿈> <살아있음이 행복해지는 편지93통> <희망편지>등이 있으며 <6시내고향>(KBS-1TV)에서 ‘강산별곡’을 진행했습니다. http://www.ufok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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