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은행 용암지점장 이준원씨

신한은행 청주 용암지점 이준원(49) 지점장. 23년간의 은행원 생활이 늘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2008년 어느 날, 당시만 해도 승승장구하던 그에게 위기가 찾아옵니다. 새로운 업무에 대한 부담감과 스트레스… 인생의 고비의 순간, 그는 수련을 하면서 힘든 시기를 지혜롭게 넘길 수 있었다고 합니다. 직장생활의 행복, 동료들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준 마음수련. “이제 직원 모두가 행복한 직장으로 만들고 싶다”는 이준원 지점장의 마음 빼기 이야기입니다.

정리 & 사진 김혜진

나는 두 딸의 아버지이자 가장입니다. 27살에 은행에 입사해서 지금까지 한눈팔지 않고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덕분에 승진도 빨랐습니다. 사실 은행은 영업 실적과의 전쟁입니다. 은행 셔터는 오후 4시에 내려지지만 이때부터 업무는 다시 시작됩니다. 마케팅 업무에다 마감 업무까지…. 집에 와도 머릿속은 일 생각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인생의 고비가 찾아왔습니다. 실력을 인정받아 새로운 부서로 자리도 옮기면서였습니다. 그때의 제 모습은 마치 신입사원 같았습니다. 그동안 해왔던 일과 많이 달라 적응에 어려움이 있었으니까요. 팀장으로서 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컸습니다. 하지만 사람들과의 의견 충돌로 인해 해도 소용없고, 결과도 없는 생활이 6개월간 반복됐습니다. 갈수록 나는 작아졌습니다.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을 터벅터벅 혼자 외로이 걷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지칠 대로 지쳐버린 상황… 잠시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습니다. 쳇바퀴 같이 살아왔던 인생을 잠시 놓아보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직장에서 나와 무작정 버스를 탔습니다. 창밖으로 풍경은 무심히 흐르지만,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동안의 삶이 주마등처럼 스쳐갑니다. 출세하려고 아등바등했던 모습…. 답답한 마음이 풀리지 않아 그날 밤 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미친 듯이 달렸습니다. 그러다 잠시 갓길에 차를 세우고 서러움에 북받쳐 울었습니다. 그렇게 운 건 처음이었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힘들었는지… 그리고 가족에게 미안했습니다.

아내의 소개로 마음수련을 하게 됐습니다. 40대의 한 남성이 보입니다. 나름 열심히 해서 좋은 부서에 배치 받고 인정받았다는 자부심은 하늘을 찔렀습니다. 하지만 낯선 업무는 새로운 시험대였습니다. 그때의 상황들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결국 자존심이 문제였습니다. 인정받지 못했다는 좌절감은 자꾸 도망치게 만들었습니다. 쥐꼬리만한 자존심을 지키려고 모든 걸 남 탓 했던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각자의 생각이 다를 수 있는데도 내 마음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내 생각만 맞다고 했으니, 사람들과 부딪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남이 아닌 내가, 나를 괴롭혀왔다는 사실에… 또 한 번 고개를 떨굽니다.

그때부터 그동안 살아오면서 내 마음에 찍어왔던 사진들 자존심, 잣대, 틀, 기준들을 열심히 버려나갔습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조금만 더 지혜로웠다면 자신에게 솔직해지지 않았을까. 내가 부족했다는 걸 인정했다면…. ‘남자는 자존심 없으면 시체’라는 말이 얼마나 부질없는 말인지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이 모두가 좁아빠진 내 마음에서 빠져나오면서 알게 된 것들이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지만, 결과적으로는 나를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기에 한편으론 더없이 고마웠습니다.

회사에서 승진하고 일이 잘 풀리면 그게 행복이라 여겼습니다. 하지만 목표를 이루고 나면 기쁨도 잠시 또 다른 목표가 저만치에 있습니다. 나는 또 달립니다. 하지만 목표에 닿는 순간, 기쁨은 신기루처럼 사라졌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내 몸은 물 한 모금도 소화하지 못할 정도로 피폐해져 갔습니다.

직장 동료도 경쟁자일 뿐이었습니다. 집에서도 가장이란 권위와 체면 때문에 힘든 마음조차 털어놓지 못했습니다. 내가 편히 있을 곳은 세상 그 어디에도 없는 거 같았습니다. 마음수련은 이런 내게 유일한 탈출구였습니다. 수련을 하면서 알게 된 본래의 나는, 그 모든 걸 알고 있었습니다. 왜 그리 힘들 수 밖에 없었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마치 목을 조여 왔던 넥타이가 느슨하게 풀리듯 나는 비로소 크게 숨 쉴 수 있었습니다.

직장인들의 삶이라는 게 어찌보면 살고 죽고의 문제입니다. 살아남기 위해 아등바등하니까요. 하지만 거기엔 왜 태어났고 왜 살고 어디로 가느냐가 없습니다. 문득 허무한 마음이 들어도 바쁜 일상에 그냥 지나치고 맙니다. 언제 직장에서 그만두게 될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도 힘들게 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본래 마음을 되찾은 순간, 나는 나를 끊임없이 괴롭히던 무수한 생각들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지나간 과거,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들로 시간을 보내기보다 지금 이 순간을 사는 지혜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저는 가장 좋아하는 일터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14명의 든든한 직원들과 함께하는 지점장으로서 말입니다. 수많은 거래처 고객들을 만나 예금관리, 대출, 상품 판매 등 영업을 추진하면서 한 지점을 운영하는 일이 제 업무입니다.

주변 사람들이 하나하나 눈에 들어옵니다. 주말엔 아내와 산책도 하고,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 소소한 기쁨을 알아갑니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는 것도 감사했습니다. 고객분들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처음 뵙는 분인데도 마치 오랜 친구와 만나는 것처럼 편안합니다. 놀라운 건 일을 할 때 문제를 어떻게 풀까 이리 재고 저리 재는 게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실타래처럼 꼬였던 문제들은 생각보다 쉽게 풀렸습니다. 개인의 자존심보다 문제 해결에 집중해서 생긴 결과입니다. 그것은 그동안의 나는 버리고 새로운 나로 변화했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직원들에게도 마음수련을 권했습니다. 스트레스 없는 삶이 누구나 가능하다는 것, 그 행복을 직원들과 나누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함께 해주는 직원들이 고맙기만 합니다. 나를 넘어 동료들의 나은 삶을 꿈꾼다는 건 예전의 나는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조금씩 알아갑니다. 행복은 남을 위할 때 저절로 온다는 것을 말입니다.

지난해 말, 우리 지점에 기쁜 소식이 있었습니다. 고객 만족상을 수상한 것입니다. 한 번의 실수도 있어서는 안 되는 1년 내내 좋은 평가를 받아야 가능한 상이지요. 모두 묵묵히 애써준 직원들 덕분입니다.

퇴근하는 발걸음이 가볍습니다. 문득 밤하늘을 바라봅니다. 초생달이 유난히 밝습니다. 오늘 하루에 대해 아쉬움도 미련도 부족함도 없는 내 마음을 봅니다. 남음이 없는 하루하루. 그 옛날, 직장인으로서 이런 날이 오리라 생각이나 했을까요. 나는 지금 행복한 직장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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