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일 대표, 전 세계 아이들의 대통령 뽀로로 기획자

노란색 공군 헬멧과 주황색 고글을 쓴 귀여운 꼬마 펭귄 ‘뽀로로’. 2003년 11월 EBS를 통해 TV 유아용 애니메이션 <뽀롱뽀롱 뽀로로>가 첫선을 보인 뒤 아이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우는 아이들 울음조차 뚝 그치게 한다는 신통방통한 뽀로로는 순식간에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우리나라 애니메이션 사상 최초로 전 세계 130여 개국에 수출되면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콘텐츠로 평가받았다. 8년간 수많은 실패를 거듭한 끝에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뽀로로를 탄생시킨 ‘뽀로로 아빠’ 아이코닉스 최종일(49) 대표를 만나보았다.

보기만 해도 절로 미소가 번지는 사랑스럽고 귀여운 뽀로로. 도대체 어떤 마술을 부렸기에 아이들이 그토록 열광하는 것일까? <뽀롱뽀롱 뽀로로>에는 주인공 뽀로로를 비롯해 아기 공룡 크롱, 사막여우 발명왕 에디 등 여러 동물 친구들이 등장한다. 이들이 벌이는 좌충우돌 에피소드는 아이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고, 그 결과는 실로 어마어마했다.

2010년 서울산업통상진흥원에 따르면 뽀로로 브랜드 가치는 3,893억. 2006~2008년 대한민국 캐릭터 대상 수상, 장난감, 문구류 등 1,600여 개가 넘는 용품에 붙는 로열티만 연간 120억 이상을 벌어들이는 국내 순수 토종 캐릭터 뽀로로. 프랑스 공중파 방송(TF1)에서 41.7%라는 높은 시청점유율을 기록했고, ‘아랍의 CNN’이라 불리는 알 자지라 방송에도 방영될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덕분에 세계 애니메이션 시장에서 한국의 위상도 달라졌다. ‘애니메이션 하청 공장’에서 ‘창작 애니메이션의 요람’으로 바뀐 것이다. 2011년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창의성 아이콘’ 1위로 꼽힌 뽀로로는 현재 4차 시리즈까지 방영됐으며, 올 하반기부터 5차 시리즈가 방영될 예정이다. 올해로 10살이 된 뽀로로는 한국 방문의 해 홍보대사, 대한민국전자정부 홍보대사, 국제기아대책회의 홍보대사 등 사회 공헌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그 뽀로로를 탄생시킨 최종일 대표. 한국 애니메이션 역사를 새롭게 썼다고 평가받는 그는, 동그란 안경 너머로 선한 웃음 지으며 한눈에 뽀로로 아빠임을 짐작케 했다.

세계적으로 뽀로로가 미치는
영향력이 대단한 것 같습니다.

애니메이션이 이렇게까지 아이들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구나 싶어요. 그래서 시나리오를 쓰거나 디자인을 할 때 아이들에게 정서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칠지 더욱 신중하게 고려해요. 정크 푸드라든지 무기류 장난감 같은 것은 라이선스 사업 자체를 안 하고, 아이들이 따라 할 우려가 있으면 방향을 바꾸죠. 저도 어릴 때 애니메이션을 보고 이층집에서 우산 들고 뛰어내린 적이 있어요. 우산이 낙하산처럼 될 거야 생각하고….(웃음)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위험했는데, 아이들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거든요.

뽀로로를 통해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배려예요. 나와 다른 게 틀리고 나쁜 게 아니라, 그 방식대로 착할 수 있고 사려 깊을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아이들도 나름의 세계관이 있거든요. 성격이나 관점이 다 다르니까 문제가 생기면 그것을 해결하는 방식도 다르죠. 때론 티격태격 다투기도 하지만, 어른들이 답을 알려주지 않아도 현명하게 그 방법을 찾아갈 수 있을 거다, 다른 친구들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들어보면서 내가 틀릴 수도 있구나…, 하고 그렇게 서로 이해하고 협력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뽀로로가 특히 아이들에게
사랑받는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이전의 애니메이션들이 주인공은 언제나 정의롭고 악당은 늘 악했다면, 저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담아보고 싶었어요. 아이들이 착해도 완벽하지는 않잖아요. 때론 실수도 하고 질투하고 싫어하기도 하고. 뽀로로에 나오는 아이들은 기본적으로는 다 착하지만 개성이 강하죠. 내성적인 아이도 있고 호기심 많은 아이도 있고 나대는 아이도 있고. 그런 캐릭터들이 아무래도 자기와도 많이 닮아 있다 보니까 공감하고 좋아해주는 거 같아요.

사실 뽀로로가 나오기 전까지
한국 애니메이션은 성공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많았는데,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전에 광고 회사를 다녔는데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방향으로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러면서 생각했죠. 나는 무얼 원했을까. 무얼 좋아하나? 그러다 떠올랐어요. ‘아, 내가 만화 보고 애니메이션 보면서 꼬박 밤을 새웠는데… 이 일을 정말 좋아했구나.’ 근데 과연 직업으로 가능할까. 그걸 알고 싶어 애니메이션을 공부하기 시작했죠. 당시 저는 ‘미국은 애니메이션으로 디즈니랜드도 만들고, 디즈니채널도 만드는데 우리는 왜 제작만 할까?’ 그런 생각을 했거든요. 그러면서 우리의 제작 노하우에다 기획력이 결합되면 좋은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무렵 회사의 신규 사업으로 애니메이션사업팀이 꾸려지면서 그는 애니메이션 기획에 뛰어들었고, 첫 작품인 <녹색전차 해모수>를 선보인다. 당시 15%라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지만, 그는 적잖은 좌절감을 느꼈다. 일본과 미국의 애니메이션에 비해 질적 완성도가 많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레스톨 특수구조대> 등 여러 애니메이션을 제작했지만 대부분 성과가 좋지 않았다. 많은 비용을 투자한 프로젝트가 실패할 때마다 ‘이 정도밖에 안 되나’ 하는 자괴감에서 헤어나기 힘들었다. 그러다 1997년 IMF 경제 위기가 닥치면서 적자를 면치 못하던 애니메이션팀은 해체가 된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던 그는 2001년 그동안 동고동락하던 동료들과 의기투합하여 회사를 세웠고, 어린 왕자를 모티브로 한 <수호요정 미셸>을 만들었다. 하지만 결과는 90% 이상의 적자. 참패였다.

‘그동안 충분히 배웠고 더 좋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왜 망했을까? 그 이유라도 알아보자’는 생각에 바이어들의 의견을 물었고, 의미심장한 답변이 돌아왔다. “애니메이션 완성도는 인정해. 그런데 재미가 없어. 아이들이 애니메이션을 보는 건 즐기기 위해서인데, 미셸을 보면 인생은 무엇인가, 뭔가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거 같아.” 아이들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겠다고 했지만 정작 자신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는 것을 자각한 그는, 애니메이션은 재밌어야 한다는 원칙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연이은 실패로 많이 힘들고
두려웠을 텐데요. 그럼에도 계속
도전하게 된 힘은 어디서부터
비롯된 걸까요?

당시 회사 사정이 너무 안 좋으니까 망하면 어떻게 될까 상상도 했어요.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지금까지 아주 나쁘게 살아오지 않았으니까 지인들한테 최소한 1톤 트럭 정도의 중고 트럭을 살 수 있는 돈은 빌릴 수 있지 않을까, 거기에 과일하고 야채를 실어서 팔고 다니면 최소한 먹고는 살지 않을까?…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하면서 평탄하게 사느니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한 번은 해보고 싶었거든요. 실패한 결과가 풍족하게 살지 못하게 되는 정도라면 그건 감당할 수 있겠다, 그럼 됐다고 생각했죠.

아동용에서 유아용 애니메이션으로
방향을 바꾸신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그동안의 실패를 경험하며 느낀 건 똑같은 방식은 안 된다는 거였어요. 미셸이 방영될 당시 포켓몬스터가 동시간대에 방영됐는데 그야말로 전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킨 작품이었죠. 우리가 아무리 잘 만들어도 동시간대 더 재밌는 작품이 방송되면 소용이 없구나, 애니메이션을 하는 이상 일본과의 경쟁은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해 본격적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을 연구했습니다. 일본은 애니메이션에 관한 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고 있고, 1년에 300여 개의 작품을 만들어내요. 치열한 경쟁을 거쳐 검증을 받은 작품들이 전 세계로 나가거든요. 하지만 취약점도 있었어요. 유아용 애니메이션은 상대적으로 적었거든요. 그게 뽀로로 기획의 출발이었습니다.

어쩌면 마지막일지 모르는 기회. 그는 절박함 속에서 매일 자정이 넘도록 전 세계 유아용 애니메이션을 보며 치열하게 분석했다. 그 결과 해외 수출을 위해 사람보다 동물 캐릭터가 유리하다고 판단,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동물들을 추려나갔다. 그러다 눈에 띈 게 있었으니, 바로 펭귄이었다. 뒤뚱뒤뚱 걷는 모습이 마치 어린아이들 모습과 닮아 유아용 캐릭터로 적절했던 것. 하지만 당시 펭귄을 소재로 한 영국의 <핑구>란 작품이 이미 많은 사랑을 받고 있었기에, 그는 핑구와의 차별화를 시도했다. 핑구가 진짜 펭귄에 가까운 모습에다 가족들의 이야기를 담았다면, 뽀로로는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색을 쓰고, 다양한 친구들과의 이야기를 통해 재미있고 교육적인 스토리를 담았던 것. 드디어 2년여의 준비 기간을 거쳐 뽀로로가 나왔고, 다행히 아이들 반응도 좋았다. 하지만 그다음이 문제였다. 애니메이션의 성공이 곧 캐릭터 사업의 성공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 특성상 전체 매출에서 영상은 10%, 나머지 90%는 캐릭터 사업이 차지하기에 이 문제는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였다. 그것은 우리나라 애니메이션 산업의 숙원이기도 했다. 당시 국내 시장의 외국 캐릭터 점유율이 90%인 상황에서 그는 뽀로로가 된다는 걸 입증해야 했고, 우여곡절 끝에 동화책을 내기에 이른다. 다행히 한 달 만에 2만 부 이상 팔리면서 캐릭터 사업에도 물꼬가 트이기 시작했다.

애니메이션의 특성상 한 편이 완성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잖아요. 끝까지 집중해서 완성도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저는 프로젝트를 하다가 지치거나 나태해질 때면 열정으로 극복해낸 작가들을 떠올려요. 지독한 끈기와 진정성으로 놀라운 작품을 선보이는 거장들이 있거든요. 제가 존경하는 분이 <나무를 심는 사람>을 만든 캐나다 출신의 애니메이션 작가 프레더릭 백인데 올해로 90세예요. 직접 기획하고, 시나리오 작업은 물론 수만 장의 그림을 일일이 그것도 아주 세밀하게 직접 그리시는데, 그건 일에 목숨을 걸지 않고는 도저히 해낼 수 없는 일이거든요. 그런 분들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고 다시 집중하게 되죠.

<태극천자문> <꼬마버스 타요> 등 계속 다양한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계신데요,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중요한 건 소재가 아니라 어떻게 요리하느냐라는 걸 요즘 많이 깨닫고 있어요. 무엇보다 아이의 관점으로 보려 노력하죠. 처음에 <타요>를 만들 때도 ‘버스가 무슨 이야기가 되겠어?’란 말을 많이 들었어요. 근데 어른과 아이들의 생각은 다를 수 있거든요. 어른들에게 버스는 대중교통 수단지만 아이들에겐 택시보다 큰 차가 아닐까.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야기는 전혀 다를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가끔은 어른의 관점으로 많이 판단하는구나 느껴요. 여전히 실패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배워가는 중입니다.

계속해서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 나가는데, 그 창의력은
어디서 나오는 건가요?

창의력은 기발한 상상력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철저한 노력과 고민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뽀로로도 결국 무수한 실패를 통해 배운 교훈들을 바탕으로 창작된 거거든요. 결국 누가 조금 더 연구하고 준비하고 노력했느냐에 따라 창의적인 콘텐츠가 나오지 소위 천재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기존 작품도 중요한 게 분명히 배울 게 있거든요. 핵심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거기에 생각을 더하면 새로운 게 나올 수 있으니까요.

꿈을 향해 도전하는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에디슨은 100번 이상의 실험을 거쳐 불이 켜지는 전구를 만들어냈다고 해요. 그 이후 기자들이 많은 실패에도 어떻게 좌절하지 않고 계속할 수 있었냐고 물으니까 에디슨은 그동안 실패한 적이 없었다고 답했다고 하죠. ‘그동안 100가지가 넘게 불이 켜지지 않는 방법을 알았고, 마지막에 불이 켜지는 한 가지 방법을 알아냈을 뿐이다.’ 뼈아픈 실패조차 성공으로 가는 과정이구나 생각하면 도전 중에,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게 될 거란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뽀로로 이야기 중에 ‘하늘을 날고 싶어요’ 편이 있다. 새인데도 하늘을 날지 못하는 펭귄 뽀로로는 하늘을 날기 위해 굉장히 노력한다. 번번이 실패했지만 좌절하지 않던 뽀로로는 어느 날 자신만의 특징을 알게 된다. 다른 어떤 새들보다 바닷속에서만큼은 훌륭하게 날듯이 수영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뽀로로는 바닷속을 날듯이 헤엄치며 행복해한다. 수많은 실패를 통해 자신만의 장점을 찾아가는 뽀로로의 모습이 흡사 자신이 걸어온 길과 비슷해서일까, 최종일 대표 또한 이 이야기를 가장 좋아한다고 말한다.

“제가 어렸을 때 미국,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꿈을 키웠다면 이제는 많은 아이들이 우리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꿈을 키웠으면 좋겠어요.”

뽀로로는 어느새 ‘뽀통령(뽀로로 대통령)’이라 불릴 만큼 아이들의 우상이 되었다. 그리고 그 뽀통령이 꿈꾸는 나라는 생김새는 다 달라도 자기만의 장점을 잘 살리며 모두 친구가 되어 사는 나라다. 뽀로로는 반드시 그 꿈을 이뤄낼 것이다. 치열하게 연구하고, 고민하고, 포기하지 않는 아빠 최종일을 꼭 닮았으니 말이다.

김혜진 & 사진 최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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