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신도여관 주인 할머니의 러브스토리

2010년 7월, 드디어 오랫동안 벼르던 국내 일주를 시작했다. 부에서 출발해 김해 봉하, 경남 창원…. 그 여행길에서 만난 한 분을 소개한다.

9월 초, 나는 경북 포항으로 향했다. 이름난 명소인 간절곶을 보고 나오는 길, 구룡포 마을 앞에서 왠지 모르게 발길이 멈췄다. 그리고는 무려 한 주를 머물렀다.

내가 묵었던 곳은 구룡포의 ‘신도여관’. 오랫동안 그곳에서 여관을 운영해온 할머니는 푸근하게 나를 맞아주었다. 공짜 밥도 여러 번. 밥 사먹으러 나갈라 치면 찬이 없다 걱정하면서도 두 번 묻지 않고 얼른 밥을 퍼다 주셨다. 식사 중에 찾아오는 이웃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구룡포에서 머물던 마지막 그날도 역시 세수를 하고 방 안에 들어서는데 박할머니가 ‘밥 먹자’고 불렀다. 그리고 식사를 하며 할머니는 돌아가신 남편 이야기를 해주셨다.

5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부부 연을 맺었던 할아버지는 지난 5월 돌아가셨다 했다. 할아버지는 성품이 매우 온화하고 성실한 분이었단다. 평생 뱃사람으로 살면서 술 한번 입에 대지 않고 언제나 할머니 기분에 맞추려 노력했다고 한다. 할아버지와 달리 화통하고 직설적이었던 할머니가 어쩌다 맘이 언짢을 때면 할아버지는 아들 셋을 데리고 나가 자장면을 사 먹이고는 “오늘은 엄마가 힘든 날이니 조용히 놀거라” 하고 타일렀다 한다.

그런 할아버지가 큰 병을 얻은 건 5년 전이었다. 할아버지가 병상에서 지낸 몇 년간은 할머니에게도 힘든 시간이었다. 매일같이 할아버지의 대소변을 치우며 행여나 욕창이 생길까 80킬로그램이 넘는 몸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쉴 새 없이 닦아줘야 했다. 당신 몸과 같이 귀한 남편이 너무 아파할 때면 ‘이리 아플 거면 차라리 죽었으면…’ 하는 생각도 들더란다.

그러던 지난 5월 어느 아침, 그날도 할아버지는 옷 안 가득 대변을 봤다. 할머니는 여느 때처럼 싫은 내색 없이 “똥도 어찌 이리 예쁘게 쌌노” 하며 할아버지 엉덩이를 톡톡 두드렸다고 한다. 그리고 말끔히 주변을 정리하고 돌아와 앉으니 할아버지가 대뜸 할머니 손을 잡고 볼에 비비시며 “고맙다, 고맙다” 하더란다. 할머니가 별소릴 다 한다며 손을 뿌리치니 다시금 손을 잡아당겨선 “이리 고마운 거 나아서 갚고 가야 하는데…, 대신에 내 갈 때 당신 몸 아픈 거 다 갖고 갈게” 하시곤 잠이 들었단다. 그런 할아버지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는데 문득 이불 밖으로 나온 할아버지 두 발이 그리도 안쓰러워, 남편 곁에 반대로 누워 그 발을 안고 살포시 잠이 들었단다.

잠시 후 누군가가 자신을 깨우고 있음을 느꼈다. 지나가다 문병 온 이웃이었다. 놀라서 일어나 보니 조금 전까지 멀쩡해 보였던 할아버지가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할머니만 바라보던 할아버지가 서서히 들고 있던 팔을 떨어뜨리려 할 때, 할머니가 그 팔을 받쳐 들며 “여보, 왜 이래요?” 하고 소리쳤는데,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몇 번이고 “당신 죽어서 내 찾아올 거지?” 물었을 때 단 한 번도 “그러마” 하지 않고 “지겨워 죽겠는데 죽어서 왜 또 만나!” 하며 핀잔을 준 것이 그리도 후회스럽다 하셨다.

눈두덩이 발개진 할머니가 걱정스러워, “그 마음 모르실 리가 있겠어요. 할아버지가 좋은 데서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원 없이 재미있게 사시다 나중 나중에 만나시면 되잖아요” 하고 위로해 드렸다.

할머니께선 강아지 같은 눈으로 “정말 그럴까…” 하고 되물으셨다.

만남과 헤어짐이 인스턴트커피 타는 것만큼 쉬운 요즘이다. 나 역시 언젠가부터 ‘사랑은 그저 시시한 거구나’ 합리화하고 살았는데, 할머니의 절절한 러브스토리 앞에선 ‘다만 내가, 내가 한 사랑이 부족했었구나’ 인정해야 했다.

할머니와 만난 지 벌써 3년여가 되어간다. 지금도 건강히 여관을 운영하고 계시다는데, 이번 여행길에는 다시 한 번 할머니를 찾아봬야겠다.

이명주 36세. 프리랜서. facebook.com/BangsasiGuesthouse

‘아름다운 사람,

박양덕 할머니께’

경북 구룡포 <신도여관>

박양덕 할머니께는

이명주님의 마음을 담아

난 화분을 보내드립니다.

 

나에겐 ‘꽃보다 아름다운

그 사람’을 소개해주세요.

그에게 미처 표현하지 못했던

마음을 담은 편지글도 좋습니다.

소개된 분께는 꽃바구니

혹은 난 화분을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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