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소중한 나만의 보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여행책

장혜진 31세. 은행원. 부산시 해운대구 우동

대학 졸업반 때 취업에 성공해 24살부터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아무도 나를 구속한 사람은 없었으나 취직과 동시에 묘한 해방감(?)에 사로잡혀 여행 적금을 만들어서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국내외 가릴 것 없이 열심히도 다녔다. 주로 시간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였다.

하지만 왠지 허전했다. 그제야 가족 생각이 났다. 40여 년간 공직 생활을 해오신 아빠, 열심히 우리를 뒷바라지해오신 엄마, 가족과 떨어져 서울에서 공부하고 있는 남동생.

어릴 때에는 가끔씩 근교 여행도 가곤 했는데 직장 생활을 하면서 나만의 시간 갖기에만 급급해서 제대로 된 가족 여행 한 번 해보지 못했다. 그때부터 여행 적금에 열심히 더 돈을 모았다. 그로부터 몇 년 뒤 나의 작은 소망이 이루어졌다.

2011년 8월 여름휴가. 우리 가족 첫 크루즈 여행!

6박 7일 일정으로 인천항에서 출발하여 중국 상해, 청도, 제주도를 거쳐 다시 인천항으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아침, 점심, 저녁 맛있는 음식도 먹고 같이 운동도 하고 게임도 하고 칵테일 파티도 참석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점잖으시고 좀 과묵한 선비 같으신 우리 아빠, 애교 많고 말을 재미있게 잘하시는 우리 엄마, 별로 애교 없는 나, 꽃미남에 성격 좋고 유쾌한 우리 동생!

잠자는 시간 빼고는 계속 같이 있다 보니 밀렸던 이야기도 많이 했고 서로를 더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사실 나는 27년 동안 부모님과 같이 살았다. 그러다 2010년 타 지역으로 발령이 났고, 회사에서 제공하는 아파트에 살게 되면서 부모님과의 동거 생활이 끝이 났다. 주말에만 집에 올 수 있는데 그것도 나의 취미 생활과 노는 데만 정신을 쏟다 보니 집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다. 나의 빈자리를 많이 느꼈다고 말씀하시던 부모님과 밀린 이야기도 많이 했다. 온전히 6박 7일 동안 부모님, 동생과 함께하며 가족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도 그때의 설렘과 행복은 계속되었다. 이 추억을 오랫동안 간직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하다가 생각한 것이 바로 포토북! 여행의 기억을 꺼내어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사진을 실어 80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만들었다. 석 달이나 걸렸지만 완성하고 나니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세상에서 단 한 권밖에 없는 책이 완성된 것이다.

김은기 작.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60×50cm

Oil on canvas / 2012

 

부모님도 정말 좋아하셨다. 기분이 좋아 친구들, 직장 동료들에게도 보여주며 자랑했다. 반응이 꽤 괜찮았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추억을 포토북으로 만들어 보라고 강력 추천했다.

기쁠 때나 우울할 때나 심심할 때나 내가 만든 책을 보면 엔돌핀이 팍팍! 생겼다. 수십 번을 봤지만 지겹지 않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 녀석~ 넌 나의 보물 1호야~!’

그 책은 여전히 우리 집 거실 제일 잘 보이는 곳에 위풍당당하게 자리 잡고 있다. 오늘 저녁 식사 후 과일을 깎고 계시는 엄마를 지그시 바라보다 한마디 던졌다.

“엄마~ 우리 크루즈 여행 한 번 더 갈까?” “아니~ 그 비싼 거 한 번 갔다 왔으면 됐지~ 엄마는 충분히 만족한다. 그때만 생각하면 기분 좋다~” “딸내미 능력 된다, 괜찮다~ 이제 돈 잘 버는 사위도 있잖아~ 하하.” “아니~ 괜찮다 해도….”

계속 말하니 끝까지 거절하지는 않으시는 우리 엄마.ㅋㅋ 5년 뒤에 다시 한 번 크루즈 여행을 가자고 부모님과 약속했다. 그때는 우리 4식구가 아니고 인원이 더 늘어날 듯하다. 몇 달 전에 결혼을 해서 듬직한 남편과 정말 나를 친딸처럼 아껴주시는 시아버님, 시어머님도 생겼기 때문이다. 두 부모님을 모시고 남편까지 함께하는 여행이라니!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5년 뒤에 나만의 여행책2를 만들 수 있기를 기원한다.

무덤까지 갖고 가고픈 그 손수건

조건 60세. 부동산업. 캄보디아 프놈펜 골든시티 거주

1970년 여름 방학을 앞둔 고등학교 2학년의 파아란 꿈들이 포도송이처럼 익어가는 어느 날이었다. 친구인 창호 녀석이 허겁지겁 달려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야! 빅뉴스야!” “뭔데? 훈육 선생이 사고라도 났냐?” “그게 아니고 기독학생회에서 여름 방학 때 수련회를 부산으로 간단다.” “기독학생회에서 수련회를 가는데 개발의 달걀인 네가 무슨 상관인데?” “그게 아니고 여학생이 반절이란다.” 그 말에 우리는 곧장 접수한다는 기독센터로 줄달음을 쳤다.

기독교면 어떻고 불교면 어떠냐, 여학생이랑 일주일을 그것도 정식으로 학교의 허가를 받아서 가는 여행인데 지옥이라도 가자고 우리는 금방 늑대 가족이 되어버렸다.

기차는 이리역(현 익산역)을 출발하여 부산을 향해 노인네 가래 끓는 소리를 내며 달려갔다. 천장에 달린 선풍기는 고장 난 지 오래고 발 디딜 틈조차 없는 공간에서 겨우 자리를 잡아 여학생을 앉혔다.

찜통이 아니라 압력밥솥에 들어앉은 것 같은 더위였건만 내 눈에 여학생 하나가 확 들어왔다. 더위에 지쳐 무릎에 의지하여 잠이 든 친구에게 신문지로 부채질을 해주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나는 천사는 못 봤지만 분명 천사라고 믿어버렸다. 그것도 자기는 땀을 비 오듯 흘리면서 친구에게 부채질을 몇 시간을 해주는 그녀의 인내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쁘지는 않지만 김태희 정도의 미모에(과장법을 써서) 키는 170을 넘기는 S라인, 세상에 못 갖춘 것이 없는 그녀에게 나는 허물어지고 말았다. 그렇게 나의 짝사랑 열병은 시작됐다. 수련회에서 어느 날 땀을 흘리는 나에게 “땀을 많이 흘리네? 땀 좀 닦아” 하며 내미는 물방울 무늬의 손수건을 음흉한 계산으로 “빨아서 돌려줄게” 하며 바로 돌려주지 않은 그 얄팍한 계산은 그걸 빌미로 작업을 해볼 셈이었다(도둑놈).

김은기 작.

<With snowman>

41×32cm

Oil on canvas / 2013

백사장을 걸으며 되지도 않는 문학이 어떻고 윤동주의 서시를 맞는지도(분명 몇 군데는 틀렸음) 모르면서 중얼거리며 개폼을 잡던 그 여름은 분명 신의 계산 착오로 인한 우리의 잘못된 만남이었다. 그렇게 헤어지고 연락처 하나 없는 막막한 시간이 지나고 나의 그 열병은 더욱 발전하여 책가방에 매직으로 ‘문영미 사랑해’라고 써서 메고 다니고 그녀의 학교 앞을 수없이 헤매고 다녔다. 그런데 예비고사 시험장에서 우연히 그것도 같은 교실에서 만났다. 반가워하는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하고 싶었지만 하필 시험장이라 끝나고 해야지 했는데 그녀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대학 입시 시험장에서, 또 같은 교실에서 우린 다시 만났다. 우리는 인연도 보통 인연이 아니라며 서로 반가워했다. 하지만 그날도 부모님이 교문 앞에서 기다리고 계시는 바람에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10년이란 세월이 흐른 뒤, 친구의 죽음으로 인해 찾아간 대학병원에서 우연히 만난 그녀는 멋진 수간호사가 되어 있었다. “결혼했어?” “응! 이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야. 아이는 둘이고.”

나는 지금도 그 물방울 무늬의 수건을 고이 간직하고 있다. 마누라 몰래 43년을 간직하느라 고초도 많았고 사연도 많았다.

“그 해진 손수건을 뭣 땜에 신줏단지 모시듯이 하는지 알다가도 모르겄어.” 그래 당신은 모를 거다. 아니 알아서도 안 된다. 이것은 나만의 비밀이다. 그리고 영원히 무덤까지 가지고 갈란다. 죽을 때 어디에다 숨겨야 안 들키고 가지고 갈지를 나는 매일 머리를 싸매고 고민 중이다. 일간 좋은 생각이 떠오르기를 기도하며.

아빠의 사랑이 담긴 시계와 손난로

이준원 합천대병초등학교 4학년. 경남 합천군 대병면

안녕하세요? 저는 합천대병초 4학년 이준원이라고 합니다.

제가 제일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것은 시계입니다. 저의 10번째 생일 선물로 아빠께 받은 것이라 그런지 애지중지하는 물건이랍니다. 아빠가 “생일 축하해” 하시며 시계를 주셨을 때 너무 기뻤고 빨리 껴보고 싶었습니다. 뭔가 좋고 명품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건전지가 다 닳아, 가지는 않지만 날짜를 나타내는 기능도 있어 그냥 차고 다닙니다. 디자인도 디즈니가 팔로 시간을 가리켜 예쁘고, 시계 줄도 가죽으로 되어 있어 착용감이 좋습니다.

아빠는 생일뿐만 아니라 크리스마스와 각종 명절이나 기념일 때 저와 두 동생에게 선물을 주십니다. 손난로는 재작년 크리스마스 때 아빠께 선물을 받은 것인데, 기름을 한 번 채우면 5시간은 따뜻한 손난로입니다.

손난로를 처음 받았을 때는 손난로에 아직 기름을 넣지 않았는데도 따뜻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건 바로 아빠의 사랑이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난겨울도 손난로 덕분에 따뜻하게 날 수 있었고, 이번 겨울도 따뜻하게 나고 있습니다.

제겐 이 두 물건이 보물 1호입니다. 두 물건 모두 아빠께 선물 받은 것이라 제가 더욱 각별히 여깁니다. 시계는 제 책꽂이에 못을 박아서 항상 거기에 걸어놓고, 손난로는 책상 위에 올려놓습니다. 한 번도 잃어버리거나 고장 난 적이 없이 소중히 보관하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 보물이 앞으로도 잘 고장 나지 않고 나의 작은 친구로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보물을 주시는 아빠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평소에 저에게 정말 잘해주시고 장난도 잘 쳐주시고, 저를 키워주신 은혜에 감사하다는 말 이외에는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습니다. 지금은 아빠가 좋아하는 걸 잘 알지 못하니까 앞으로 아빠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와 동생들이 건강하고 엄마 아빠 말씀을 잘 들어야겠습니다. 아빠의 보물은 건강하고 화목한 우리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아빠가 건강하고 오래오래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김은기 작.

<행복한 정원>

65×53cm

Oil on canvas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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