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웃음을 되찾다

    홍연희 23세. 대학생. 경남 진주시 상봉서동

중학교 때쯤이었던 것 같다. 아빠가 빚보증을 잘못 서게 되면서 집안 형편이 갑자기 어려워졌다. 평온했던 집안 분위기는 한순간에 바뀌었다. 다행히 거리로 나앉는 신세는 면했지만 좁은 집으로 이사를 했고 아빠는 몇 년간 멀리 떨어져 지내며 돈을 버셨다.

무뚝뚝한 경상도 스타일의 아빠를 예전부터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그 일이 있고부터는 더 미웠다. 우리 가족이 이렇게 힘들어지고 엄마와 아빠가 자주 싸우게 된 것도 모두 아빠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가끔 아빠가 집에 오셔도 마치 없는 사람처럼 대화가 없었다. 아버지 스스로도 모든 원인을 당신 탓으로 돌리셔서 그런지 얼굴은 늘 어두우셨고 비쩍 마른 모습이 안쓰러웠지만, 철이 없었던 나는 내 자존심을 신경 쓰기에 바빴다. 친구들을 집에 데려오거나 우리 집 이야기를 하는 것이 너무 창피하고 속이 상했다. 그래서 나는 아빠와 같이 있을 때면 말끝마다 틱틱거렸고, 밥을 먹다가도 엄마 아빠의 말다툼에 짜증을 내며 방문을 닫고 들어가 버렸다.

고등학교 때쯤 아빠가 친척 어른의 권유로 마음수련을 시작했다고 했다. 6개월 정도 수련을 하고 오신 아빠는 한눈에 봐도 얼굴이 굉장히 밝아져 있었다. 그리고 조용히 청소며 빨래, 설거지 등 집안일을 하시면서 가족을 세세하게 챙겨주셨다. 왠지 모르게 편안해 보이는 아빠, 마음의 큰 고비를 넘어갔음이 느껴졌다. 말은 없으셨지만 아빠의 편안한 마음이 가족 전체에 안정감을 가져다주었다.

그 후 우리 가족 모두는 수련을 시작했다. 힘들어하는 아빠를 옆에서 지켜봐야 했던 엄마 역시 내색은 안 하셨어도 많이 힘드셨을 것이고, 언니도 장녀로서 부담이 컸을 것이다. 하지만 수련을 하고부터는 서로 간에 마음의 벽이 허물어지는 것 같았다.

나 역시도 수련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성실히 버신 돈을 빚보증으로 한순간에 잃고 답답한 마음을 추스르기도 힘드셨을 텐데 가족에게 피해가 되지 않을까 그 짐을 혼자서 감당해내신 아빠의 마음이 어떠했을지를. 그리고 홀로 떨어져 가장 힘들게 지내셨을 때 오히려 짜증 부리고 철없이 행동했던 게 너무 죄송해서 눈물이 많이 흘렀다. 언제나 아빠의 말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서 모르는 척하며 가족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신 아빠를 부끄럽게 여겼던 내 자신이 참 부끄러웠다.

지금 아빠는 택시 운전을 하신다. 허리가 안 좋으신데도 아침 6시부터 다음 날 아침 6시까지 24시간, 우리를 위해 쉬지 않으신다. 식사하시러 집에 잠시 들러서도 힘든 내색 한번 없이 장난도 치시고, 설거지, 청소 등 집안일도 틈틈이 해주고 나가시는 걸 보면 내가 봐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도 그런 아빠를 보면서 “옛날 같았으면 회사 다니던 사람이 이렇게 힘든 택시 운전 일은 절대 못 했을 거다” 하시며 놀라워하신다.

내가 하는 모든 일에 언제나 “그래~”라는 대답으로 수용해주시는 아빠, 친구같이 자상하고 든든한 아빠가 너무 존경스럽고 감사하다.

“아빠, 우리 가족은 마음수련 만나서 참 복 받았어요, 그죠? 가족을 위해 고단한 일도 마다 않고 늘 웃으며 지켜봐주시는 아빠, 너무 고맙고 지금처럼 늘 행복하게 살아요. 사랑해~♡”

Leave A Comment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You may use these HTML tags and attributes: <a href="" title=""> <abbr title=""> <acronym title=""> <b> <blockquote cite=""> <cite> <code> <del datetime=""> <em> <i> <q cite=""> <s> <strike> <str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