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사는 법

어머니는 찰떡같이 약속해놓고, 내가 방심한 사이 옷 보따리를 싸 들고 잽싸게 진주역으로 달아났다. 낌새를 채고 역으로 갔을 때, 진주발 순천행 9시 30분 기차는 이미 떠나고 선로에는 장대 같은 빗줄기만 퍼붓고 있었다. 호우주의보가 해제되면 내 차로 함께 시골집에 가기로 한 약속을 어머니는 단박에 깨뜨린 것이다. 오로지 그놈의 고양이들 때문에.

결국 어머니 뒤를 쫓아 시골집으로 차를 몰았다.
쫓고 쫓기던 세 시간 만에 우리 모자는 피차 어이없는 표정으로 상봉하였다.

“뭐라고 왔냐? 애비 땀새 참말로 못 살것네.” “나 할매 보러 온 게 아닌디요? 까미랑 호돌이 보러 왔는디요.”

서울특별시 어느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버려진 새끼 고양이 두 마리였다. 녀석들은 동물 애호가이자 최초의 발견자인 친척의 손을 거쳐,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어머니 집에 눌러앉게 되었다. 서울 출신 고양이 까미와 호돌이는 시골집에 잘 적응하였고 제법 고양이 특유의 볼륨 있는 몸매로 자랐다.

우산을 쓰고 집 주위를 둘러보니 다행히 비 피해는 없었다. 그런데 창고 근처로 가니 뭔가 후다닥 튀어나와 밖으로 달아났다. 도둑고양이였다! 어머니가 출타한 틈을 타서 또 떠돌이 야생 고양이들이 침입하여 시골집을 접수한 것이다. 주인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냉큼 달려와 구르며 아양을 떠는 집고양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우리 집 고양이들은 텃밭에 숨은 채, 제 몸의 상처를 핥으며 공포에 떨고 있을지 모른다.

“까미야! 호돌아!” 집 안팎을 헤매던 어머니가 한참 만에 고양이들을 찾았다. 그런데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야생 고양이한테 해코지를 당한 모습이 역력했다. 두 눈에 눈곱이 잔뜩 끼였고 목덜미에는 상처까지 나 있었다. 내가 손을 내밀어도 선뜻 안기지 않고 불안한 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망할 놈의 도둑고양이들!’ 이번에는 절대 그냥 두지 않으리라.

나는 덫과 올가미를 떠올렸다. 하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들고양이한테 올가미는 턱도 없을 터이다. 덫이 좋겠다. 그렇다면 쥐덫처럼 가둬 잡는 식이냐 아니면 날카로운 이빨로 발목을 콱 물어 잡는 식이냐? 아무튼 나는 그렇게 생포한 도둑고양이를 차에 실어 강 건너 들판에 버릴 계획이었다. 그런데 덫에 발목을 물린 고양이의 푸른 눈빛과 포효를 떠올리니 더럭 겁이 났다. 고양이가 아니라 호랑이 잡는 기분일 거다. 아무래도 콱 물어 잡는 덫보다는 슬그머니 가두어 잡는 덫이 그나마 수월하겠다.

보복의 기회는 예상보다 빨리 왔다. 그날 저녁 나는 우연히 창고 문틈 사이로, 손바닥만 한 새끼 고양이들을 발견하였다. 눈에 띄는 것만 무려 세 마리. 새끼 고양이들은 내가 다가가자 잡다한 물건 사이로 꼬물꼬물 사라졌다. 까미와 호돌이 둘 다 수컷이었다. 그러니까 그놈들은 야생 고양이의 새끼들이었다. 장마철 창고의 통풍을 위해 열어놓은 문으로 들어와 몰래 새끼를 친 것이다. 나는 비정하게 창고 문을 닫고 잠가버렸다. 어미 고양이와 새끼들은 철저하게 격리되었다. 이제 덫이고 뭐고 필요 없었다.

하지만 야생 고양이는 영악했다. 다음 날 아침에 보니, 창고 위쪽에 있는 창문의 철그물형 방충망 한구석이 뜯겨져 있었다. 들고양이가 간밤에 창고로 들어온 흔적이었다. 어미 고양이는 창고 바깥쪽에 쌓아놓은 땔감 더미를 타고 올라, 발톱으로 방충망에 구멍을 내고 들어온 것이다. 그리고 밤새 제 새끼들한테 젖을 먹이고 사라졌다. 찢어진 방충망은 모성애가 남긴 증거였다. 어머니는 창고 문을 다시 열어젖혔다. 나는 새끼 고양이들이 어미 고양이 뒤를 따라 쫄랑쫄랑 창고 문을 나서는 광경을 상상하였다.

그로부터 2주일 후, 가족들과 함께 시골집에 갔다. 우리는 모처럼 마당에 평상을 펴고 둘러앉아 저녁을 먹었다. 그때 화단 옆에 숨어 이쪽을 지켜보던 낯선 얼룩무늬 고양이와 내 눈이 마주쳤다. 도둑고양이! 나는 재빨리 마당에 있는 돌멩이를 집어 힘껏 던졌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돌멩이는 도둑고양이를 살짝 비켜갔다. 그런데 도둑고양이 반응이 이상했다.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도망하지 않고 어슬렁거리며 모퉁이를 돌아 물러났다.

“도둑고양이가 아직도 창고에 삽니까?”

어머니는 빙긋 웃을 뿐 대답이 없었다. 낡은 의자 위에 배를 깔고 있던 까미와 호돌이도 의외였다. 불안해하거나 경계하지 않고 그냥 소 닭 보듯 도둑고양이를 지켜보았다. 그들은 계약 기한이 다 되었는데도, 어린 자식들을 핑계로 선뜻 방을 빼지 않는 가난한 세입자와 쓴소리 한마디 못 하고 마냥 기다리는 어벙한 집주인 같았다.

최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