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사는 내가 참 좋아요” 동대문시장에서 만난 열혈 청년 박상준, 라재원씨

패션의 중심지 동대문시장. 의류를 비롯해 옷의 기초 자재인 원단부터 단추, 레이스 장식 등 부자재를 파는 이곳은 전국에서 모여든 손님들과 도소매 상인들로 늘 북적인다. 일명 총성 없는 전쟁터라 불리는 이 치열한 삶의 현장에는 ‘내가 진정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뛰어들었다는 청년들이 많았다. 그중 박상준(31)씨와 라재원(25)씨를 만나보았다.
취재 김혜진 사진 최창원

“4년간 경비 업체에서 일했어요. 청와대 경호원으로 일하는 삼촌이 멋있어 보여서 경호원이 되고 싶었던 건데 생각했던 것과 현실은 너무 다르더라고요. 영화에 나오는 보디가드처럼 누군가의 안전을 지켜주는 게 아니라, 대부분은 기계가 다 해주고 출동해서 가면 잔심부름이나 시키고. 회의를 많이 느꼈죠.”

박상준씨가 동대문 시장과 연이 닿은 건 4년 전. 이곳에서 일하는 친구를 만나러 온 게 계기가 됐다. 보기엔 1~2평 남짓한 자그마한 매장이지만 “열심히 하면 한 만큼 보람 있다”는 주위 분들의 조언은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다”던 그의 바람과도 통했다. 박상준씨의 후배 라재원씨도 자기 얘기를 덧붙였다.

“친구들 보면 좋은 대학 나와서 취업하는 게 다잖아요. 자기가 뭘 해야겠다는 게 없고, 그게 싫었어요. 부모님은 공부해라, 했지만 내 인생을 남들처럼 떠밀려서 살고 싶지 않았어요.”

라재원씨는 옷을 사러갔다가 가게 직원으로부터 옷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해 듣고 재미를 느껴 동대문시장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한다. 평소 월급의 반은 옷을 살 정도로 옷에 관심이 있고 좋아했던 자신을 떠올리며 순간 ‘이거다’란 생각이 들었다고. 당시 일식집 주방에서 일하면서 월급도 괜찮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게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인가에 대한 의문은 끊이지 않았다 한다.

두 사람의 인연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상준씨가 있는 점포로 라재원씨가 후배 점원으로 들어오면서 만나게 된 것. 라재원씨는 원단 보는 일, 영업 등을 세세하게 알려주었던 박상준씨를 가리켜 “든든한 지원군이자 의지가 되는 고마운 형”이라고 말한다. 이에 박상준씨의 라재원씨에 대한 칭찬이 이어진다.

“대개 여기 오는 젊은 애들 보면 10명 중 8명이 이틀 만에 그만두거든요. 그만큼 힘든 일이에요. 이 친구도 보니까 얼굴이 하얗고 비리비리하게 생겨서 며칠 못 버티고 갈 줄 알았는데, 의외로 항상 웃으면서 열심히 하는 걸 보니까 마음을 열게 되더라고요.”(웃음)

이곳에 처음 들어오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속칭 ‘밑바닥 일’은 바로 원단 정리다. 밤새 지방에서 올라온 10~13kg이 넘는 수많은 원단을 창고로 나르고 자르고 정리하는 것. 하루에 많이는 200절(개)까지 나르는 등 고된 작업이지만, 연세 많으신 어르신들도 묵묵히 하시는 걸 보면 마음을 다잡게 된다고 한다.

“시장 일은 다음 날이 없어요. 아무리 일이 많아도 그날 일은 그날 마무리해야 다음 일을 할 수 있거든요. 부지런하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는 곳이죠. 나이, 지위 관계없이 사장님도 직접 원단을 나르는 걸 보니까 정말 대단해 보이고 더 열심히 하게 되더라고요.”

하루 일과는 아침 8시부터, 하지만 퇴근 시간은 일정치 않다. 창고의 원단 정리, 점포 관리, 거래처 관리, 영업 등을 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하루가 간다. 일주일에 2~3번 동대문 밤시장(의류도매시장)으로 영업을 나가는 날엔 새벽 1시까지 일하는 게 다반사. 때론 힘들지만 발로 뛴 만큼 거래처 사장님들이 먼저 알아봐 주신다거나, 자신들이 다룬 원단이 옷으로 만들어지고 그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을 볼 때면 보람을 느낀다 한다.

“예전 같으면 조금만 힘들면 그만뒀을 거예요. 근데 이젠 그런 삶이 제일 두렵다는 걸 알죠. 인내가 주는 기쁨을 배우는 것 같아요. 요즘은 새벽 5, 6시만 되면 눈이 저절로 떠지는데 부모님이 부지런해졌다고 인정해 주실 때 기분 좋죠.”

두 청년은 “몸은 고되지만, 선택한 일에 대해 후회가 없다”고 했다. 오히려 막연히 남들처럼 살아야겠다며 직장 생활하느라 시간을 허비한 게 너무 아까웠다는 그들은, 이곳에서 결코 돈으로는 따질 수 없는 소중한 인생을 배우고 있다고 했다.

아무것도 없이 하나하나씩 일궈가면서 자수성가를 하신 어르신들을 뵈며 삶의 겸허함을 배우고, 자신들의 처지를 잘 이해해주시는 동료이자 선배들의 깊은 애정 속에서 사람 사는 정을 깨닫고, 과거에 무슨 일을 했던 상관없이 지금 이 순간 땀의 결실을 인정해주는 이곳이 그들에겐 가장 소중한 일터이자 삶의 현장이라 한다.

이들의 앞으로의 계획은 동대문시장에 내 가게를 차리는 것.

“어른이 되어가는 거 같아요. 예전엔 참 개념이 없이 살았거든요. 지금은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있는 제 모습이 참 좋아요.”(라재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니까 마음 자세가 달라져요. 하나라도 더 알아야 손님들한테 다가갈 수 있으니까 뭐든지 열심히 배우려고 하죠. 열심히 해서 앞으로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어요.”(박상준)

“이곳에서 열심히 일해서 망한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하며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는 박상준, 라재원씨. ‘뿌린 만큼 거둔다’는 진리를 매 순간 목격하며 살아간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행운아가 아닐까. 비좁은 공간, 매캐한 먼지 속에 하루를 보내면서 흘리는 땀방울들이 진짜 삶의 결실로 무한히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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