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체사진가 권오철

미 항공우주국(NASA)과 유명 다큐멘터리 잡지 ‘내셔널지오그래픽’이 인정한 천체사진가 권오철(41). 그가 천체사진가로 널리 알려지게 된 건 지난해 여름 방영된 <SBS 스페셜 – 오로라 헌터>에 소개된 후부터였다. 한 번뿐인 인생, 행복하게 사는 길이 무엇일까 고민했던 그는 5년 전 14년간 직장인으로서의 삶을 정리하고, 국내 유일의 천체사진가로서 이름을 알리게 된다. ‘사람은 꿈과 진로가 일치할 때 가장 행복하다’는 깨달음을 얻은 후, 많은 청소년들에게 진짜 꿈에 대해 전하고 있는 천상 별바라기 권오철, 그가 전하는 별과 꿈에 관한 이야기.  김혜진 & 사진 최창원

작가님의 천체사진을 보면, 그 아름다움에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동시에 어떻게 저런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궁금해집니다.

천체사진가란 밤하늘의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을 사진으로 담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행복한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망원경으로 찍지 않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사람의 시각으로 본 사진이라는 거죠. 별을 볼 때 받은 느낌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흔히 천체사진은 천시天時, 지리地利, 인화人和가 맞아야 한다고 합니다. 하늘의 때를 기다리고 하늘이 허락해야만 가능하다는데, 그 과정에서 힘든 점은 없으신가요?

천체사진은 그때의 현장 상황, 날씨가 좌우해요. 자연이 만들어주는 좋은 순간을 포착하는 건데 그 순간을 만나기 위해 기다린 만큼이죠. 그건 제가 조절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좋은 순간을 만나지 못하면 한 장소만 10년 넘게 가기도 해요. 최선을 다해도 날씨가 안 좋으면 어쩔 수 없지만, 그것보다 화나는 건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느낌이 들 때예요. 체력이 떨어져서 중요한 순간을 놓칠 때가 그렇죠. 사실 사막에선 체력이 떨어지면 헤매기도 해요. 방향 감각이 떨어져서 같은 자리를 뱅뱅 돌고 있을 때도 있고. 장비도 무겁고, 밤도 새야 하고, 정신을 잘 차려야 하죠. 천체사진을 20년 넘게 찍으면서도 아직도 제일 힘든 게 밤새는 거예요.

은하수가 흐르던 밤. 2013년 독도.

2010년 킬리만자로에서 촬영한 일주 사진들.

그에게 별이 가슴 깊이 다가온 건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야간 자습 쉬는 시간, 우연히 친구와 창턱에 기대어 깜깜한 밤하늘을 바라보는데 친구가 갑자기 “우와, 북두칠성이다!” 외친 것. 순간, 그저 밝은 점일 뿐이었던 별이 그냥 별이 아닌, 불빛처럼 마음 한구석을 환하게 밝혀주는 기분이 들더란다. 이후 <재미있는 별자리 여행> 책을 통해 별자리를 알게 되면서 별 보는 재미에 빠져든 그는 밤마다 운동장으로 달려 나갔고, 때론 새벽까지 별을 관찰하곤 했다.

 

대학 입학 후 천문 동아리에 가입하면서 천체사진에도 관심을 가졌다. 그는 독학으로 사진을 공부하면서 고민했다. ‘어떤 사진이 좋은 천체사진일까?’ 천문 현상을 있는 그대로 생생하게보다는 아름답게 표현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 일반 렌즈와 카메라로 밤하늘을 찍으면서, 당시 망원경으로 찍어야 천체사진으로 여겼던 시절, 그의 사진은 독창성으로 주목받게 된다.  

 

그 후 그는 낮에는 회사원, 밤에는 사진가로서 꾸준히 살아간다. 그렇게 조금씩 이름을 알리고 있을 때였다. 2009년 12월, 그의 인생에 전환점이 찾아왔다. 캐나다 옐로나이프로 가는 ‘오로라 원정대’에 천체 강사로 초청되어 참여하게 된 것이다. 캐나다 옐로나이프는 오로라를 관측하기 가장 좋은 장소로, 세계적으로 ‘오로라의 수도’라 불리는 곳. 그동안 직장인으로 살아가면서 오로라에 대한 로망을 간직했던 그에겐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그는 그곳에서 오로라보다 더 충격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바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만남이었다. 늘 마음 깊이 별과 사진을 꿈꿔왔지만 안정된 생활을 위해 대기업에 취직했던 그였기에, 자신의 꿈을 현실로 실현시키면서 사는 원정대 사람들의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크나큰 자극이 되었다. 이를 계기로 그는 본격적으로 천체사진가의 길을 걷게 된다.

전업 사진가로 살겠다고 결정하기까지 가장 두려운 게 무엇이었나요?

꼬박꼬박 나오던 월급이 나오지 않는다는 거였죠. 사실 그것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지 못했는데 그때 만난 만화가, 블로거들이 굉장히 자유로운 거예요. 자기 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처음 만난 거죠. 저렇게 해도 먹고사는데 나라고 못 먹고살겠나…. 그걸 확인한 순간 사람이 바뀐 거죠. “회사 그만둡니다.” 돌아온 지 일주일 만에 선언해 버렸어요. 불안감이 증폭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선언하는 순간 없어지더군요.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죽기 전에 보아야 할 천문 현상 3가지로 오로라, 대유성우, 개기일식을 꼽는데, 오로라를 본 느낌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오로라는 태양 에너지와 지구의 자기장이 반응해서 빛을 내는 건데, 사진을 보면 정적이지만 무척 동적이거든요. 빛이 춤을 춥니다. 밝을수록 빨리 움직여요. 이를 오로라 댄싱이라고 하는데 오로라의 결이 마치 피아노 건반 치는 모양, 속도로 물결을 칩니다. 그리고 그다음 단계, 오로라 폭풍이 되면 밤하늘 전체를 가득 채우면서 빛이 휘몰아쳐요. 초록색, 핑크빛 색깔이 하늘을 덮는다는 거예요. 특히 핑크빛은 가장 강한 오로라에서 도는데, 밤하늘 전체에 핑크빛이 쫙 쏟아지는 상황이 되면 반쯤 넋이 나가요. 뭘 할 수가 없어요. 정말 카타르시스가 확 오는 거예요. 오로라는 인간이 자연에서 경험할 수 있는 현상 중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후로도 여러 꿈에 도전하셨지요.

오로라가 보고 싶다는 작은 꿈을 이루고 나니 다음 꿈이 보이는 거예요. 10년 전부터 킬리만자로에 가고 싶었거든요. 그곳이 딱 적도여서 북쪽 밤하늘, 남쪽 밤하늘이 다 보이고, 재밌는 게 적도는 별이 수직으로 떠요. 그 궤적이 재미있는 곳이에요. 킬리만자로에서 별을 보고 나니까 남반구 쪽으로 가고 싶더군요. 그래서 호주로 가고. 그렇게 당장 하고 싶은 걸 하면서 꿈에 한발 한발 다가갔죠.

△△ 지난 7월 14일, 미 항공우주국(NA SA)이 운영하는 오늘의 천체사진으로 선정된, 2013년 캐나다 옐로나이프에서 촬영한 오로라 사진.
△ 2002년 학암포에서 촬영한 일주 사진으로 이듬해 천체사진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그동안 천체사진을 찍으면서 있었던 에피소드나 고생담을 들려주신다면?

사실 찍힌 풍경은 천국같이 멋있지만, 촬영자는 지옥의 문턱까지 갔다 오는 거예요. 저는 가는 데가 비행기 3번이 항상 기본이거든요. 게다가 40kg이 넘는 장비를 메고 다녀야 하죠. 이번에 미국 유타주 사막에서 촬영할 일이 있었는데 차가 못 들어가요. 그늘이 한 점도 없는, 모래 온도가 40~50도가 넘는 곳을 장비를 혼자 짊어지고 사막을 횡단한 적이 있었어요. 그날 마신 물만도 7리터. 물도 지고 가야 하니 그 무게도 만만치 않죠. 또 서호주에서는 카메라 3개를 이곳저곳에 설치하느라 40시간 동안 잠도 못 자고 찍은 적도 있고요.

수입은 절반 이하로 줄었고, 육체적으로도 힘들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기에 그 누구보다 행복하다는 권오철 작가. 그런 그의 꿈에 날개를 달아준 게 있었으니 바로 타임랩스(time-lapse) 기법이다. 타임랩스란 수천 수만 장의 사진을 연속으로 찍어 동영상을 만드는 것으로, 사진만 해온 그가 영상 분야까지 손을 뻗을 수 있게 된 것. 그 후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별무리의 이동, 해와 달의 움직임까지 이 모든 것을 생생하게 카메라에 담을 수 있게 되었다.

언제부터 타임랩스 촬영 기법을 연구해 오신 건가요?

2000년대 초반인데 디지털카메라가 처음 나왔을 때부터 성능이 어느 정도 좋아지면 일주를 안 찍어도 되겠구나, 사진을 여러 컷 찍어서 영상으로 만들 수 있겠구나 예상했거든요. 제 사진들을 보면 처음엔 일주 사진이잖아요. 그 이유가 어두운 밤에 촬영을 하다 보니 필름은 감도(빛을 느끼는 정도)가 약해서 빛을 조금이라도 더 주기 위해 노출을 길게 해서 찍다 보니 궤적으로 찍을 수밖에 없었어요. 근데 디지털카메라가 성능이 급격히 좋아지고, 2008년인가 그 모든 성능을 충족하는 카메라가 나오면서 비로소 촬영이 가능하게 됐죠.

“디지털카메라가 널리 보급되면서 누구나 같은 장소에서 비슷한 장비로 촬영하면 비슷한 사진을 얻을 수 있다 보니 진정성이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말한 진정성이란 무엇인가요?

꾸준함과 관계되는 거죠. 아마추어들이 배병우 선생님이 소나무 사진 찍는 곳에서 똑같이 찍어요. 그 사람들 사진과 대가들 사진 중 잘 찍은 사진 한 장씩만 뽑아서 비교하면 거의 비슷할 거예요. 근데 100장을 갖고 와라 해서, 100장을 갖고 보면 거기서부터 얘기가 달라지는 거죠. 진정성이란 거기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꾸준하게 나만의 사진을 찍었나, 안 찍었나. 사진 한 장을 흉내낼 수는 있어도 인생을 흉내낼 수는 없거든요.

천체사진을 통해 우주와 별을 대하면서 깨달은 게 있다면요?

사실 우주의 크기는 상대적인 거예요. 천 억 개의 별이 있고 천 억 개의 은하가 있지만, 거꾸로 말하면 내 눈에 비치는 게 전부죠. 그것은 내가 인지하는 범위 안에 있다는 거고요. 사실 우주 입장에서 보면 인류 역사, 지구, 개인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거예요. 모든 게 에너지와 물질의 순환 중 하나니까. 그런데 한편으론 그렇지 않다는 거죠. 생명체 입장에서는 내가 죽으면 우주가 끝나는 것이니까 의미 있는 거죠. 인간의 평균 수명 80년을 날짜로 계산하면 3만 일이 되거든요. 근데 어릴 때 1만 일 날아가고, 늙어서 힘없으면 1만 일 날아가고 그럼 1만 일 남는 거예요. 시간이 얼마 없어요. 근데 그마저 돈 버는 데 소모하고 있는 거죠. 자신의 존재에 감사해하고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기에도 시간은 너무 짧아요.

요즘은 천체사진가에서 나아가 꿈 멘토로도 활동하고 계신데, 그런 이유 때문인가요?

요즘은 꿈 고문을 너무 많이 하는 거 같아요. “꿈을 찾아라, 꿈이 뭐니?” 사실 학생들이 사회 경험도 없고 내가 뭘 잘하고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찾아가는 단계인데 어떻게 알겠어요. 꿈은 지금 현재가 행복해야 된다는 것, 지금 하고 싶고 당장 하고 싶은 것 있으면 그거 하라는 거죠.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내 자리에서 발돋움하면 손에 닿을 정도, 그게 꿈이라는 거예요.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성취감도 느끼고 경험치가 넓어지다 보면 정말 잘하는 걸 찾게 되고, 좋아하는 걸 찾을 수 있게 되니까요.

나에게 별이란?

사진 소재이기도 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이죠. 꽃이나 동물은 좋으면 꺾어다가 혹은 데려가 키우고 싶잖아요. 하지만 별은 딸 수가 없으니, 그게 정말 다행이구나 싶어요. 너무 멀리 있어서 사진으로밖에 못 담으니까요. 그렇게 좋은 사진들을 찍어서 갤러리를 만드는 게 꿈이에요. 제 사진뿐만 아니라 세계의 천체사진가들이 자신의 사진을 전시하는 걸 최고의 영예로 여길 정도로 좋은 천체사진 박물관을 만드는 거죠. 그러면 죽은 뒤에도 별과 함께 영원히 사는 거니까요. 그러기 위해선 내가 먼저 좋은 사진을 많이 찍어 큰 꿈으로 가는 작은 점들을 이어가야겠지요.

2012년 8월, 태백에서 촬영. 달이 멀리 있는 천체인 금성을 가리는 현상을 담아냈다.

‘별을 좋아하는 사람은 꿈이 있는 사람’이라는 권오철 작가. 일곱 개의 별들이 이어져 국자 모양의 북두칠성을 이루듯, 그는 작은 꿈들을 차례대로 이루어가면서 마침내 천체사진가라는 큰 꿈을 이루었다. “사람들이 꿈을 못 이루며 사는 이유는 너무 멀고 큰 꿈만 꾸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이 이 순간 정말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천체사진가 권오철님은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를 졸업했으며, 세계적인 천체사진가로 활동 중입니다. 매거진 <내셔널지오그래픽> 사진 제공 및 초·중·고 과학 교과서에 다수의 천체사진을 수록하였으며, NASA ‘오늘의 천체사진’에 한국인 최초로 선정되었습니다. 저서로 <별이 흐르는 하늘> <신의 영혼 오로라> <진짜 너의 꿈을 꿔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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