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장 없는 미술관, 벨기에

글&사진 이용한 <시인, 여행가>

“웃지 않으면 울게 된다.” 벨기에의 속담이다.

벨지안들은 아주 심각한 사건에 처했을 때조차 고함을 지르거나 화내기보다는 농담이나 은근한 독설로 구렁이 담 넘어가듯 상황을 비켜나간다. 설령 그 농담이 썰렁한 것일지라도 그들은 기꺼이 웃을 준비가 되어 있다. 여행을 하다 보면, 긴장과 짜증, 기대와 설렘이 혼합된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별것 아닌 것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게 된다. 공연히 사람을 의심하고 주변을 의식하게 된다. 표정은 굳어지고 행동은 부자연스러워진다. 그럴 땐 이렇게 중얼거려 보는 거다. “웃지 않으면 울게 된다.” 억지로 웃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우는 것보다는 웃는 게 나으니까.

여자들만 살던 ‘여자들만의 마을’이 있다. 비헤인호프Begijnhof. 벨기에 지역에 남아 있는 비헤인호프는 헨트를 비롯해 브뤼헤와 안트베르펜, 리르, 디스트 등 12곳에서 볼 수 있는데, 모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비헤인호프는 일종의 수도원 보호소로서, 주로 과부(전사한 군인의 부녀자들), 보호자가 없거나 순결을 맹세한 소녀들, 수녀들이 살던 마을을 가리킨다.

헨트 시가지 서북쪽에 위치한 비헤인호프는 사방이 성과 같은 벽으로 둘러싸인 곳으로, 벨기에에서도 비헤인호프의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곳으로 손꼽힌다. 철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고풍스러운 중세의 집들이 성당과 수도원 안뜰을 호위하듯 둥그렇게 에둘러 있다.

비헤인호프가 일반인에게 조금씩 개방되기 시작한 것은 2차 대전 이후인데, 지금은 많은 일반인도 아예 이곳에 들어와 살고 있다. 이곳의 집값은 헨트에서도 가장 비싸기로 유명하다. 당연히 이제는 비헤인호프가 헨트에서 가장 부자들만 사는 곳이 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곳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향후 99년 동안만 사유 재산이 인정된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99년 후에는 다시 국가에 돌려줘야 한다는 얘기다.

▲ 브뤼헤 종탑에서 바라본 중세도시의 풍경.

▼ 헨트에 있는 여자들만의 마을, 비헤인호프.

이른 아침, 마르크트 광장의 종탑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다. 1년을 상징하는 366계단의 끝자락에 매달린 47개의 종이 댕댕 듣기 좋은 소리를 낸다. 브뤼헤 종탑의 종루는 아름다운 도심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이며, 중세 도시의 그윽한 향기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다.

둥그렇게 수로가 감싸고 있는 브뤼헤 도심은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세로로 세워놓은 달걀처럼 생겼는데, 그 노른자위에 마르크트 광장과 종탑이 자리해 있다.

종루에 올라 브뤼헤 도심을 내려다보면 북서쪽으로 어스름하게 풍차의 언덕이 보이고, 남쪽으로는 살바토르 성당과 비헤인호프가, 서북쪽으로는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고풍스러운 중세 건축물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47개의 종을 거느린 브뤼헤의 종탑(13~15세기 건축)은 벨기에의 다른 종탑 29개와 함께 199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높이는 88m, 종의 무게를 다 합치면 무려 27t에 이른다. 사실상 브뤼헤에 와서 종탑을 오르지 않고는 브뤼헤를 보았다고 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은 브뤼헤를 가리켜 ‘천장 없는 미술관’이라고 부른다. 또 어떤 사람은 브뤼헤를 일러 ‘서유럽의 베네치아’라고 한다. 고풍스러운 도시와 수로가 제대로 어울린 브뤼헤에게 이 말은 찬사가 아니라 당연한 수식어다.

이용한님은 1968년 충북 제천에서 태어나 1995년 <실천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했습니다. 길에서 만난 순수한 풍경과 사람, 고양이를 담아온 사진가이기도 한 님은 그동안 시집 <안녕, 후두둑 씨>, 문화기행서 <사라져가는 오지마을을 찾아서> <옛집 기행> 고양이 시리즈 <명랑하라 고양이> 등을 펴냈으며 영화 <고양이의 춤> 제작에도 참여했습니다. 여행 에세이로는 <티베트 차마고도를 따라가다> <잠시만 어깨를 빌려줘> 등 다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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