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한 작은 약속이 큰 기적을 만들 것 같은 이 가을, 우리들의 약속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펜팔 7년, 얼굴도 보지 않고 했던 결혼 약속

신재숙 50세. 자유기고가, 독일어 통·번역가. 독일 린덴시 거주

“네 남편은 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꽤 많은 돈을 포기했었지. 밴쿠버에서 독일행 비행기가 파업을 하는 바람에 항공사에서 하루만 일정을 연기하는 대가로 숙박권과 보상비를 제의했는데도 굳이 그날 비행기를 타야 한다고 우겼단다. 이유는 말도 하지 않고 말야. 밴쿠버에 사는 고모부는 이해를 못 하겠다고 꽤 흥분했었지.”

결혼식이 끝나고 나서 나온 비하인드 스토리는 그랬다.
사랑에 빠진 연인들은 크고 작은 약속들을 한다. 3년 후에 결혼하자는 약속도 본인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때론 3월의 눈처럼 허무하게 스러진다. 지켜지지 않은 약속들은 추억의 숲 속에서 별똥벌레처럼 희미한 빛을 낸다.

반면 꿋꿋하게 시간과 공간을 이겨내고 지켜진 약속은 기적을 만드는 열쇠가 된다. 내 삶의 기적은 그의 약속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7년이라는 기간 동안 우리는 펜팔 친구였다. 알량한 영어 실력을 늘리고 싶었던 대학 신입생과 독일에서 태어났어도 선비를 연상케 하는 품성을 가진 그는 펜팔 소개소에서 엽서를 통해 만났다. 대학을 졸업하고 실업과 취업을 겪으며 나의 이십 대 청춘이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지쳐가는 동안 그는 내게 편지를 쓸 때 항상 사용하던 녹색 잉크처럼 변함없이 내 곁에 있었다. 전화 요금은 터무니없이 비쌌고 인터넷도 스마트폰도 없던 아날로그 시절, 사진 몇 장과 손으로 쓴 편지들이 우리가 공유할 수 있었던 유일한 소통 수단이었다.

당시 국제결혼을 하는 경우 외국인 남편이 한국에 와서 결혼식을 하고 함께 출국했지만, 한국에 오기 전 시아버님과의 캐나다 여행으로 연 휴가를 다 써버린 남편은 다시 한국에 나오기가 어려웠고, 우리는 7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가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독일로 가 결혼하기로 결정을 하고, 그는 캐나다에서 독일로 돌아가는 대로 결혼식에 필요한 서류들을 알아서 전화하기로 약속을 했던 것이다.

돌아간 첫 월요일에 전화를 하겠다던, 그 작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는 시아버님께만 양해를 구하고, 비행기 파업에도 불구하고 바로 귀국한 것이었다. 겨우 하루 늦어질 뿐인 출국 일정을 바꿀 수 없다고 하는 그를 시고모부가 이해하지 못한 것은 당연했다.

물론 결혼식도 하지 않고 떠나는 나를 가족과 직장 상사와 친구들이 염려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뭘 믿고 그러느냐면서. 하지만 7년 동안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었어도 좋은 펜팔 친구로서 그가 보여준 신뢰감의 무게는 컸다. 그리고 서른 살부터는 다른 삶을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던 내게 그의 청혼은 신의 뜻으로 보였고 나는 그것을 내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우리가 함께한 지난 22년 동안 그는 단 한 번도 약속한 것을 지키지 않은 적이 없다. 아마도 그것이 우리가 부부 싸움을 할 필요가 없게 만드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사소한 약속도 잘 지키는 것이 부부 사이든 친구 사이든 인간관계에 있어 기적을 만들어주는 열쇠라고 믿는다.

클로드 모네 Claude Monet 작.

<카퓌신 대로>

79.4×60.6cm. 캔버스에 유채. 1873.

넬슨 아트킨즈 갤러리 (K.A. 스펜서와 H.F.

스펜서 재단), 캔자스시티.

6학년 7반 얘들아, 우리 10년 후에 꼭 다시 만나자

김종화 25세. 동국대학교 경영학과 4학년

2002년 2월 14일, 인천승학초등학교의 졸업식. 그중에서도 6학년 7반의 교실에서는 학생들과 선생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년 후, 모두 학교 운동장에서 모이자.”

14살 당시 10년 후라는 건 막연해 보였다. 24살, 엄청난 어른이 되어 있을 거 같았다. 과연 그날이 올까? 그때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하지만 어느새 시간은 흘러갔고, 한창 군 생활을 하던 2011년 4월, 그때의 약속을 떠올리며 어렸을 적 적어둔 이메일 주소를 찾아내어 선생님께 메일로 연락을 드렸다. 과연 선생님도 약속을 기억하고 있을까?

당시 영국 런던에서 꽤 오랫동안 생활을 하고 계셨던 선생님 또한 그 약속을 잊지 않고 계셨다~!!! 마침내 2012년 2월이 되었다. 연락되는 몇몇 동창들 또한 그 약속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때부터 반장이었던 나를 비롯, 몇 친구들과 함께 6학년 7반 친구들을 찾기 위해 온 힘을 쏟았다. 그리하여 무려 25명의 친구들에게 연락을 시도할 수 있었다.

바로 그날, 2월 14일 운동장. 정말 10년 만의 만남이었지만 엊그제 교실에서 함께 생활했던 그때의 느낌처럼 너무나 편안했다.

우리 반은 유난히 단합이 잘되었던 반이었다. 정말 함께 모인 자리가 꿈만 같았고, 너무도 행복했다. 자리에 모인 친구들은 저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 벌어졌다는 둥 행복감을 감추지 못했다. 나 역시 이날의 약속을 잊지 않고 가끔씩 되새기며 학창 시절을 보냈고, 친구들 역시 나와 같은 생각으로 10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 정말로 신기하였다. 선생님께서는 너무도 감격스럽다고 말씀하시며 눈물까지 글썽이셨다. 하지만 한편으론 성인이 된 우리가 어색하셨나 보다. 10년 전 꼬맹이 초등학생들이, 어느덧 선생님보다 키가 훌쩍 자랐으니 말이다. 우리가 자란 만큼이나 선생님의 얼굴에도 주름이 조금 생긴 걸 보니 어딘가 모르게 가슴이 찡해졌다.

그 10년 만의 반창회를 기점으로 우리는 꼭 10년마다 한 번씩 모이자고 다시 한 번 약속을 하였다. 2022년 2월 14일, 34살이 된 우리는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까?

초등학교 졸업식을 하던 그때는 까마득했던 그날이 이렇게 빨리 와버렸듯이, 그날도 어느새 성큼 내 앞에 다가와 있을 것이다.

약속은 때로는 무언가를 열심히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이 약속은 내가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다.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또 약속을 지켜낸 순간 펼쳐질 우리들의 멋진 미래를 위해 오늘도 최선을 다하면서 살 것이다.

6학년 7반 친구들, 그리고 10년 전이나 10년 후나 여전히 예쁘신 이상미 선생님.
우리의 10년 후 만남을 기약하며…. 너무도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클로드 모네 Claude Monet 작.

<인상, 해돋이> 48×63cm.

캔버스에 유채. 1873.

마르모탕 미술관, 파리.

약속은 연속성이 생명

홍경석 55세. 경비원. 대전시 동구 성남동

오늘도 일어난 시간은 새벽 4시 30분.
이른 시간이긴 하지만 오늘 하루를 일하자면 아무리 밥맛이 없더라도 아침밥을 먹어야 한다. 냉장고를 뒤져 엊저녁 아내가 만들어놓은 된장찌개를 데웠다. 그처럼 혼자서 밥을 먹는 소리를 들었는지 아내가 주방으로 들어섰다.

“일어난 겨?” “응, 당신도 같지 먹지 그랴?”
“아녀, 난 이따 먹을 텨.”

우린 전형적 충청도 사람인지라 사투리 역시도 똑같이 사용한다. 아침을 먹은 뒤 목욕을 시작했다. 향기가 좋은 비누로 전신을 씻어내니 기분이 날아갈 듯 상쾌했다. 그럴 즈음 스마트폰에 설정해 둔 알람이 다섯 시가 되었다며 마구 울기 시작했다.
‘미안하다! 오늘도 내가 너보다 먼저 일어났구나.’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며, 또한 습관이 바뀌면 인격이 바뀌고, 인격이 바뀌면 운명이 달라진다는 말이 있다. 다소 거창한 비유가 어울리진 않지만 하여간 나의 아침 습관은 늘 이렇다.

이어 다섯 시엔 뉴스를 보면서 세상 돌아가는 형편을 머릿속에 입력한다. 그리곤 다섯 시 반 전에 집을 나서 05시 40분 발차의 첫 시내버스에 오른다. 회사에 도착하면 06시 15~20분이 된다. 내가 출근해야만 비로소 퇴근이 ‘성립되는’ 동료 경비원은 벌써부터 가방을 싸놓고 나의 출현을 쌍수를 들어 반겼다. “야근하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어서 퇴근하세요!”

2인 1조로 6명이 일하면서 하루는 주간 근무, 이튿날엔 야간 근무의 업무가 다람쥐 쳇바퀴 돌 듯하는 게 바로 경비원 직무 매뉴얼이다. 나와 업무 인수인계를 마친 경비원은 자신의 동료, 즉 짝꿍 경비원보다 한 시간 먼저 퇴근한다.

왜냐면 오전 7시 30분까지 출근하여도 되는 것을 나는 늘 그렇게 한 시간이나 일찍 출근하기 때문이다. 이런 습관은 야근의 경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17시 40분까지의 출근이건만 이 또한 나는 16시 30분이면 벌써 출근하여 교대를 해주니 말이다.

처음엔 이로 인해 오해도 받고, 말도 많았지만 하루 이틀도 아니고 늘 습관으로 그리 하니까 이젠 나의 조기 출근에 대하여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는 이는 없다. 그럼 왜 나는 1년 이상을 이같이 일찍 출근하는 습관의 소유자가 된 것일까?

30년 가까이 출판과 언론사에서 밥을 먹다가 재작년에 그만두고 경비원으로 일하기 시작한 건 바로 작년 초부터이다. 비록 이 직종에서의 경험은 전무했지만 이 직업을 시작하면서부터 다부진 각오로써 스스로에게 약속을 하였다.

첫째, 남들보다 한 시간 먼저 출근한다. 둘째, 누구에게든 내가 먼저 웃으며 인사한다. 셋째, 책임감을 가지고 주인 의식으로 일한다.

약속이란 연속성이 관건이자 생명이라 생각한다. 내일도 나는 한 시간 이른 행보를 변함없이 계속할 것이다.

클로드 모네 Claude Monet 작.

<아르장퇴유의 다리> 60×79.7cm.

캔버스에 유채. 1874.

내셔널 갤러리 (폴 멜런 부부 컬렉션), 워싱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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