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 디자이너’ 배상민 교수

‘디자인은 나눔입니다’란 철학을 바탕으로 디자인을 하는 이가 있다. 바로 카이스트 산업디자인학과 배상민 교수다. 미국 뉴욕에서 성공한 디자이너였지만 ‘욕망’을 부추기는 상업 디자인에 회의를 느낀 그는 2005년 한국으로 돌아와 카이스트에서 사회공헌디자인연구소를 운영하게 된다. 일상에서 필요한 제품에 ‘나눔과 섬김’을 담아내고, 그 정신을 많은 이들과 공유하며, 디자인을 통해 보다 따듯한 세상을 만들고 싶은 사람, 배상민(41) 교수를 만나보았다.

배상민 교수의 연구실에 들어서자 흙을 뭉친 작은 모형들이 눈에 띄었다. 물 문제로 고통받는 아프리카 사람들이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게 하기 위해, 현지 재료인 흙으로 천연정수필터를 만드는 연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이렇듯 잘사는 상위 10%가 아닌 어렵고 소외된 이웃 90%의 사람들을 위해 사회공헌디자인연구소를 연 배상민 교수. 7년 차인 이 연구소가 거둔 성과는 실로 놀라웠다. 친환경 가습기 러브팟, 물 주는 시기를 알려주는 롤리 폴리 화분 등 그가 디자인한 제품들은 독일 ‘Red Dot’과 ‘iF’, 미국 ‘IDEA’, 일본 ‘Good Design Award’ 세계 4대 디자인 대회 등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며 무려 42개의 상을 수상했다. 특히 2009~2010년에는 한 해에 4개 대회에서 모두 수상하는 그랜드슬램을 2번이나 달성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뿐만이 아니다. 그는 기부 상품 디자인에서 더 나아가 판매한 수익금 전액을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기부하는 나눔 프로젝트를 7년째 계속해오고 있다. 언제나 호기심 어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열정적으로 디자인의 가치를 전파하는 그의 모습에서 진지하면서도 유쾌한, 기분 좋은 에너지가 그대로 전해졌다.

+ 사회공헌디자인연구소 이름인 ID+IM은 어떤 의미인가요?

ID+IM은 ‘I DESIGN, therefore I AM’(나는 디자인을 한다. 고로 존재한다)의 약자인데요, D에는 3가지 의미(3D)가 포함돼 있어요. 꿈(Dream)을 꾸고, 그 꿈을 디자인(Design)하고, 그 디자인을 나눈다(Donate). 고로 존재한다는 거죠. 결국 디자인이라는 게 사람들과 나누었을 때 가치가 있으니까요.

+ 그동안 디자인하신 많은 제품을 보며 정말 열정적인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열정은 3D 과정 중 처음, 꿈꾸는 것에서 나오는 거 같아요.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릿속에 수많은 답을 내보는데, 그 과정 자체가 저한테는 꿈이거든요. SF 영화 같은 방법으로 하는 것도 있고, 정말 간단하게 해결하는 것도 있어요. 현실성 없는 것도 많지만, 매 순간 꿈꿀 때마다 행복하죠. 그렇게 처음엔 자기만의 공상이었다가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는 디자인이 나오면 미치는 거죠. 저는 디자인하면 도파민(희열, 행복 호르몬)이 나오는 거 같아요. 문제가 싹 풀리면서 그걸 손으로 옮기고 있을 때 심장이 빨리 뛰거든요.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몰입되죠. 요즘도 혼자 방에서 디자인할 때 정말 기뻐요. 가슴 뛰는 에너지가 느껴지니까요.

+ 어릴 때부터 호기심이 많으셨을 것 같아요. 어린 시절은 어떠셨나요?

하루라도 문제를 안 일으키면 가시가 돋는 그런 아이였죠. 어릴 때 꿈이 발명가여서, 온 동네 깡통을 다 수거해서 공작, 로봇을 만들던 기억이 나요. 집 근처 인왕산이 놀이터였죠. 다람쥐 가재 잡고, 동굴 파고 자고, 친구랑 고구마 서리해서 구워 먹다가 불을 내서 부모님이 경찰서에 끌려가시고…. 사고를 너무 치니까 부모님께서 되게 엄하게 키우셨어요. 아버지는 군인 집안, 어머니는 목사님 집안인데 뭘 잘못하면 아버지는 새벽에 깨우셔서 군대식으로 혼내시고, 그다음엔 어머니가 오셔서 제 손을 잡고 회개 기도를 시키셨죠.(웃음) 하지만 남들과 다른 걸 하는 것에 대해 뭐라 하진 않으셨어요. 학생이니까 공부는 잘해야 했지만, 그 외에 대해선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는 세계 디자인 명문인 파슨스 디자인 대학에서 제품 디자인을 전공했다. “13일 밤을 새운 적도 있을 만큼 디자인이 너무 좋고 재밌어서 힘든 줄 몰랐다”고 할 정도로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졸업 작품인 ‘사운드 펌프’는 전미디자인대회에서 1등을 차지했고, 그로 인해 27세의 나이에 동양인 최초로 파슨스 대학 교수가 되면서 실력을 인정받기에 이른다. 코닥의 디지털카메라, 3M 포스트잇 패키징 등 그가 디자인한 제품은 그야말로 대박을 치면서 성공 가도를 달렸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행복하지 않았다 한다.

접이식 MP3 플레이어 크로스 큐브. 2008년 애플사의 아이팟을 제치고 미국 IDEA 은상을 수상해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 뉴욕 생활, 성공한 디자이너로서의 삶을 정리하고 한국에 오신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디자인을 할 땐 너무 좋았어요. 제가 디자인한 제품이 유명 백화점에 들어가서 이슈가 되니까요. 근데 그게 계속 반복이 되니까 별로 기쁘지 않은 거예요. 오히려 내가 했던 작업들이 사람들의 눈을 현혹시키고 꼭 필요하지 않은데도 사게 만들고 있구나. 결국 아름다운 쓰레기만 생산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어요. 사용자들이 6개월쯤 쓰고 나면 싫증이 나도록 디자인을 해서 새 디자인이 나오면 또 사고 싶게 만들어야 했으니까요. 저는 디자인이란 어떤 문제점을 창의적으로 해결하는 거라 생각하거든요. 근데, 실제 내가 하는 일은 사람들의 욕망을 부추긴다고 생각하니까 점점 회의가 드는 거예요. 내가 이런 거 하려고 뉴욕까지 와서 밤새가며 공부하고 수많은 과정을 거쳤나 질문하게 됐죠.

그렇게 자신의 내면을 성찰한 데에는 어머니의 영향도 컸다. 20여 년간 임종 환자를 돌보는 호스피스 봉사를 해오신 어머니의 삶은, 그로 하여금 ‘인간이 사는 이유가 뭐지? 왜 살지?’에 대해 질문하게 한 것이다. 그 질문은 디자인에도 이어졌다. 그리고 그 답을 찾는 과정에서 자신의 소명(召命)을 깨닫게 된다. 내가 가진 지식이나 재능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것이야말로 진정 가치 있는 삶이라는 것. 때문에 그는 생존이 걸린 문제지만, 돈이 되지 않아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부분들, 어려운 이웃들의 문제점을 해결해주는 ‘사회공헌디자인’을 생각하게 된다.

+ 사회공헌디자인이란 개념은 교수님의 깊은 자기 성찰에서 비롯된 것이군요.

60억 인구가 다 똑같은 하나님의 자녀들이고 피조물이잖아요. 근데 왜 배상민을 선택해서 대한민국에 태어나게 하고, 좋은 부모를 만나 미국 유학까지 보내고 교수까지 하게 했을까? 생각했어요. 전제 조건은 대한민국에서, 우리 부모 밑에서 태어나기 위해 내가 한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거였어요. 그건 그냥 받은 거예요. 전 세계에서 대학 교육 받은 사람은 1%, 그것만으로도 이미 엄청난 혜택을 받은 거라는 것. 그때부터 정확히 보이는 거예요. ‘아, 이런 기회를 주신 건 내가 축복을 받을 만해서가 아니라, 나머지 99%, 그런 기회조차 없는 사람들을 위해 쓰라고 주신 거였구나. 아프리카 사람들이 죽어가는 건 그 나라 정치가 잘못돼서가 아니라, 내가 해야 할 일을 안해서 죽는다는 거. 그걸 안 이상 그 순간부턴 해야 하는 거죠.

그는 첫 강의 때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고 한다. “왜 우리는 이렇게 좋은 혜택을 받고 좋은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는 것일까?” 영재로 자라다 보니 본의 아니게 성공만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아이들로 돼가는 게 안타까웠던 그는 학생들 스스로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주었던 것이다. 그러자 주어진 조건을 당연시하거나, 남들과 비교하며 불평했던 학생들도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고, 화려한 디자이너로서의 삶을 꿈꿨던 제자들의 생각도 점차 달라졌다.

“교수님은 제가 생각하는 디자인 범위를 넓혀주셨어요. 처음엔 예쁘고 재밌는 것만 생각했는데, 정말 의미 있는 디자인이 무엇인지 알려주셨어요.” 심지은(ID+IM 연구원)씨의 말이다.

+ 디자인을 통해 사랑을 전하고 계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존경하는 분이 다산 정약용 선생님이에요. 제가 생각하기에 그분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디자이너입니다. 그분의 기본 사상이 섬길 서(恕). 서의 사상이에요. <목민심서>를 보면 백성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느껴져요. 더 거슬러 올라가면 그 시작은 단군 사상이죠. 홍익인간, 널리 인간을 복되게 하라. 제가 외국 나가서 그래요. 전 세계에서 사회 공헌을 제일 잘할 수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라고. 건국 이념 자체가 사람을 돕는 거였으니까요. 조금만 생각을 넓히면 우리는 되게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들이에요. 디자인은 모두 남을 위한 것이지 자기를 위한 디자인은 없거든요. 주부, 아이들을 위한 것 등 다 사용자가 있어요. 그러기 위해선 대상을 정확히 이해해야죠. 여기에서 더 나아가 상대를 섬겼을 때 정말 좋은 물건이 나옵니다.

특히 그가 만든 모기 잡는 친환경 초음파 ‘사운드 스프레이’는 매년 50만 명의 어린이가 말라리아로 목숨을 잃는 상황에서 ‘디자인은 나눔’이란 철학이 가장 잘 담긴 제품으로 평가받는다. 통을 1분간 흔들면 8시간 자가 충전이 되는데, 전력 공급이 어려운 제3세계에서는 말라리아의 원인인 모기를 쫓는 데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그가 돈으로 기부하는 나눔 프로젝트와 더불어 추진하는 또 하나의 사업이 있다. 바로 ‘시드(seed) 프로젝트’다. 그는 지난 7년간 기아에 허덕이는 케냐, 탄자니아 등 제3세계 사람들을 만나왔다. 현지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그 지역의 재료와 기술로 만들어서 스스로 해결하도록 돕기 위한 방법을 연구하기 위해서였다. 드디어 오는 1월이면 집을 짓고, 물도 정화시키고, 태양열을 설치해주기 위해 아프리카로 떠날 예정이다.

+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마사이족과 스스럼없이 생활하신 게 인상적이었어요.

처음엔 경계했지만 아이들도 씻겨주고 놀아주니까 할아버지도 다가오고 장정들도 점차 함께하더라고요. 잠도 같이 자니까 완전 가까워졌죠. 추장 어머니가 예쁘다고 막내아들 삼고 이름도 ‘올로 세리안’이라 지어주셨어요.(웃음) 그다음부터는 다 알려주시는 거예요. 사실 먹는 게 제일 고통스러운데 물이 흙물이거나 완전 똥물이거든요. 그 물로 차를 끓여줘요. 먹다 보면 모래가 이 사이에 끼고…. 그런데 거절하거나 더럽다 생각하면 동질화되기 어렵죠. 쉽지 않지만 그렇게 해야 마사이족에 대해 알 수가 있거든요. 현장에 답이 있으니까요.

+ 시드 프로젝트가 갖는 특성은 무엇인가요?

제가 생각하는 시드 프로젝트는 우리가 떠난 다음에도 마을 사람들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가르쳐주는 거예요. 씨앗을 뿌리는 거죠. 안타까운 건 아프리카나 제3세계에 가서 좋은 뜻으로 봉사하는 분들이 많은데 그냥 좋은 걸 가져다주니까 받는 것에 익숙해지거든요. 그럼 계속 못살죠. 저희는 그 사람들의 전통과 관습을 그대로 유지하려고 합니다. 지난해 마사이족 마을에 갔을 때예요. 사람들이 비영리단체가 지어준 슬레이트집을 비워두고, 본래 있던 소똥으로 지은 집에서 잠을 자더라고요. 한 소녀에게 이유를 물어보니 ‘안 예뻐요’라고 답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면 그 사람들은 자기네 집이 더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마사이 문화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고, 되게 소중한 거예요. 그들의 순수함과 문화를 지켜주면서 돕고 싶습니다.

+ 한창 꿈을 꾸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꿈을 꿀 때 차별성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자기만의 꿈을 찾되 그다음엔 치열해야죠. 차례대로 하는 게 아니라 동시에 해야 돼요. 꿈꾼 다음에 공부하고 그다음에 남을 돕는 게 아니라, 지금 꿈꾸고 지금 공부하고 지금 노력하고 최선을 다해서 지금 내 주변에서 나눌 수 있는 걸 찾아야 해요. 그랬을 때 건강해지고 행복해지고 우리 사회가 따듯해지니까요.

그에겐 늘 화려한 이력과 수상 경력이 따라다닌다. 하지만 14년간 뉴욕 최고의 클라이언트와 최고의 디자이너와 일했을 때도 2번밖에 받지 못했던 상을, 사회공헌디자인에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42개의 상이나 수상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 질문에 그는 “아무도 해결해주지 않는 것을 긁어주니까 상을 받는 거 같아요”라며 겸허해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왜 그런 상을 주는지 그 뜻을 계속해서 묻고 또 깨달아가는 듯했다. 그것이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그의 삶에 대한 격려라는 것을. 디자인을 통해 내가 아닌 남이 행복해지길 꿈꾸고(Dream), 사람들이 본래 갖고 있는 따듯한 마음을 일깨워서(Discover), 세상을 보다 따듯한 곳으로 만들고(Design) 싶은 사람. 그래서인가 그와의 만남은 3D 영화처럼(^^) 신나고 행복했다.

김혜진 & 사진 최창원

배상민 교수는 나눔 제품인 러브팟과 사운드 스프레이를 들고 스스럼없이 포즈를 취해주었다.

“연구소 이름을 제 이름이 아닌, ID+IM이라고 한 이유는 자기보다 세상을 위해 디자인 하는 마음을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싶어서예요.”

세상의 유명한 디자이너들이 자기 이름을 걸고 최고의 회사를 만들지만, 그들이 죽고 나면 10년을 못 버티고 없어지는 게 현실이다. 배상민 교수는 ‘나누고 섬길 줄 아는 한국인의 마음을 잘 계승해서 한국적인 디자인을 만들고, 그 정신을 후대에 남기는 연구소’를 만들고 싶어한다. 그래서 세계에서 사회공헌디자인을 가장 잘하는 연구소로 만드는 게 그의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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