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수련 후 스트레스 없이 살 수 있다는 걸 알게됐어요”

아파트 건설 노동자로 시작해 작은 건설업체를 운영하게 된 안성용(49)씨.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한 사업이지만, 꼬박꼬박 돌아오는 월급날, 영업 부진, 부도 위기까지 매 순간이 힘겨운 나날의 연속이었다.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술도 마시고 도박도 해봤지만 벗어나지지 않았다. ‘나는 내 마음조차 다스리지 못하는 못난 놈이구나’ 자괴감에 빠질 무렵, 그는 마음수련을 알게 되었다 한다. 지금도 일을 마치면 수련원부터 찾는다는 그는, “세상살이의 가장 큰 힘, 자신감을 얻었다”며 호탕하게 웃는다.
글 & 사진 김혜진

“스트레스 없이 산다는 것 자체가 상상도 못 했던 일이죠. 자다가도 깜짝 놀랄 일이에요. 어떤 때는 스스로에게 물어봐요, 이게 말이 돼? 하고. 근데 진짜 웃을 일밖에 없어요.”

안성용씨는 현재 ‘바로건설’이란 작은 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사업하면서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던 터라 지금의 상황이 믿기지 않는다는 말부터 꺼냈다.

그에겐 꿈이 있었다. 내 집 마련의 꿈. 학교 공과금도 못 낼 정도로 힘겨웠던 어린 시절, 그는 지독한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결혼을 하며 가장이 되고, 두 딸의 아버지가 되면서 그 바람은 더 커졌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공사 현장을 돌며 열심히 일했지만, 월세방을 전전해야 했고 돈벌이도 시원치 않았다. 신문 배달, 우유 배달 등 맞벌이하며 고생하는 아내를 볼 때면 죄책감마저 들곤 했다. 월급쟁이로서는 비전이 없다고 생각한 그는 단돈 5백만 원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그때가 2000년이었다.

하지만 사업은 그야말로 살얼음판을 걷는 일이었다. 가장에 이어 대표로서의 중압감은 그를 더욱 짓눌렀다. 거래처 결제일, 월급날이면 극도로 예민해졌고, 고독감과 외로움에 밤마다 술을 마셨다. 게다가 공사 현장에서 배운 도박 습관마저 고개를 들었다. 밤늦게까지 먹은 술로 인해 매일 아침 퉁퉁 부은 얼굴로 하루를 시작하는 고된 일상이 반복됐다. 자신을 바꾸려 애를 썼지만, 잘못 들인 습관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제발 나를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인터넷을 검색했고, 가까운 지역 마음수련원에 찾아가기에 이른다.

“처음 수련원 갔을 때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해요. 사람들 표정이 너무 좋은 거예요. 오죽하면 저도 공부하면 저렇게 되나요? 물어봤겠어요. 정말 그렇게 살고 싶었거든요.”

수련을 하며 지나온 삶들을 하나하나 돌아보았다. 어려웠던 가정 환경은 마음의 한이 되었고, 그것은 가장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힘들 때 결혼해준 고마운 아내… 고생 안 시키고, 잘해주고 싶은’ 마음은 일확천금에 대한 로망으로 이어졌다. 수련 과정에서 그는 물질적인 가난보다 정신적인 마음의 가난이 얼마나 무서운지 깨달을 수 있었다 한다.

“그동안 열심히 일해서 집도 생기고 전보다 살 만한데도, 나는 여전히 가난하다는 맘이 너무 큰 거예요. 이미 지나고 없는 과거에 끌려 살았구나, 여태껏 조종당하고 살았다 생각하니 너무나 억울하더라고요. 내가 마음먹은 게 가짜였고, 왜 힘들었는지 알게 되니까, 마음에 남아 있는 걸 정리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자신과의 싸움은 계속됐다. 문득 그토록 원망했던 돌아가신 아버지가 떠올랐다. 무능력했던 아버지… 술로 스트레스를 풀었던 아버지의 모습은 다름 아닌 자신이었다. 그런 아버지의 마음조차 헤아리지 못했던 게 원망스러웠다. 모든 것이 나 중심적으로 살아온 결과였다.

“남보다 높아 보이려 아등바등하고, 자존심 꺾이는 게 죽어도 싫었던 제가 수련하고 내가 잘못 먹은 마음 탓이란 게 인정되니까, 그때부터는 ‘내 탓이요’를 입에 달고 살았어요.”

변화는 서서히 찾아왔다. 술 먹는 횟수도 점차 줄어들었고, 도박에서도 점차 멀어졌다. 그리고 평소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사무실 곳곳에 붙여 놓았던 성경 불경의 구절들이, 어느 순간 마음으로 이해되는 경험들을 하면서 마음수련에 대한 확신은 더해졌다.

그런 와중에 그는 큰 시련과 마주하게 된다. 2억 원이 넘는 부도를 맞은 것이다. 그 위기의 순간에 그는 예전과는 너무나 달라진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아마 수련을 안 했다면 지금 이 자리에 있었을까 싶어요. 그 잘난 자존심에 스스로 무너졌을 거예요. 갚을 길도 없었으니까. 근데 다 제 잘못입니다, 거래처 분들을 일일이 찾아가서 머리 숙이며 부탁을 드렸어요. 진심으로 도와달라고. 그랬더니 군데군데서 탕감을 해주시더군요. 진짜 기적이었어요. 그때 알았어요. 내가 낮아지는 게 진정한 용기란 것을, 내가 낮아진 만큼 세상이 밝아진다는 걸요.”

다행히 그는 재기에 성공했다. 주변의 도움 덕분이었다. 사업은 탄탄대로에 들어섰다. 하지만 그가 진짜 기쁘고 감사한 건 직원이 2명에서 8명으로 늘어나고, 매출이 5배로 증가해서만은 아니다. 하루하루가 불안한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려주는 가장 든든한 백이 생겼기 때문이다.

“예전엔 돈과 일에 늘 끌려다녔거든요. 영업하려고 술을 먹고, 상대한테 애걸복걸하고…. 공사를 맡아도 과연 수익이 남을까, 돈을 떼이지 않을까 걱정했어요. 다달이 나가는 월급도 부담스러웠고요. 근데 욕심을 버리니까 마음에 중심이 서고, 무리한 선택은 하지 않게 되더라고요. 마음을 비운 만큼 상대의 입장이 보이고, 세상의 흐름에 맞춰갈 수 있게 된 거죠. 전체를 보는 혜안이 생기고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되었다고 할까. 어느 순간 상대를 위해 열심히 일만 하면 언제든지 나를 불러주겠구나 자신감도 생기니까, 모든 게 자연스러워지더군요. 세상에 우뚝 설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는 게 가장 감사해요.”

그의 내면의 변화는 가정의 평화로도 이어졌다. 술에 찌들어 살았던 남편이 너무나 바뀌었다며 아내는 동네방네 소문낼 정도로 기뻐했고, 아빠가 무서워 거리감을 두었던 딸들도 이젠 스스럼없이 다가와 장난을 치곤 한단다.

지금도 퇴근을 하면 매일 지역수련원부터 찾는다는 그는 또래의 중년 남성들을 보면 안타까울 때가 많다고 한다. 평생을 가장으로서 아버지로서 중압감에 시달리며 살아가지만 힘든 마음을 풀 곳은 없기 때문이다.

“솔직히 지금 우리 나이 때 가장들은 맘 편히 갈 데가 없거든요. 그러니까 계속 바깥에서 돌고…. 그런 것에 비하면 저는 가고 싶은 데가 있고 행복을 느끼는 곳이 있어서 너무 좋지요. 친구들한테 그래요. 힘들면 술밖에 더 먹겠느냐고, 이제 그럴 시간에 마음도 비워보며 살자고…. 사실 저 같은 놈이 이렇게 된 것만 봐도 놀라운 일이잖아요.”

과거의 산 삶을 돌아보며 정리했을 뿐인데, 어느 순간 새로운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말하는 그는 그토록 바라던 ‘마음 편히 웃는 날’이 온 게 꿈만 같다고 말한다.

“행복은 마음을 비웠을 때 찾아진다. 이 말 무슨 책에만 나오는 문구 아닙니다. 진짜 해보면 알아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처음 맛보는 행복이죠. 이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이 어떤 타이틀이 아닌 자기 본연의 모습으로 즐겁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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