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 마음을 비우다, 삶을 채우다

내가 어릴 적만 해도 우리 반 아이들 절반은 한옥에 살았다. 자연을 닮아 더없이 아늑하고 편안했던 한옥.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춥고 불편해서 살기 힘든 곳이 되었고 점차 사라져갔다. 한옥이 사라지는 게 안타까웠던 나는 20여 년 전부터 안동, 경주, 보은, 강릉, 북촌 등 한옥의 정취가 살아 있는 지역의 고택(古宅)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한옥은 밖에서 들여다보는 공간이 아닌 우리가 살았던 공간이다. 그래서 한옥은 안에서 밖을 내다보았을 때 그 멋을 느낄 수가 있다. 한옥의 창문은 사람이 앉아 밖을 내다볼 때 창틀에 팔을 편안히 걸칠 수 있는 높이였다. 또한, 집안에 배치되어 있는 가구들도 사람이 앉을 때의 어깨높이를 넘지 않았다. 그래서 한옥의 방은 편안하고 넉넉하다.

북촌 한옥 북촌 한옥마을은 한옥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간혹 창호 문을 열다 보면 예상치 못한 새로운 모습과 마주하게 된다. 서울 종로구 가회동.

▲ 후조당(後彫堂)

◀ 후조당 사랑채

후조당은 광산김씨 예안파 종택에 딸린 별당으로 제청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경북 안동 군자마을.

가을에서 겨울로 가는 무렵의 한옥은 겉보기엔 스산하지만 실제로 그 안에 들어가 대청마루에 앉아보면 따뜻하다. 우리 선조들은 태양의 남중고도(南中高度)를 감안하여 집을 지었기 때문이다. 남중고도란 태양이 정남쪽을 지날 때의 최고도를 일컫는데, 지구의 자전축이 기울어진 상태로 공전하기 때문에 낮과 밤의 길이가 변하고 계절의 변화가 생기는 것을 말한다. 여름엔 해가 처마에 걸쳐 있어 햇볕이 덜 드는 반면 날씨가 추워드는 시기로 접어들면 해가 방 안 깊숙이 후미진 곳까지 비추고 있어 따듯하다.

그 따스함은 문득 한옥에서 지냈던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한다. 외가의 대청마루에서 뒹굴며 숙제를 하고 그림을 그리고 외삼촌과 놀던 기억…. 창호지를 얌전하게 바른 문을 열면 외할머니가 아랫목에 앉아 뜨개질을 하셨고, 엄마는 동생들을 돌보고 있었다.

고택 촬영은 쉽지 않았다. 먼저 그분들의 마음을 열고 대문을 열어야만 했다. 그렇게 열린 문 안에서 문설주와 기둥을 찍고 툇마루와 대청마루를 찍고, 처마와 지붕도 찍었다.

한옥에서 마음을 비우고 카메라 앵글 가득 자연을 채워 넣었다. 한옥이 스스로를 열고 비우고, 그 자리에 자연을, 문화를, 그리고 삶을 채워 넣은 것처럼.

사진 & 글 이동춘

▼ 김동수 가옥 조선의 최상류층 가옥이라 할 수 있는 아흔아홉 칸 집. 전북 정읍.

사진가 이동춘님은 1961년 서울에서 태어나 신구대 사진과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1987년부터 10년간 출판사 디자인하우스에서

에디토리얼 포토그래퍼로 일하며 여행, 리빙, 푸드 등 다양한 분야의 사진을 찍어왔습니다. 현재 한국의 전통문화와 관련된 종가 문화 사진을 촬영하며

선현들의 의(義)와 정신을 담는 데 주력하고 있으며, 사진집으로 <차와 더불어 삶> <한옥, 오래 묵은 오늘>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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