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멘토, 동생 덕분에 감사함 알게 되었죠

박정윤 33세. 푸드코디네이터.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

1999년 군 복무를 하고 있을 때 비보가 날아들었다. 동생의 갑작스런 사고였다. 병원에 입원한 동생을 간호하기 위해 나는 군에 있는 장기자랑, 체육대회 등 온갖 행사에 다 도전했다. 1등을 하면 2~3일간의 포상휴가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제대 후엔 부모님과 번갈아가며 동생을 돌보기 시작했다.

처음 동생을 간호할 때 무엇부터 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척추를 다친 동생은 어깨와 손목을 움직이는 것 이외에는 혼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가끔 동생이 침대에서 자고 있을 땐 휠체어를 타고 다녀보기도 했다. 동생이 어떤 점을 불편해하는지를 잘 알아야 도와줄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두 달간 휠체어를 타고 다니면서 어떤 점이 불편하고 힘든지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두 발로 다닐 때 몰랐던 것들이 점점 눈에 띄었다. ‘녀석이 얼마나 힘들까….’ 힘들게 병마와 싸우는 동생에게 조금이라도 위로와 용기를 주기 위해 언제부터인가 나는 웃기 시작했다.

동생의 사고는 나의 의식을, 나의 삶의 방향을 크게 바꾸었다. 대개 사람은 몸이 멀쩡할 땐 혼자 사는 데 큰 지장이 없다고들 생각한다. 하지만 몸이 아프면 상황이 달라진다. 세상은 혼자가 아니라 서로 돕고 사는 것이라는 걸 저절로 깨닫게 된다. 우리 가족 역시 그동안 도와주신 많은 분들 덕분에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 재활 치료를 도와주신 분들, 보조기를 맞춰주신 분들, 병원에서 만난 가족 같은 보호자분들, 재활원에서 봉사하시는 분들….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은 감사함 때문일까,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아니, 저절로 그렇게 되어가고 있었다는 게 맞다. 길을 걷다가도 누군가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게 보이면 몸이 먼저 움직였다.

가끔 친구가 화났던 일을 이야기하면 난 이렇게 말한다. “그래도 우리는 화를 낼 수 있어 좋잖아.” 그리곤 웃는다. 세상에는 화내고 싶어도 화낼 수 없는 사람들, 그리고 무언가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그러다 보니 나는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주어진 조건에 그냥 감사하게 되었다. 그래서 웬만한 일은 화가 나지 않는다. 아니, 화를 낼 수 없다. 그래서인지 마음의 폭이 넓어지는 거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막 좋아야 웃지만, 나는 별것 아닌 일에도 잘 웃는다. 다행히 동생도 각고의 노력 끝에 공무원 시험에도 합격했고, 직장에도 다니고 있다. 그리고 오는 5월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도 앞두고 있다.

행복이란 우리가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것, 그 자체인 거 같다. 뭔가를 열심히 하다 보면 돈은 저절로 따라오듯이, 욕심을 내기보다 작은 것의 소중함도 알고 고마워할 줄 알 때 마음도 편안해지고 즐거워지는 것 같다. 만약 동생이 아니었다면 나 역시도 돈만 좇아 일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젠 어떤 일을 할 때도 이웃의 어려움을 생각하고 서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작년 6월, 호텔에서 요리하던 친구 두 명과 동업으로 친환경 식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한식, 일식, 양식 요리사들이 함께하면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고, 다양한 음식 색깔을 낼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단순히 음식을 파는 게 아닌 손님과 소통하고 나누는 식공간으로 꾸려나가고 싶었다. 좋은 식자재를 찾던 중 친환경 먹을거리에 관심을 갖게 됐다. 막걸리도 대기업보다는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좋은 품질의 지역 막걸리를 소개하는 데 그 뜻을 모았다. 어려운 우리 농가도 살고 일석이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한 달에 한 번씩은 전통주 파티를 열어 가게에 오신 손님들끼리도 서로 인사 나누는 시간을 마련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손님들끼리도 가족 같고 친구 같은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다. 자연스레 의미 있는 일들을 함께 계획하기도 한다. 고생하시는 홍대 환경미화원분들에게 녹두전을 부쳐드리기도 하고, 일본 지진 피해 성금을 모으기도 했다.

음식을 통해 손님들과 소통하고, 무언가를 나누다 보니 삶이 더 풍요로워지는 기분이다.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소외된 아이들에게 요리를 가르치는 요리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좋은 음식은 좋은 감성을 키울 수 있다고 믿기에…. 그 꿈이 이뤄지는 그날까지 신나게, 파이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