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택의 정원

한여름 배롱나무 꽃이 활짝 핀 충남 논산 명재고택의 앞마당. 자줏빛 꽃이 핀 맥문동도 보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원 하면 자로 잰 듯 잘 다듬어 놓은 프랑스 베르사유 궁의 정원, 이탈리아의 빌라 정원 등 사람의 손길이 많이 닿은 모습을 연상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정원은 생활 깊숙이 스며들어 있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정원인지 확실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우리 선조들은 인위적으로 조경을 하기보다는 자연 그대로의 산과 개천을 정원으로 여기고 감상했다. 이런 연유로 우리나라 사람들조차 한국 정원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사진 & 글 황진수

우리나라는 국토의 70%가 산지이다. 그것도 숲으로 가득 차 있다. 해발고도 1km 안팎의 산들이 백두대간 산맥으로 북에서 남쪽으로 핏줄 흐르듯 뻗어 내려가며 수많은 작은 산들과 개천이 형성된 지형이다. 아기자기한 산들과 굽이치는 강과 개천, 그리고 절묘하게 생긴 바위들이 많다. 이렇듯 어디에 집 짓고 살든지 담장 너머 산이 보였기 때문에 굳이 집 안에 따로 정원을 조성할 필요가 없었다. 우리 선조들은 정원을 손수 집 안에 가꾸기보다는 아름다운 자연을 차경하여 자신의 정원으로 삼았다. 마당에 꽃을 가꾸고 나무를 심어봐야 앞산, 뒷산에 피는 꽃과 나무들의 아름다움을 따라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한옥은 정원을 가지고 있다. 대개 사람들은 한국 정원을 자연 친화적이라고 말하지만, 우리나라의 지형적 특성이 만들어낸 독특한 정원 양식이라고 보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경남 함양 일두고택 안채 마당 한편의 굴뚝에 한여름 능소화가 싱그럽게 펴 있다.

이 외에도 조선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인 요소도 정원 양식에 영향을 주었다. 조선은 유교에 근간을 둔 성리학을 바탕으로 안정과 절제를 중요하게 여겼기에 사치스러운 정원을 억제하였고, 관직 생활을 하고 물러난 선비들은 궁궐의 정원을 모방하여 적당한 규모의 방지원도형(方池圓島形: 네모난 못에 둥근 섬을 가운데 둠) 정원을 조성하기도 했다. 또한 성리학을 중심으로 도교, 불교, 신선사상, 풍수사상 혹은 자신의 정신세계와 염원 등을 담아 정원 이름을 짓기도 하고 형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방지원 연못 또한 성리학적 세계관인,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 사상을 상징적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 충남 아산 외암민속마을 송화댁은 넓은 마당을 가진 덕에 소나무숲 길 사이에 집을 지어 놓은 듯 보인다. 마당엔 꽃들이 많이 심겨 있어 야생의 들판을 보는 듯하다.

↓ 충남 논산 명재고택 한편의 담장 아래 화원. 건축물과 식물의 공존이 아름답다.

정원은 인간과 자연이 만나는 곳이다. 산수정원은 정자를 지어놓음으로 완성되는데, 정자가 없는 자연은 단지 자연일 뿐이지만 경관이 좋은 장소에 정자를 세우면 그것은 정원이 된다. 정자는 인간이 자연에서 머물며 감상하는 곳으로 만들어주는데, 이는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정원을 담기 위한 지난 4년여의 세월…. 자연의 품은 언제나 그렇듯이 넉넉하고 아늑했고, 일상 속에서 지친 마음을 달래주는 치유의 공간과 편안한 안식처가 되었다.

황진수님은 한양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홍익대학원 사진디자인과를 수료했다. 2001년부터 패션사진가로 활동하였으며, 2007년부터 왕가제례 다큐멘터리 사진작업을 시작으로 <신의정원, 조선왕릉>(2009) <한국정원>(2012) 등 정원 연작 작업과 <10년간의 세계여행사진> 사진 작업을 병행하고 있고 서울을 주제로 한 사진집이 올해 발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