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야쿠르트 아줌마를 보면 반가울까?

1971년 냉장고가 드물던 시절, 제품을 신선하게 배달하기 위해 생긴 야쿠르트 아줌마 제도. 47명으로 시작한 야쿠르트 아줌마는 현재 1만3천여 명이다. 야쿠르트 한번 먹어보지 않고 자란 사람 있을까? 노란색 옷과 모자, 노란 손수레를 끌고 동네 곳곳을 누비던 아줌마들은 어느새 거리의 문화가 되었다. 그런데 이제 노란색의 기억은 떠나보내야 할 거 같다. 44년 만에 새 유니폼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1977년 야쿠르트 아줌마가 된 후 37년째 한길을 걸어온 이재옥(64) 여사, 그녀를 통해 들어보는 야쿠르트 이야기. 정리 최창원

제가 이 일을 시작한 것은 27살 때였어요. 큰애가 갓 나서 심장 질환이 있었는데, 애 아빠 월급만으로는 병원비를 댈 수가 없으니까 나서게 되었죠.

1970년대 초반만 해도 사회 통념상 주부가 밖에 나가 일을 한다는 것은 드문 일이었어요. 그래서 1971년 처음 회사에서 아줌마들을 모집할 때만 해도 지원자를 구하기 어려웠다고 해요. 영업 사원들이 교회, 동사무소 등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 겨우 47명이 모집됐다니 실감 나죠. 그런데 몇 년 사이로 급성장하면서 6년 후 제가 시작할 때는 야쿠르트 아줌마가 전국에 2천 명 가까이 됐어요. 제품이 없어 못 팔 때도 많았습니다.

일을 시작한 곳이 여의도 지구였어요. 허허벌판이던 여의도에 국회도 들어서고 우후죽순으로 아파트 빌딩 같은 것들도 생기던 시대였습니다. 처음에는 거리를 다니며 야쿠르트를 팔고 배달하는 일이 어찌나 부끄럽던지. 혹시나 아는 사람을 만날까 봐 모자를 눈 위로 쓰고 다닌 적이 없었어요. 딸들이 부끄러워하면 어떨까 싶어서 말도 못 했고요. 그런데 나중에 아이가 쓴 일기장을 보게 됐는데 이미 알고 있었더라고요.

‘오늘은 날씨가 춥다. 엄마는 얼마나 추울까. 엄마의 옷소매에 찬 바람이 들어가겠지.’ 그 글을 보고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그다음부터 그래, 자존심이 어딨냐, 내가 부끄러운 일 하는 것도 아니고 더 당당해지자 마음먹었죠.

1971년 한국야쿠르트에서 처음 나온 야쿠르트는 용량 80ml, 25원에 판매됐다. 야쿠르트 아줌마들은 지금도 매출 90% 이상을 책임질 정도로 성실하게 활동하고 있다. 야쿠르트 아줌마들끼리는 ‘여사님’으로 호칭한다. 이재옥 여사는 현재 여의도 국회를 책임지고 있다.

44년 만에 바뀌는 새 유니폼은 정구호 디자이너의 작품. 통풍성이 뛰어난 기능성 소재를 사용했고, 기존 복장보다 세련되고 건강한 이미지를 연출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고 한다.

늘 내 손에서 전달되는 걸 맛있게 드셨으면 좋겠다, 이런 마음으로 배달을 해요. 매일 한 340집 정도를 배달했는데, 하루에 얼마나 걷나 싶어서 만보기를 차봤는데 만이천이 좀 넘게 나오더라고요. 하루 만 보만 걸으면 만병이 없어진다는데, 건강에도 좋겠구나 싶었죠. 야쿠르트 가방이 보기보다 되게 무겁거든요. 배달을 시작할 때 딱 이렇게 생각해요. 지금부터 헬스 시작이다, 야쿠르트 가방이 운동 기구다. 그런 마음으로 들고 걷고 뛰다 보면 일이 즐겁고 재밌어요. 만약에 단순히 일이라고만 생각했으면 이렇게 오래 못했을 거예요.

지금은 아니지만, 예전에는 얼굴들을 다 알았어요. 아이가 야쿠르트만 기다리고 있다가 인사도 하고, 집에 들어오라고 하면 같이 대화도 나누고. 맨날 저만 기다리던 혼자 사는 할머니도 계셨어요. 대화할 상대가 없다 보니 항상 저를 반겨주셨는데, 수년 동안 그렇게 보아온 할머니가 어느 날 돌아가셨을 땐 참 안타까웠죠. 어느새 동네 이정표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길에 서 있으면 길도 많이 물어보세요.

물론 힘들게 하는 분들도 만납니다. 그러다 보니 참을 인자가 3번이 아니라 30번은 필요했을 때도 많았죠. 그래도 그런 과정에서 인생을 배우게 되더라고요. 마음 갖기에 따라 힘든 것도 즐거움으로 바뀔 수 있구나, 오늘이 조금 힘들어도 내 곁에 언제나 행복이 맴돌고 있구나도 알겠더라고요.

애기 때부터 야쿠르트 받아 먹던 애들이 커서 군대 가고, 또 결혼한다고 초대해주고 그럴 때는 꼭 제가 야쿠르트 먹여서 키운 거 같은 착각도 들면서 흐뭇해져요.(웃음) 이 일 하길 잘했다 싶고요. 이제는 성실하게 일해온 제 자신에게 만족합니다.

사실 저만이 아니라 우리 동료들이 다 그래요. 한번은 ‘야쿠르트 아줌마들의 자녀들이 대학 진학률이 높다’며 방송국에서 취재를 나온 적이 있습니다. 엄마가 거울이라고 하잖아요. 비록 자기네들을 건사 못 하고 나갈지언정, 열심히 사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그만큼 더 공부를 열심히 한 게 아닌가 싶어요. 우리 아이들도 그랬거든요.

30년 넘게 일을 했어도 야쿠르트 복장 입은 동료들을 보면 여전히 예뻐 보입니다. 올봄부터 새 옷으로 갈아입으니까 다들 더 젊어 보이는 거 같아요. 그럼 이제 또 배달하러 가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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