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옥과 아버지의 편지

박신연 & 그림 최정여

아직도 보기만 하면 가슴이 저리는 먹을거리, 바로 ‘홍옥’입니다.
고등학교 시절, 전 무던히도 부모님 속을 썩이던 문제아였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려 학생 신분으로는 가서 안 될 곳을 드나들었고 가끔씩은 술, 담배도 입에 대며 어른 흉내를 내곤 했습니다. 밤 12시가 넘어서야 귀가하는 일이 잦아지자, 야단도 치고 달래기도 하던 아버지는 어느 날 그간 눌러왔던 화를 한꺼번에 폭발시키셨습니다.

늦은 밤 살금살금 문을 열고 집에 들어왔더니 그때까지 딸을 기다리던 아버지가 가위를 들고 제 머리를 싹둑싹둑 자르신 겁니다. 워낙 급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전 반항 한번 못 해보고 그냥 쥐 파먹은 머리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후 한 달 정도 모자를 눌러쓰고 학교에 다녔는데, 그런 제 모습을 보자니 아버지 마음이 몹시도 아프셨나 봅니다.

하루는 친구와 통화하던 중 “난 사과 중에 홍옥이 제일 좋더라. 백설공주가 먹은 사과가 홍옥이었을 것 같지 않니?” 하고 수다를 떨었는데, 다음 날 책상에 빨간 홍옥 3개와 아버지의 편지가 놓여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내 딸아, 그날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네 머리를 그렇게 해놓고 이 애비가 얼굴을 똑바로 못 보겠구나. 거칠었던 애비 행동은 잊어버리고 너를 진정으로 걱정하고 사랑하는 애비 마음만 알아다오.”

철없는 딸은 어느새 친구들과 낄낄거리며 수다나 떨고 있는데, 한 달이 넘도록 마음 아파하며 딸의 마음이 다쳤을까 봐 염려했던 아버지. 가슴이 뻐근해져왔습니다. 그 이후였을 겁니다. 반항과 방황을 그만두고 착실한 학생 신분으로 돌아온 것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신 지도 어언 14년, 전 고등학생 딸을 둔 엄마가 되었습니다. 아이가 내 마음과 달리 어깃장을 놓을 때, 어느새 컸다고 엄마 말을 안 듣고 제멋대로 행동할 때, 그 옛날 늦은 밤마다 딸의 귀가를 기다렸을 아버지 생각이 납니다. 그리고 여름이 끝날 무렵, 재래시장 좌판에 나온 빨간 홍옥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한 봉지씩 사다가 한동안 식탁 위에 얹어놓곤 합니다. 자식을 바른 길로 이끌려고 단 한 번 무리수를 쓰긴 했지만 여리디여린 마음에 혼자 가슴앓이했던 아버지를 두고두고 그리워합니다.

Leave A Comment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You may use these HTML tags and attributes: <a href="" title=""> <abbr title=""> <acronym title=""> <b> <blockquote cite=""> <cite> <code> <del datetime=""> <em> <i> <q cite=""> <s> <strike> <str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