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말하기 연습> 책 펴낸 KBS 아나운서 김재원

KBS-1TV <아침마당>은 1991년에 시작되어 지금까지 꾸준히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장수 프로그램이다.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기에 진행자의 역할이 특히 중요하다 할 수 있다. 근 5년 동안 이 프로를 진행해오며 진솔하면서도 시의적절한 멘트와 공감 어린 진행으로 많은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김재원(47) 아나운서. 그리고 지난 4월 <6시 내 고향>으로 자리를 옮긴 후에도 여전히 사람 사는 이야기들을 구수하게 전하던 그가 최근에 <마음 말하기 연습>이란 책을 펴내며 화제를 모았다. ‘상대방의 마음을 잘 듣고 싶어 마음을 말하는 연습 중’이라는 김재원 아나운서를 만나보았다.

지난 4월, 김재원 아나운서가 <아침마당>을 하차했을 당시, 해당 홈페이지에는 그를 떠나보내는 아쉬움을 담은 글들로 넘쳐났다. 한 시청자의 글은 그의 아나운서로서의 면모를 짐작게 한다. “김재원 아나운서를 처음 봤을 때는 젊고 말끔하게 생긴 그가 아주머니들 특유의 맞장구와 감성을 어떻게 맞출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런데 갈수록 이 아나운서는 출연진들과 방청객 어머니들에게 동화되어 갔다. 많은 얘기를 끌어내는 그의 반응과 표정은 이색적이었다. 말끔한 얼굴로 그렇게 푸근한 표정을 짓다니… 보고 싶을 거예요….’

<TV는 사랑을 싣고> <사랑의 리퀘스트> 등 주로 휴머니즘 프로그램을 진행해온 19년 차 아나운서 김재원. 미국 배우 리처드 기어는 그를 가리켜 ‘전 세계를 돌면서 수많은 생방송을 했지만, 출연자를 편안하게 해주는 MC는 처음’이라며 찬사를 보냈고, 비록 소리를 듣진 못하지만 입 모양을 보고 4개 국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김수림씨와 원활하게 대화하는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그런 그가 전하는 <마음 말하기 연습>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궁금했다.

<마음 말하기 연습>을 통해 담고 싶었던 게 무엇인지요?

저는 아나운서는 말하는 직업이 아닌 누군가에게 질문하고 듣는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근데 누군가의 마음을 들으려면 내가 먼저 마음을 말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더라고요. 마음 말하기도 연습이 필요하거든요. 말하기에는 따로 원칙이나 비법이 없다고 생각해요. 그 사람이 자라온 환경과 생각, 미래와 관련되기 때문에 그 사람만의 원칙과 비법이 있거든요. 그래서 책에선 방법보다는 마음을 말하는 텃밭을 가꾸는 정도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마음을 말하는 텃밭을 가꾸기 위해서는 어떻게 말하는지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겠네요.

3년 전인가 제가 어떻게 말하는지 궁금해서 일주일간 관찰 실험을 해본 적이 있어요. 평상시 하는 말을 녹음하고 언어일지에 적어본 거죠. 근데 70% 이상이 부정적인 말이더라고요. 얼마나 무심코 그런 말들을 하는지 깨달은 거죠. 불평하지 않고 21일을 버티는 게 밥 안 먹고 2주 금식하는 것보다 힘들다고 할 정도로 고치기가 어렵거든요. 그걸 아니까 ‘나는 불평, 불만 부정적인 이야기를 안 할래요’가 아니라, 그런 사람이란 걸 인정하고 웬만하면 부정적인 말을 안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는 거죠. 알면 줄어드니까요.

그가 아나운서의 꿈을 갖게 된 건 초등학교 때였다. 하지만 ‘자신의 꿈을 과대평가하고 자신을 과소평가해서’ 내려놓았던 아나운서란 꿈에 도전하게 된 기회는 뒤늦게 찾아왔다. 결혼 후, 유학길에 오른 그는 아버지가 뇌경색으로 쓰러지면서 급히 귀국해야 했고, 밤낮으로 아버지를 간호하는 병원 생활이 이어졌다. 그러다 병원 텔레비전을 통해 보게 된 KBS 아나운서 모집 공고. ‘한번 해볼까’ 했던 그에게 다음 날 아내가 건네준 건 입사 지원서였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입사 공부가 시작됐다. 같은 병실의 보호자들은 텔레비전 채널 선택권을 그에게 양보해주었고, 늦은 밤 병원 복도 벤치는 훌륭한 독서실이 되어주었다. 결국 1995년 그는 아나운서가 되었고, 춘천지국으로 발령이 난 후에도 서울과 춘천을 오가며 아버지를 보살폈다. 텔레비전은 병상에 누운 아버지에게 아들을 보는 기쁨을 선사했고, 아들은 그런 아버지를 위해 그리고 세상의 아픈 아버지들을 위해 마무리 인사를 이렇게 건네곤 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세요.”

아버지와 각별하셨던 것 같습니다.

제가 중학교 1학년 때 어머니가 간암으로 돌아가셨는데 그 후로 아버지와 둘이 살았죠. 아버지가 엄마 역할까지 하려고 무척 애쓰셨어요. 무뚝뚝하고 엄격하셨지만, 도시락도 직접 싸주실 정도로 헌신적이셨죠. 특히 아침잠을 깨우던 아버지의 도마 소리가 잊혀지지 않아요. ‘탁탁’ 뭔가 서툴고 투박했지만, 제겐 깊은 사랑의 울림으로 들렸죠. 아버지는 매일 파와 소시지 등을 넣은 튼실한 계란말이를 도시락 반찬으로 싸주셨는데, 싫어도 내색을 못 했어요. 아버지에겐 그게 최선이었으니까요.

그렇게 아나운서의 길로 들어서게 해주신 아버지는 결국 6년 뒤에 돌아가셨다. 하지만 그 뒤로도 그가 만난 사람들은 아나운서로서 살아가는 데 길잡이가 돼주었다. 1996년 무렵 골수 기증 캠페인이 열릴 때였다. 백혈병으로 고통받는 성덕 바우만의 이야기가 전해지며 전국적으로 특별 생방송이 진행됐고, 그 역시 춘천 명동의 중계차에 올랐다. 무사히 방송을 마친 후 기쁨과 흥분도 잠시, 병실에 있던 한 중년 환자가 그에게 던진 질문은 큰 충격이었다. “골수 기증을 하라는 말을 하도 잘해서 묻는 거요. 그럼 당신은 골수 기증과 헌혈은 했소?” 순간 그는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한다. 그 후로 그는 골수 기증을 신청했고, 지금도 일년에 몇 차례씩 헌혈을 한다. 어려운 이웃을 돕는 방송을 할 때는 단돈 만 원짜리 한 장이라도 모금함에 넣어 마음을 모은다.

그에겐 팔, 다리가 없는 호주 청년 닉 부이치치와의 만남도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아 있다. 팔로 안는 게 아니라 턱으로 안을 수 있다는 것, 다리가 아니라 열정으로 걷는다는 것, 입으로 말하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말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었기 때문이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배운 소중한 삶의 성찰은 방송에 자연스레 스며들었고, 따듯한 배려와 인간적이고 진솔한 모습은 시청자들의 공감을 자아냈다.

아나운서란 어떤 일인가, 많은 생각을 하셨을 거 같아요.

10년 전 사랑의 리퀘스트를 진행한 적이 있어요. 그때 저를 캐스팅하신 책임프로듀서님께서 하신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김재원씨가 방송국 밖에서 어떤 삶을 살고 어떤 가치관을 갖고 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부탁이 있다면 사랑의 리퀘스트를 하는 동안만큼은 유흥업소도 가지 마시고 책 잡힐 만한 일은 안 하시면 좋겠습니다. 이 일은 단순한 방송이 아닙니다. 일종의 구제 사역이고 성직자들이 하는 일과 다르지 않습니다.” 어디 그 프로그램뿐이겠습니까. 내 삶이 정제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이죠. 그래서 아나운서로서 저는 솔직히 많이 부족해요.

<아침마당>을 보면 출연자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어루만져준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특히 성악가 최성봉씨를 안으면서 용서를 구한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5살 때 고아원에서 나와 껌을 팔면서 어른들로부터 혹사당했던 최성봉씨의 기구한 사연을 들으면서 앞으로 그 친구가 잘 살기 위해서는 과거의 굴레에서 빨리 벗어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그건 어른들이 만들어준 거잖아요. 그럼에도 아무도 그 친구에게 사과하거나 용서를 구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 역시도 기성세대 한 사람으로서 방치했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이 친구에겐 용서와 화해의 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싶어 “정말 미안합니다. 어른의 한 사람으로서…” 하면서 저 나름대로 진정성을 담아 사과했는데 흔쾌히 받아줘 울컥했어요. 그 순간 제 아들, 아버지, 저를 스쳐간 어른들, 주변의 아이들이 다 떠오르더라고요. 덕분에 오히려 제가 치유받았어요.

언제나 상대의 마음을 읽고 공감하시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아나운서를 하면서 익숙해진 것도 있고, 자라온 환경도 영향을 준 거 같아요. 사실 한부모가족만이 갖는 아픔과 고통이 있거든요. 저는 학창 시절 매 학년 진급할 때마다 그런 전화를 받았어요. 학기 초에 반장 엄마가 학부모 모임을 만들고 전화를 하거든요. “엄마 계시니?” “엄마 안 계신데요.” “늦게 오시니?” “아니요, 안 계신데요.” 조금만 관심 가지면 미리 알 수 있는데도 말이죠. 그러면서 자연스레 나는 누군가의 마음을 헤아리려고 노력해야겠다는 맘이 있었어요. 솔직히 그 말은 저 사람이 내 마음과 상황을 헤아렸으면 좋겠다는 걸 포함하기도 하죠. 엄마가 없다는 걸 미리 알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그 사람이 미안해하는 순간을 굳이 경험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게 아닐까요.

그는 인생을 ‘나라’에 비유한다. 태어나자마자 아들의 나라에 살다가 결혼한 후 남편의 나라에 입성하고, 아이를 낳고 아버지의 나라에서 살고 있다는 그는, 아버지의 나라에서 사는 것이 가장 힘든 거 같다고 했다. 아이의 마음을 읽기 어렵기 때문이란다. 밖에서는 누구보다 대화에 능숙한 사람이지만, 아버지로서 자식과 소통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는 의외의 고백도 이어졌다.

사실 많은 부모들이 공감할 겁니다. 아들과 소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시는지요?

사실 요즘 저희 집 아이가 말을 안 해요. 쉽게 말하면 묵언 수행 중이죠. 이 시기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웬만하면 말을 안 하게끔 유전자가 형성돼 있거든요. 그 과정에서 자기를 성찰하고 친구 관계를 만들어가는데, 부모 욕심으로 다 공유하려 하니까 갈등이 생기는 거 같아요. 그래서 전 오히려 소통하려는 욕심을 놓았어요. 대신 아빠는 늘 너와 대화하기 위해 기다린다는 뜻으로, “오늘 별일 없었어? 밥은 먹었고?” 몇 가지 질문만 해요. 유독 아이가 말을 길게 하면 말할 마음이 있구나 생각해 대화를 해나가고, “어, 아니”로 일관하면 아이한테 시간을 주는 거죠.

‘소통’ 하면 대화를 떠올리지만, 다양한 형태가 될 수도 있는 거네요. 기다림이 될 수도 있고 지켜봄도 될 수 있고요.

그럼요. 최근에 아이가 집에서 너무 말을 안 하니까 아내가 학교에 갔었어요. 근데 선생님이 다행히 친구들과는 잘 말한다고 하시면서 해주신 말씀이 아이들이 아침마다 휴대전화를 내는데, 매일 잘 내던 아이가 하루는 안 내더래요. 그 이유를 물으니까 한참 머뭇거리더니 “실은 우리 아빠가 오늘 아침마당을 마지막으로 하는 날이에요. 제가 그 방송을 꼭 보고 싶어요” 하더래요. 그 말을 듣고 뭐랄까…. 아, 이 아이의 마음속에는 아빠가 들어가 있구나. 그날 저녁 “오늘 아빠 마지막 방송했어” 얘기했더니 “아빠 검색어 1위였더라” 하면서 의외로 쿨하게 얘기해주는 거예요. ‘아, 이 아이는 이 아이의 방법대로 날 위로하고 있구나’ 생각했죠. 사람들은 대개 말을 잘한다, 못한다고 평가하지만, 각자 고유의 말하는 방식이 있고 그대로 의미가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어요. 말은 못하는 게 아니라 그냥 원래 다 다르게 하는 거니까요.

소통을 잘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먼저 나는 저 사람의 마음이 될 수 없고 저 사람은 나의 마음이 될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게 중요할 거 같아요. 그래서 저는 소통 강의를 할 때면 소 그림과 통 그림을 사람들한테 보여줘요. 그럼 일단 웃으세요.(웃음) “소통이란 이렇게 터무니없는 것입니다. 소와 통이 무슨 연관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저 통이 소에게 여물통이 되어줄 때 그 둘은 뗄 수 없는 관계가 됩니다. 소한테 여물통이 되어주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소의 마음을 살 수 있습니다.” 이렇게 나와 다른 사람과의 연관 고리를 찾아 나가는 것, 그게 소통의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김재원 아나운서의 책엔 이런 말이 적혀 있다. ‘사람은 1분에 120단어를 말하지만 1천 단어를 들을 수 있다고 한다. 누군가 120단어를 말하는 동안 880단어의 공백은 딴생각들로 채워진다. … 나는 상대의 말을 듣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내 생각에서 나오는 말을 듣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는 대화를 유리 공을 주고받는 것에 비유했다. 잘 받으려고 조심하고, 잘 주려고 노력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 어쩌면 우리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무수히 던진 게 아니었을까. 돈, 명예, 성공 대신 내 마음과 양심이 내 삶의 코치가 될 때 말은 가슴에서 익어가고,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세상이 될 거라 말하는 김재원 아나운서. 그가 우리에게 묻는다.

“지금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김혜진 & 사진 최창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