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만의 노하우를 갖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살아 있는’ 노하우들을 소개합니다.

친구 같은 아빠 되기, 어렵지 않아요~

김동권 <아빠와 10분 창의놀이> 저자, 육아 파워블로거 www.monsterdad.kr

나는 일주일에 7일 출근하는 일중독 아빠다. 결혼한 다음 해에 아이가 태어났지만, 아이가 9살 될 때까지 나는 육아에 신경을 전혀 쓰지 못했다. 아이가 다가와 “아빠. 제가요… 오늘이요…” 이렇게 말을 걸어와도 나는 “피곤해… 다음에…” 이 말만 반복했다.

가끔 영화에서 아빠와 아이가 친구처럼 지내는 장면을 보면 왠지 뭉클하고, 늘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봤지만 똑같은 패턴이 반복될 뿐이었다.

그러다 아이가 9살이 되었을 때, 하루는 집에서 말없이 아이를 쳐다보았다. 피곤에 지친 내 굳은 얼굴을 본 아이는 겁이 났는지 갑자기 막 울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충격을 받았다. ‘아이에게 비춰진 내 모습은 아빠가 아니라 괴물이구나. 항상 일만 하는 괴물.’

가족의 행복을 위해 바쁘게 일하는 거니까, 표현하지 않아도 알아주겠지 했지만 그건 아니었다. 더 늦기 전에 한 번 지나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 아이의 유년기 추억 속의 아빠라는 모습을 ‘두려움, 딱딱함’이 아닌 ‘재미, 즐거움, 흥분, 기대’로 심어주고 싶었다. 놀아줄 시간도 없었고, 방법도 몰랐던 내가 시행착오 끝에 터득하게 된 노하우를 이야기해보고 싶다.

우선 아이와 잘 놀아주는 아빠가 되기 위해 아빠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부터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아이와 뭔가를 해야겠다고 느낀 그날부터 나는 무엇을 함께할 수 있는지 고민했다. 축구도 해보고, 배드민턴도 해보고, 동화책도 읽어줘 봤지만 모두 3일을 넘기지 못하고 흐지부지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응가 콤플렉스가 있는 아이를 위해 달력 뒷면에 하마 얼굴을 그려서 변기에 붙여주었다. “얘는 똥 먹는 하마야. 입을 쩍 벌리고 네 똥을 먹고 자라는 하마지. 가끔 오렌지주스도 주면서 친하게 지내.” 응가 하는 것을 무척 부끄럽게 생각하던 아이가, 차츰 응가 하는 것을 재미있어 했다. 가끔 얘기하는 것도 보게 되었다.

“하마야. 잘 자~ 내일도 맛있는 응가 줄게~” 그림 한 장 그려서 붙여주고 이야기를 만들어줬을 뿐인데, 이렇게 많이 달라지는 것을 보고는 놀랐다. 그때부터 아이를 위해 무엇을 그릴까, 무엇을 만들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집에 굴러다니는 재활용품으로 놀이를 만들어 아이와 조금씩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아이가 너무 재미있어하는 것이었다. 그 이후로 아이가 잠든 시간에 재활용품으로 새 놀이를 만들었다. 아침에 ‘짠’ 하고 보여주면 아이가 좋아하니까 점점 더 신이 나 하게 되었다.

이것만은 3년 넘게 꾸준히 하고 있다. 이걸 꾸준히 할 수 있었던 이유를 생각해 보니 아이를 떠나서 나 자신이 좋아했던 것을 한 것이 성공의 비결이었다. 어렸을 때 취미 중의 하나가 그림을 그리거나 창의적으로 뭘 만드는 것이었다. 의무감이 아니라 내가 즐거우니까 더 잘하게 된 것이다. 그걸 30년간 잊고 살아왔었는데 나이 사십이 넘어서야 비로소 다시 피어나게 되었다. 200여 개의 재활용 놀이를 만든 지금에 와서도 계속해서 같은 흥분에 빠지게 된다. ‘오늘은 또 무슨 재미있는 놀이를 만들까?’ 이런 생각을 하며 말이다.

또 한 가지 꾸준히 할 수 있는 비결은 목표를 낮게 잡는 것이었다. 나는 처음부터 아이에게 매일 10분씩 놀아주겠단 약속을 했다. 아마 30분, 1시간으로 정했다면 한 달도 못 갔을 것이다. 그리고 재활용품 놀이도 최대한 간단히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나 자신에게도 부담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다만 노는 동안만큼은 최선을 다한다. 이게 반복되니 아이도 아빠에게 신뢰가 생겨서 무조건 더 놀아달란 떼를 쓰거나 불평하지 않았다.

나도 처음엔 아이와 놀아준다는 것이, 날 잡아서 여행을 가거나 나들이를 가는 거창한 것으로만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얼마나’ 놀아주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놀아주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내가 놀이를 만들어 아이와 논 지 두 달이 되었을 때, 아이가 다가와 내게 과자 선물을 주면서 말했다. “우리 아빠 최고!” 그 순간 눈물을 흘렸다.

아내의 권유로, 나처럼 바쁜 아빠들에게 도움이 될까 해서 내가 만든 놀이들을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했는데, 얼떨결에 아빠로서는 최초로 네이버 육아 파워블로거가 되기도 했다.

나는 그냥 먹고살기 위해 평범한 일을 하는 한 가장이다. 내 꿈과 생활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어떻게 보면 ‘아빠와 함께하는 10분 게임’을 통해 내가 하고 싶었던 모든 것들을 응축해서 아이와 함께하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요즘 몸은 더 바빠졌지만 마음만은 행복하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을 품고만 있는 게 아니라 작게라도 일단 시작하는 것이 중요한 거 같다. 대한민국 모든 아빠들이 바쁜 와중에도 가족과 함께 행복해지시길 소망한다.

박현웅 작.

<영원한 보헤미안>

70×50cm.

Mixed media. 2012.

18년 차 백수의 백수 생활 노하우

주덕한 46세. 전국백수연대 대표. 인터넷 카페 백수회관 cafe.daum.net/backsuhall

요즘 같은 불경기에 스스로 회사를 그만둔다고 하는 ‘예비 백수’가 주변에 있다면, 일단 뜯어말리는 것이 좋겠다. 회사를 때려치우고 나서 하는 일이 대개 자영업인데, 서울시의 경우 3년 이내 절반이 폐업한단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백수가 될 수밖에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실직 생활을 즐기는 그 노하우를 이야기해보고 싶다.

백수 생활을 즐기겠다고 하면, 일단 부정적인 생각이 앞선다. 그러나 나는 백수 생활이 내세울 일은 아니지만, 반드시 부끄러워야 할 일도 아니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사실, 세상만사가 그렇듯 백수 생활도 나름의 장점과 단점이 공존한다. 백수 생활로 인해 경제적 여유는 없어지긴 하지만, 반대로 시간적 여유가 주어진다. 하지만 이렇게 주어지는 시간적 여유를 제대로 활용하는 초보 백수들은 드물다.

내가 백수의 길을 걷게 된 것은 1996년 7월, 회사에 사표를 내고 나서부터이다. 대학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는 것이 삶의 당연한 매뉴얼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 생각이 깨지게 된 게 졸업 후 3개월 동안 유럽 여행을 다니면서였다. 그곳에서 수많은 배낭여행족을 만났는데, 그들 중에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1년 이상 여행을 다니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앞날이 걱정되지 않냐고 물었더니 “직장은 또 구하면 되지”라고 태연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에 놀랐다. 돈이나 직장이 없어도 충분히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처음으로 ‘다르게 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1995년 여행에서 돌아와 한 IT업체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한창 회사의 틀을 잡아가던 시기였기에 야근은 기본이고 며칠씩 밤새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그러다 나를 채용했던 젊은 대표가 과로사하고 말았다. 인생무상이라는 말이 실감 나고 1년 반 동안 정신없이  달려왔는데, 과연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게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6개월 휴직계를 내고 회사를 나왔다. 사실 그때만 해도 이게 20년 가까이 이어질지는 몰랐다.

처음에는 가족과 주변의 눈치도 보였다. 하지만 이왕 백수인 거 당당한 백수가 되자 마음먹었다. 그 이후 총각 파출부, 인구 조사 아르바이트, 방청 아르바이트, 돌잔치 이벤트 플래너 등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며 필요한 만큼 벌고, 번 만큼 쓰며 그동안 하고 싶은 일들을 했다.

그중 하나가 여행이었다. 유폐되듯 방 안에서 아무리 고민해도 보이지 않던 앞길이 길 위에서는 보일 수도 있다. 월세도 서너 달 밀리고, 전기세 낼 돈도 여의치 않던 지리멸렬했던 1999년, 일본에도 백수 단체(다메렌)가 있으니, 국제 교류를 해보면 어떠냐는 이야기에 단돈 6만 원을 갖고 15일 간의 일본 도쿄 여행을 갔다. 일본어는 배워본 적이 없고, 일본 친구도 한 명 없었지만, ‘궁하면 통한다’는 백수정신(?)이 통했을까? 결론적으로는 즐겁게 잘 다녀올 수 있었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일본의 NPO(비영리 단체) 활동가들을 만날 기회도 가졌다. 수입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 교류와 만남들은 인터넷 카페모임 ‘전국백수연대’를 2006년 서울시 비영리 민간 단체로 등록하고, 내가 ‘백수활동가’로 활동하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여행을 통해 정말 하고 싶은 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볼 ‘생각의 힘’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늘 수입이 생기면 새로운 분야의 책들을 찾아 읽으며 사회를 보는 안목을 넓혔다. 그러다가 나의 경험들과 자료들을 모아 백수들을 위한 안내서를 출판하게 됐다. 책의 반응은 뜨거웠고 언론에 인터뷰한 것을 계기로, 전국 백수들과의 모임을 갖게 되었다. ‘백수’ 하면 돈 없고 주위에 빌붙기 좋아하는 민폐 캐릭터의 이미지가 강했는데 그와는 달리 만나 보니 유쾌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 과정들을 통해 물질과 지위를 떠나 사람 자체를 볼 수 있는 안목도 얻었다.

2006년 ‘전국백수연대’를 시민 단체로 정식 등록한 후에는 더 다양한 청년 실업 관련 활동을 했다. 때로는 내가 정말 백수 맞나? 싶을 정도로. 각종 자료와 나의 경험들을 토대로, 힘들어하는 백수들의 상담도 해주고, 그들이 잘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주려 노력했다.

백수라서 못 하는 일보다 백수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았다. 그건 돈보다는 의미 있는 일을 해보자고 마음먹고 일단 부딪쳐보았기 때문이다. 뜻이 있으면 길은 항상 있는 거 같다. 요즘에는 퇴직 연령이 낮아지며 50대 은퇴 백수들도 늘어나고 있는데, 그들을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도 고민하고 있다. 새로운 일자리 모델을 만들고, 사회문제를 연구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그런 단체가 되고 싶다.

백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음’이 아니라 ‘도전할 것이 너무 많은’ 이들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백수보다 꿈꾸는 백수, 노력하는 백수가 되고, 눈을 낮추는 게 아니라 눈을 맞추면 결국 나는 한발 더 발전하고 있는 백수 아닌 백수가 되어 있을 것이다.

박현웅 작.

<어느 소설가의 집>

11.5×17.2cm.

Mixed media. 2012.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호칭의 노하우

방진섭 50세. 대전 <카이스트> 교학기획팀 팀장

현대인들은 대부분 조직 생활을 통해 삶을 영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직의 성격과 임무 그리고 역할은 각양각색이겠지만 그 속에서 함께 어우러지며 살아가고 있는 모습은 대동소이하지 않을까!

드라마를 통해서 보는 여러 직장의 구성원들 간 호칭을 보면 상사의 경우는 ○○ 실장님, ○○ 이사님 등 직위를 부르지만 동료와 부하 직원의 경우에는 ○○씨, ○○양 등이 사용되는 것 같다. 그런데 이러한 호칭에는 존중과 정감이 느껴지기보다는 무미건조하고 사무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90년대만 해도 남성 중심이었던 조직에 점점 여성 비율이 높아지면서, 특히나 여성을 향한 호칭을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호칭에는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있어야 하며, 상대에게 하는 호칭이 나의 인격을 표현하는 하나의 효과적인 언어 수단이라는 정의를 내리게 되었다.

나름대로 호칭에 대한 정의를 내리다 보니 “상대를 존중하고 기분 좋게 만들면서 나를 각인시킬 수 있는 호칭이 무얼까?”를 고민하였고, 그 결과 여직원들에게 “○○ 선녀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해보기로 하였다. 가만 보니, 언제나 곁에서 나의 업무를 도와주고, 성과를 이룰 수 있도록 함께해주는 여직원들이야말로 나에게는 선녀 같은 존재가 아닌가.

결론적으로 그것은 그야말로 대박 사건이었다. ○○씨 대신에 “○○ 선녀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게 되자 처음에는 당혹스러워하고 낯설어하였지만, 자신을 존중하고 기분 좋게 만들어주기 위한 것임을 알고 익숙해지면서 오히려 나를 좋은 이미지로 각인시키는 효과를 발휘하게 되었다.

15년 정도 전부터 이 호칭을 쓰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내부 여직원뿐만 아니라 일을 하게 되면서 접하게 되는 외부 여직원분들께도 당당히 “○○ 선녀님”이라고 호칭하고 있다.

간혹 상대가 당혹스러워하면 이제는 옆에 있는 우리 직원들이 대신 호칭에 대해 설명까지 해주면서 나를 지원해준다. 오히려 이제는 중년의 여직원분들은 선녀님이라고 불러주지 않으면 싫어하는 정도까지 되고 있다. 결혼을 하고 자녀가 성장을 해도 여전히 선녀님이라는 호칭은 상대를 기분 좋게 만드는 모양이다.

어떤 존칭이든 좋다. 상황과 직무, 관계에 맞는 좋은 존칭을 고민해보자. 좋은 존칭은 내 마음까지 저절로 상대에 대해 존중의 마음이 생기게 해주니까.

상대를 존중하고 기분 좋게 만드는 것이 결국은 내가 존중받고 나 역시 기분 좋아진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 확인하면서 나는 오늘도 나의 ‘선녀님’들을 부르고 있다.

박현웅 작.

<전망 좋은 방>

50×70cm

Mixed media.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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