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 어린 믿음과 진심으로 나를 믿어주는 이가 있을 때, 우리는 성장하고 변화합니다. 믿음, 그 두 번째 이야기.


‘어떤 것을 보려면 먼저 믿어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내 안에 부정이 가득하면 제대로 보일 리가 없겠지요. 믿음은 가장 용기 있는 것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안 될 거라는 부정과 불신, 아니겠지, 하는 의심을 넘어설 때라야 진정한 믿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심 어린 믿음이 있을 때, 진심으로 나를 믿어주는 이가 있을 때, 우리는 성장하고 변화합니다. 믿음, 그 두 번째 이야기. <편집자 주>

나는 다른 어떤 것도 필요 없었고 이미 충분한 능력과 재능을 갖고 있었다.

그분이 그 사실을 내게 일깨워준 것이다. 그분은 말했다. “나는 너를 믿는다. 이제는 네가 너 자신을 믿을 차례다.”

– 엘리자베스 스털링. 방송인. <내 안의 빛나는 1%를 믿어준 사람>(푸른숲)에서

경험보다는 믿음이 진리를 더 빨리 파악한다.

믿음이란 마음속의 앎이요, 증거의 테두리를 넘어서는 앎이다.

– 칼릴 지브란

나는 내가 장차 어떤 사람이 될지 알지 못했다.

다만 한 가지, 나는 그 모든 것을 견디고 살아남을 것이라는 사실만큼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한 특별한 선생님이 당신이 내게 마음을 쓰고 계시다는 걸 보여주셨기 때문이다. 그 믿음은 나로 하여금 모든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게 해주었다.

– 엘린 켈리. 교사. <고맙습니다, 선생님>(다산책방)에서

내 안에 있는 참과 하나 되는 것

훌쩍 나를 넘어설 수 있는 것 지금이 참 좋은 때임을 잊지 않는 것 심장이 터지도록 뛰어보는 것 상대를 항상 기쁘게 하는 것 참의 마음으로 하는 것 마구 퍼주는 것 약속을 지키는 것 언제나 준비가 되어 있는 것 언제라도 당당하게 만날 수 있는 것 하염없이 즐겁고 행복한 것 무게와 가치를 아는 것 등불을 밝히는 것 주위 사람들 눈에 눈물 흘리지 않게 하는 것

– 믿음을 떠올리며

믿음이란 온 힘을 다해 노력하는 것이며,

과감한 모험이며, 어떤 상황에서도 봉사할 수 있는 힘이다.

– 사무엘 E. 키서

태양이 햇빛을 발하지 않을 때도 믿으며,

사랑을 느끼지 못해도 믿으며, 하나님이 침묵하고 계실 때도 그를 믿는다.

– 미상

♬ 나에겐 너무나 큰 의미, 아.버.지.

초등학교 시절의 아토피, 사춘기의 방황, 실명 위기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아버지는 나를 믿음으로 끌어주셨다.

초등학교 4학년 때였던 것 같다. 갑자기, 온 얼굴과 목에 발진이 생기고 붉게 달아오르는 심한 아토피 증상이 생겼다. 몇 년간 먹고 바른 피부과 약도 내성이 생겨 듣지 않았고, 오히려 피부와 온몸의 장기들이 더 심하게 손상되어버렸다. 나는 대인기피증까지 생겼다. 보다 못한 아버지는 백방으로 수소문하셨고, 몸속의 나쁜 노폐물을 뽑아내는 ‘배독 요법’이라는 새로운 치료법을 찾아내셨다. 이걸 하기 위해서는 찜질방엘 매일 가야 했는데, 아버지는 바쁜 와중에도, 내가 학교를 마치는 시간에 학교에 오셔서, 찜질방까지 데려다 주셨다. 그리고 치료를 마치면, 다시 데리러 오기를, 하루, 이틀, 삼 일…. 그렇게 3년 동안을 꾸준히 해주신 아버지 덕분에,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나는 대인기피증을 벗어던지고 원래의 활발한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아토피를 심하게 앓으면서 나도 모르게 쌓인 게 많았던 걸까. 남들보다 조금 늦게 찾아온 사춘기는 그야말로 질풍노도의 시기였다. 중2 무렵 사람들 만나는 게 즐거워진 나는 여러 핑계를 대며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놀러 가곤 했다. 한번은 독서실에서 늦겠다는 핑계 전화를 했을 때였다. 공부 잘하는 애 이름을 대며 걔랑 같이 공부하고 있는데 좀 늦을 것 같다고 하자 어머니가 “그럼 그 친구 좀 바꿔봐라” 하시는 거였다.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데, 전화기 너머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애가 공부하고 오겠다면 그런 거지, 뭘 친구를 바꿔달라고 하냐”는 말씀이셨다.

변함없는 아버지의 믿음과 관심 덕분에 다시 맘잡고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던 차에 또다시 일이 터졌다. 눈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 것이다.

지금도 생생한 2008년 8월 15일 아침이었다. 일어나 눈을 떴는데 세상이 뿌옇고 노랗게 보였다. 병원에 가서 들은 얘기는 충격이었다. 오른쪽 눈은 이미 실명 직전이라 손을 쓸 수 없고, 왼쪽 눈 상태도 심각하다는 것이었다. 상태가 너무 많이 진행되어서 더 이상 의사가 손쓸 수 있는 건 없다고 했다. 너무나 괴로웠고 절망했었다.

하지만 나마저도 내 눈을 포기하고 있을 때 마지막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분은 역시 아버지셨다. “부산에서 안 되면 서울 가자, 거기서도 안 되면, 다른 나라라도 가자.” 그러시면서 내일은 눈이 영영 안 보이면 어떡하지, 겁먹고 잠도 못 자던 내게, “희망을 잃지 말자, 치료 주체인 네가 포기하면 안 된다”고 힘을 주셨다. 당신은 가슴으로 우시면서.

아버지가 백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서울의 종합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8시간 가까운 수술 두 차례, 그리고 여러 차례의 시술을 받은 끝에야, 왼쪽 눈을 살릴 수 있었다.

내 스스로 포기했을 때조차 끝까지 나를 포기하지 않고, 될 수 있다고 믿어준 아버지 덕분에 나는 지금 왼쪽 눈이나마 세상을 보며 살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나와 한 약속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한 번도 어기신 적이 없었던 아버지. 당신 스스로 믿음과 신뢰가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셨던 아버지. 신뢰할 줄 아는 사람이 신뢰받을 수도 있다고 하셨던 아버지. 아버지처럼 나 또한 사람들을 믿을 수 있는 큰 그릇이 되고 싶다.

아버지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 강백구 / 24세. 대학생. 부산시 동래구 안락1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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