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네가 잘되면 배가 아플까?

연말이면 어김없이 각종 모임들이 열립니다. 그곳에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 후배의 승진 소식이라도 들으면 왠지 마냥 축하해주게 되지 않는 나의 속마음. 옹졸해 보이기는 죽기보다 싫지만 뭔가 뒤틀리는 심사를 막을 수 없습니다. ‘쟤들은 저렇게 잘나가는데 난 여태 뭐 했나?’ 순식간에 분노마저 느끼게 하는 그것의 정체는 바로 부러움입니다. 혼자 살지 않는 이상 누구나 그런 감정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러니 그런 마음을 애써 부정하기보다 삶의 전환점으로 활용하는 것은 어떨까요? ‘부러우면 지는 거다’라는 말처럼 부러워만 한다면 정말 지는 것, 그 부러움을 넘어서다 보면 어느 순간 더 멋진 나를 만나게 될 겁니다. -편집자주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속담은 일반적으로 ‘가까운 남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시기와 질투가 생긴다’는 의미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한 속담 연구가는 원래 이 뜻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촌이 땅을 샀을 때 뭔가 도와줄 일이 없는지를 먼저 생각한 좋은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퇴비와 비료가 충분치 않았던 옛날 농경 사회에서는 인분이 중요한 거름이었다. 따라서 배라도 아파서 거름을 만들어줘야겠다는 뜻으로 그 속담이 나왔다는 것이다. 그러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그 의미가 왜곡되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두 해석 모두 일리가 있다고 보인다. 첫 번째 해석을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시기와 질투를 아예 인정함으로써 오히려 그것을 경계 삼자는 뜻으로 본다면, 어떠한 경우에도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살라는 우리 조상들의 본래의 뜻에 맞지 않는가.

페이스북, 그대 이름은 질투 유발자

미국 미시간대의 사회과학자 크로스와, 벨기에 루벵대 베르듀인 박사는 페이스북 사용자들의 감정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조사하기 위해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피실험자들 82명을 모았다. 이들은 2주 동안 오전 10시부터 자정까지 하루에 5번씩 자신의 페이스북 활동 경로와 자신의 감정 상태 등을 문자메시지로 보고했는데 그 결과 페이스북을 더 많이 할수록 기분이 더 불행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삶에 대한 만족도 또한 페이스북에 자주 들어가는 사람이 더 낮았다.
또 다른 독일의 사회과학자 연구팀은 584명의 20대 페이스북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이용 중 느끼는 감정을 조사했는데 가장 보편적으로 발생하는 감정이 질투라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은 사용자들이 가장 자랑하고 싶은 모습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리기 때문이다. 친구의 페이지를 통해 친구의 가장 행복한 모습과 과장된 감정 표현, 성취를 멋있게 표현한 글을 보며 자신과 끊임없이 비교하게 되고 단순한 질투심 이상의 눈초리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2013년 8월 17일 자 이코노미스트 기사 중에서

마음속 시기와 질투에 대처하는 법

1. 침입 경로 분석하기
시기나 질투가 어떻게 마음속으로 들어왔는지 분석해보자. 우선 무엇이 질투하게 만드는지 원인을 찾아보고 그 원인을 제공한 자신의 믿음이나 생각이 옳은 것인지 의심해보는 것이다. “왜 이런 질투(부러움)를 느끼나?” “내가 질투를 통해 얻으려는 게 무엇인가?” 계속 자문해본다. 질투는 당신이 원하는 것과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예를 들어 돈에 대해 부러움을 느낀다면, 당신은 돈이 주는 자유나 안전에 대한 결핍을 느끼고 있을 수도 있다. 무엇이 당신을 질투하게 만드는지 알면 그 부분에 대한 현실적인 대안을 찾을 수 있다.

 

2. 인정하고 무시하기
단지 질투를 느낀다고 해서 가책을 느낄 필요는 없다. 질투는 우리 마음속에 들어오기도 하고 나가기도 하는 여러 감정 중의 하나일 뿐이다. 당신은 이제까지 화를 내고, 행동에 옮기는 등 질투에 반응하며 싸워왔지만 별 소득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앞으로 질투를 느낀다면 그런 감정이 거기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라. “음, 이 멍청한 질투가 또 왔군. 그래 넌 그냥 거기 있든가 말든가.” 질투를 귀찮게 날아다니는 파리나 옆방에서 들려오는 소음 정도로 여기며 무시해라. 더 이상 확대하거나, 그렇지 않은 척할 필요도 없다.

 

3. 현명하게 비교하기
만일 당신이 ‘엄친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해보자. 하지만 다른 시각에서 보면 당신 역시 어떤 사람에게는 ‘엄친아’일 수도 있다. 결국 비교는 선택이다. 때문에 타인의 성공을 자신이 잘못 살고 있다는 증거로 삼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가장 현명한 비교는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하는 것이다. ‘5년 전에 비해 내 감정 조절 능력은 얼마나 나아졌나, 내 의사소통 기술은 얼마나 유연해졌나, 이 부분은 나아졌지만 이 부분은 아직 부족해’ 식이라면 훌륭하다. 부러움을 자기 발전의 동력으로 삼은 사람들을 주변에서 찾아보라.

참조 도서 <내 감정을 이기는 심리학>(황화숙 저 | 아름다운 사람들)


‘남의 불행이 내 행복’의 심리, 뇌과학이 증명하다

사람은 자신과 위치가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하고만 비교한다. 친구나 라이벌의 성공이 가장 쓰디쓴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뇌과학이 발전하면서 최근에 ‘타인의 불행이 나의 행복’임이 뇌 사진으로 입증되었다.
지난 2009년 2월 <사이언스>에 실린 내용으로, 일본의 한 연구팀이 실험 대상자에게 공부 잘하고 이성에게 인기가 있는 학생과 평범한 학생이 등장하는 대본을 읽게 한 뒤 뇌 반응을 측정했다. 그 결과, 참가자 모두 뇌 안의 고통 관장 부위가 활성화되었다. 참가자들은 공부 잘하고 인기 있는 학생에게 실제로 ‘질투를 느꼈다’고 대답했다. 같은 참가자들에게 이번에는 애인이 바람을 피우거나 차가 망가지는 불행한 일이 일어나는 대본을 읽게 한 뒤, 다시 뇌 사진을 관찰했다. 그 결과 질투를 느꼈던 등장인물에게 불행한 일이 일어날 때 ‘기쁨’을 나타내는 부위가 더 활성화되었다. 질투를 많이 느낀 사람일수록 더 많이 기뻐한 것으로 나타났다. 모든 사람의 뇌에 ‘놀부 심보’가 있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부러우면 이기는 것!

나랑 같은 해에 태어난 사촌 동생이 한 명 있다. 중3 겨울 방학, 설날에 큰집에 놀러간 나는 그 사촌이 외고에 진학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공부를 잘하는 줄 알고는 있었지만 소도시에서 중학교를 다니던 걔가 뜬금없이 외고라니! 그것도 내가 사는 서울로! 라이벌이라는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내가 졌다’는 생각에 짜증이 확 나면서 집으로 돌아와 이불을 뒤집어쓰고 며칠 동안 잠만 잤다. 스스로도 너무 쩨쩨하다 싶었지만 부러운 건 부러운 거였다.
그때부터 나는 고등학교 3년 동안 명절에 큰집에 가지도 않고, 스파르타식으로 열심히 공부했다. 처음에는 부럽고 속상한 마음이 자극이 되었지만 점점 성적이 오르면서 ‘하면 된다’ 자신감이 붙었다. 그렇게 3년의 시간이 지나고 나는 내가 원했던 K대학에 합격했다. 그리고 설날에 큰집에 갔을 때였다. 그 사촌은 재수를 하게 되었다며 울상을 지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유치하지만 그때는 ‘내가 이겼다’는 생각에 왠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나의 합격 소식이 자극이 됐는지 그 동생은 다시 1년을 열심히 공부해서 명문대에 진학했고 지금은 그 사촌도 나도 원하는 일을 하면서 즐겁게 살고 있다. 시기와 질투라는 것이 과하면 안 좋지만 적당한 질투심은 삶에 자극제가 되는 것 같다. 중3 겨울의 그 불타는 시기심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볼 기회는 없었을 테니까.

김현성 30세. 서울시 강서구 등촌동

나는 요즘 애들이 대개 그렇듯이 뭘 해야 될지 모른 채, 성적에 맞춰 대학에 갔다. 그래서인지 고등학교 때부터 뚜렷한 꿈을 위해 열정적으로 노력하는 친구들이 엄청 부러웠다. 그들에 비해서 나는 낙오자 같았다. 또 한 가지 부러웠던 것은 부모님과 친한 친구들이었다. 드라마에서 나올 법한, 스킨십도 많이 하고 친구처럼 지내는 가족이라니, 정말 신기했다. 일단 나는 부모님과 그렇게 친밀하지도 않고, 또 뭔가 새로운 걸 하겠다고 하면 ‘그게 잘되겠느냐’며 부정적인 말부터 하셨기 때문이다.
자신감이 점점 없어졌다. ‘나도 어릴 때 쟤네들처럼 마음껏 다양한 경험을 했으면, 훨씬 더 잘됐을 텐데’ 하면서 부모님 원망도 했다. 그래서 나중에는 해보지도 않고선 ‘어차피 안 돼’라며 쉽게 포기했던 것 같다.
그러다 대학 졸업 전 어머니의 권유로 마음수련 대학생 캠프에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됐다. 나는 내 행동보다 남들이 어떻게 되는가에만 관심을 갖고 시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잘했는데 부모님이, 환경이 안 좋다고 했고, 친구들이 잘되면 ‘집에 돈이 많으니까’ ‘부모님이 다정다감하시니까’ 하면서 부러워하기만 했다. 그런데 내가 살아온 장면 장면을 떠올려 보니 열심히 노력했다고 할 만한 게 없었다. 내가 이렇게 된 당연한 이유는 실제로 행동을 안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수련을 하며 내 행동을 가로막았던 부정적인 생각들을 모두 버렸다. 지금은 뭐든 해보면 된다는 생각부터 든다. 부모님에 대한 맹목적인 기대도 없어지니 관계도 좋아지고 자신감도 많이 생겼다. 모든 결과는 행동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 같다. 돌아보면 왜 내가 지금 이렇게 사는지, 또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다. 이제 친구의 좋은 일도 진심으로 축하해주게 되었다. 그 아이가 해온 보이지 않는 노력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옥다금 25세. 부산시 남구 용당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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