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수련, 그 끝자리에 이르다,박준옥 할머니

정리 최창원 사진 홍성훈

‘정말 살고 싶지 않을 때도 많았어요. 자식들 때문에 이를 악물고 참았지.’ 열여섯에 결혼하여 2남 2녀를 둔 박준옥(84) 할머니의 삶은 고달프고 힘든 날들이었습니다. 때문에 비록 일자무식이었지만 도대체 사람은 왜 태어나서, 이렇게 살다가 가야 하는지, 죽으면 도대체 어디로 가는지가 평생의 의문이었습니다. 그 해답이나 알고 죽으면 원이 없겠던 어느 날 할머니는 마음수련을 만났습니다. 할머니의 나이 72살 때였습니다.

마음을 버린 만큼 속이 후련해졌습니다. 가슴에 맺힌 한이 풀리고 평생의 의문들도 풀렸습니다. 그것이 그저 신기하고 감사했던 할머니는 매일매일 지극하게 수련을 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할머니는 마음수련의 끝자리에 이르게 됩니다. 나로부터 벗어나니, 이제는 참으로 걱정도 근심도 없다는 박준옥 할머니의 그 행복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편집자 주>

경북 의성에서 태어났지요. 학교는 한 번도 다니질 못 했어요. 어른들이 여자는 공부를 하면 안 된다고 하시니. 엄청스레 배우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잖아요. 열심히 집안일 돕다 열여섯에 시집을 갔어요. 그 당시에 시집살이야 다 똑같았지요. 새벽같이 일어나서 어른들 밥해드리고, 밭에 나가 하루 종일 일하고 돌아와서 또 방아 찧고…. 그래도 일하는 건 하나도 힘들지 않았어요. 내가 요래 쪼만해도 쉬지 않고 움직여요. 내가 조금이라도 더 해야 다른 사람이 편하니까요.

그래도 영감님이 일할 생각을 안 하는기는 참 힘들었어요. 양반입네 하면서, 농사짓고, 소 먹이고 길쌈해서 여자들이 모아놓은 돈, 아무 데나 써 버리고. 돈 다 쓰면 들어와 옷만 갈아입고 또 나가고. 그래도 아무 말도 못 했어요. 대수롭지 않은 말끝에 “아이, 그건 아닌데요.” 이 소리만 해도 있는 물건이란 물건은 다 집어던지고 하니, 그저 ‘예’ 소리밖에 못 하고 살았지요.

아그들은 크고, 내가 못 배운기 한이 맺혀서 자식들만은 어떻게든 공부를 시켜야겠다 싶어서 돈을 벌러 댕기기 시작했어요. 그때 텔레비 덮거나, 전화 받침대로 쓰는 하얀 수예품 파는 걸 했어요. 천을 재단해서 동네 사람들한테 주고 만들어서 오면, 다림질을 참하게 해서 수예점에 갖다 주는 건데, 부산으로 마산으로 어데로든 갔어요. 너무 아파서 길에서 쓰러지지 싶어도, 어떻게든 가요. 내가 경상도 말로 악바리 같았거든. 장사하면서 수모도 엄청스레 당했지요. 그 고생은요, 자식 때문에 하지, 지가 쓸라고 하면 할 수가 없어요.

나는 워낙이 못난 사람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평생을 누구한테 어떻다 저렇다 화를 낸 적도 없고, 거절한 적도 없었어요. 삶이 너무 고달팠지요. 내가 뭐 하러 태어났나. 살아서 왜 이런 봉변을 당하나, 특히 영감님 때문에 괴로웠어요. 겉으로는 정성껏 모시는데, 자꾸 속으로는 미움이 쌓여서 응어리가 여기 가슴께에 뭉쳐 있었지요.

그래서 그렇게 진리를 찾아댕겼어요. 이 마음 벗어버리고 싶어서, 다음 생에는 이렇게 안 태어나고 싶어서….

그러다가 2000년에 마음수련을 하게 됐지요. 처음엔 내가 이렇게 무식한데 수련을 할 수 있겠나 싶은기, “지는 등신인데 공부할 수 있겠습니까?” 물었어요. 그랬더니 “자기 안에 답이 있기 때문에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공부입니다” 하시대요. 그 말씀이 마음에 와 닿대요. 마음수련의 가르침을 100% 믿고 참 열심히 했지요.

처음에는 내가 본 거, 들은 거, 살아온 삶을 다 버리라 하대요. 나를 버릴 수 있다는 게 얼매나 좋은지. 나는 맨날 죽고 싶었으니까. 없어지고 싶었으니까. 너무 좋아서 하루에 열네 시간씩 공부를 했어요. 자식들 키우던 거, 장사하면서 수모당했던 거, 영감 때문에 힘들었던 거…. 뭐 얼매나 풍덩풍덩 잘 버려지던지. 한날은 탁 내가 없어지면서, 아 나는 원래 없었구나, 이 우주가 나였구나, 그 깨침이 저절로 와요. 아이구야, 내가 그동안 꿈꾸고 있었구나. 알게 되니 어찌나 신나고 재미가 있는지요. 하하.

매 과정마다 확연히, 내가 다 없어질 때까지 했어요. 3과정을 할 때는 내 의식이 확 커지더만 우주가 확 들어오는기라. 에고, 우주가 내 안에 있구나. 배운 게 없으니 뭐라 설명은 못 해도 너무 좋은거라. 한번은 이 우주에서 마음으로 가는 데까지 한번 가봐라 하시대요. 옛날에 시골에 멍석을 펴고 누웠으면 별똥별이 뻗치는 걸 보잖아요. 그렇게 뻗치는 거같이 그날 밤에 계속 끝까지 올라가봤어요. 암만 올라가도 끝이 없어요. 반대로 내려가도 내려가도 끝이 없어요. ‘아, 끝이 없구나. 아, 이 우주허공은 끝이 없구나’를 알겠대요.

그렇게 계속 공부를 하다 보니 어느 날 탁 이 우주허공 자체와 하나가 되고, 나라는 것은 일체 하나도 없어요. 흔적조차 없어요. ‘아, 이 자체의 몸 마음으로 나서 영원히 사는 거구나’ 그걸 내 마음이 알대요. 와~ 좋구나. 그 마음은 말로 할 수도 없죠. 어떻게 이 보잘것없는 내가 우예 여태까지 살아서, 이 공부를 하게 됐을까. 그 감사함을 생각하니 그렇게 눈물이 쏟아져요. 내가 그 험한 세상 산 것도 이 공부를 하려고 했구나 싶은기.

영감을 미워했던 것도 다 내 잘못이라는 것도 알겠대요. 많고 많은 사람 중에 그런 사람을 만난 건 내 업이거든요. 내가 자식이다 뭐다 마음에 넣고 그렇게 원망했구나, 싶어서 무척이나 잘못했다고 많이 했어요.

영감이 오래 편찮아서 대소변도 받아내고 하다가 돌아가셨는데 괜찮았어요. 그래 2002년에 돌아가실 때까지 내 딴에는 한다고 했어요.

이 세상에 모든 게 내 탓이 아닌 게 전혀 없어요. 이걸 알면 누구를 원망할 수가 없어요. 내 탓이라는 걸 알고 열심히 버리기만 하면 진짜 많은 행복을 다 가질 수 있어요.

평생을 그렇게 괴롭고 괴로워서 죽고 싶다고 살았는데, 이 공부를 하니까 지금은 걱정도 없제 근심도 없제 얼마나 행복한지요. 물론 옛날에도 살면서 행복한 적이 있었지요. 자식들이 대학교 가고, 직장 나갈 때, 결혼할 때, 손자 볼 때…. 근데 그건 그때만 빤짝이라요. 조금 지나면 그 아가 커서 잘못될까 봐 걱정, 못사는 놈은 잘살아야 될 텐데 걱정, 잘사는 놈은 계속 잘살아야 할 텐데 걱정. 눈감기 전까지 걱정이라. 지금은 자식에 대한 마음을 딱 놨더니 아이고, 이렇게 편한 걸, 이렇게 좋은 걸요.

항상 속에서 웃음이, 행복함이, 감사합니다 소리가 막 나오지요. 내가 이렇게 영원한 세상에 나서 대자유로, 대해탈로 사는데, 안 행복할 수가 없잖아요.

이 공부는요, 좋다는 그 말 너머에 있는 말할 수 없이 참 좋은 자리예요. 자기가 그 자체가 되어보면 모두 알아요.

함께 마음수련을 하고 있는 막내딸 이금연(52)씨와 함께.

“엄마가 예전에는 인상도 굉장히 찡그리고, 양미간이 근심이 있는 표정이었어요. 정말 힘들게 사셨으니까. 그런데 수련하시면서 정말 젊어지고 편안해지시고, 고와지셔서 참 감사해요.”

* 이 글은 대구시 수성구에 사시는 박준옥(84) 할머니의 이야기를 구술 정리한 것입니다. 일부 사투리는 표준어로 바꾸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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