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97, 그리고 1994

“당신은 언제 첫사랑이 그리운가요?”

첫사랑과 이루어지지 않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음속에 첫사랑을 추억하는 방이 하나씩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살기가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지금 삶의 무게에 허덕일 때, 내 마음속에 숨겨둔 순수했던 지난날의 추억을 꺼내들게 된다. 그건 단지 첫사랑이 아니라, 그 시절의 아직은 많은 가능성을 품었던 나를 꺼내보는 것이니까.

<응답하라 1997(이하 응7)>에 이어, 호응을 얻고 있는 <응답하라 1994(이하 응4)>는 흡사, 이렇게 다시 꺼내보는 첫사랑과도 같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90년대의 그 시절에는 한없이 철없어 보이는 ‘빠순이’요, 서울에 와서 하숙집조차 제대로 못 찾아가고, 패스트푸드점에서는 주문조차 못하는 ‘모질이’로 시작된다. 하지만 <응7>에서도 그랬듯이, 그런 그들이 현재로 오면 대단한 사람들이 되어 있다. 한없이 부족해 보이던 그들이 2013년의 현재로 오면 강남의 고층 아파트에 살며 넥타이를 맨 그럴 듯해 보이는 ‘성공’한 사람들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게 가수나 쫓아다니고, 농구장이나 들락거리고, 뭐 하나 제대로 한 거 없어 뵈는 철없는 아이들이 자라서, 대통령 후보도 되고, IT강국의 주체가 되고, 그럴 듯한 직업을 가진 어른이 되었다는, 그런 인물들을 만들어냈다는 세대적 자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장치이다.

90년대의 세대가 누구인가. 고단했던 정치적 격변기를 살아낸 선배 세대와 달리, 정치적으로는 상대적 안정기를 겪으며, 경제적으로는 그 어느 세대보다도 풍족하게 젊음을 누렸던 세대다. X세대다 뭐다 하며 유별난 별칭을 가지고, ‘빠순이’가 될 수 있을 정도로 풍족한 문화를 누릴 여건을 지녔던 세대였던 것이다.

그랬던 그들이, 오히려 지금 이 사회의 중추가 되어 살아가는 삶이란 고달프다.
경제는 장기적 불황기에 들어서, 앞선 세대와 달리 직장도, 집도, 그 어느 것도 녹록하게 내 몫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불안한 사회 안전망으로 인해 늘 위태롭고 흔들릴 뿐이다.

정치적으로는 어떤가. 지난 대선이 세대 대결이라는 평가가 나왔을 정도로, 그들이 이용할 수 있는 온갖 첨단의 SNS 등을 통해 ‘투표’를 독려했으나, 최근 불거진 대선 결과를 둘러싼 부정 음모 등으로 패배 의식을 떠안았을 뿐이다. 획일적 문화와 조직적 사고방식을 지양하고, 개인의 자유로운 삶을 꿈꾸지만 현실은 개인을 흔들고 나락에 빠뜨리려 한다.

그리고 바로 이런 세대적 불안함과 허무함을 위로한 것이 <응답하라> 시리즈이다.

단지 추억팔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추억을 길어 현실의 고단함을 툭툭 위로해주고자 하는 것이다. 마치 그 옛날 나탈리 우드가 나왔던 영화 <초원의 빛>처럼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라며 그 시절의 아름답고 화려했던 젊음을 다시금 조명해 준다.

현실에 지치고 고달픈 이 시대의 주역들에게, ‘너희들에게 이렇게 빛나고 아름다운 청춘이 있었어. 그리고 그런 시대를 지나 너희는 이만큼 성장하고 이루어내었어’ 하고 위로의 손길을 내민다. ‘자존감’을 가지라고, 첫사랑을 꺼내보듯, 그 찌질하지만 순수하고 아름답던 청춘을 되새기며 위로받으라고.

물론 ‘추억’은 위험하기도 하다. 첫사랑과의 추억에 빠지다 지금의 사랑을 놓칠 수 있는 것처럼. 그러나 주저앉아 그 어떤 것도 위로가 되지 않을 때, 때로는 빛이었던 자신의 젊은 날이 다시 한 번 일어설 힘이 되어주기도 할 것이다. 부디, 고달픈 현실을 살아가는 90년대 세대에게 위로가 되기를.

이정희

Leave A Comment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You may use these HTML tags and attributes: <a href="" title=""> <abbr title=""> <acronym title=""> <b> <blockquote cite=""> <cite> <code> <del datetime=""> <em> <i> <q cite=""> <s> <strike> <str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