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과 선생놈

오래전, 나는 우리 반 한나를 데리고 ‘군내 가훈 자랑 대회’에 출전하였다. 애석하게 입상권에는 들지 못했다. 대회가 끝나고 우리는 근처 식당으로 갔다. 식당에는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한 학생들과 인솔 교사들이 여기저기 자리를 잡고 있었다. 주문한 음식은 늦어지고, 이래저래 심기가 불편해진 목소리 하나가 풀 죽은 정적을 깨뜨렸다.

“무슨 심사를 그따구로 하고 말이야!”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목을 빼고 쳐다보았다. 저 안쪽에 중학생을 데리고 출전한 인솔교사가 보였다. 그는 초면이지만 그 앞에 앉은 중학생은 알 만했다. 그 학생은 ‘내 어머니 두 눈에서 옥구슬 같은 눈물이 똑똑똑 떨어지고~’라는 식의 연설을 하였다. 중학생에겐전혀 어울리지 않는 신파극 분위기여서, 누가 들어도 인솔 교사가 써준 원고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진짜로 억울한 사람은 나였다. 한나는 내가 발굴하고 지도했다. 만약 청중이 아이의 발표를 귀담아 들어주기만 한다면, 입상은 따 놓은 당상이라 걸, 나는 확신했다. 한나는 어릴 때 서울에서 살았기에 세련된 표준말을 구사할 수 있는 비장의 무기도 있었다.

읍내 극장은 수많은 관중으로 꽉 찼다. 인솔 교사인 나는 청중석 맨 뒷줄에 서서 대회를 지켜보았다. 관에서 주관하는 계몽 행사가 그렇듯, 동원된 학생들은 연사에게 집중하지 않았다. 학생들은 때로는 읍소로 때로는 웅변으로 계몽하려 했지만 청중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마침내 한나 차례가 되었다. 관중들은 어린 연사에게 잠시 관심을 보이는가 싶더니 이내 어수선해졌다.

열한 살 아이는 부끄러운 듯 단상에 섰다. 그리고 연습한 대로 심호흡 한 번을 하고 천천히 발표를 시작했다. 한나가 살고 있는 외딴집과 꼬부랑 외할머니와 착한 오빠 이야기가 동화처럼 흘러나왔다. 이전의 연사들과는 사뭇 다른 말투와 생경한 소재. 그것은 잔잔한 호수에 던진 돌처럼 천천히 파문을 일으켰다. 한나는 힘들지만 외롭지 않은 이유와 가난하지만 행복한 까닭을 이야기했다. 보이지 않는 감동의 물결이 서서히 대회장을 적셨다. 어느새 모든 시선이 작은 연사를 향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그런데 그 순간 한나의 목소리가 갑자기 뚝 끊어졌다.

“어머, 어떻게! 원고를 잊었나 봐.”

관중석에서 안타까운 여학생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신에게 집중된 수많은 시선이 부담스러웠을까. 잠시 머뭇거리던 연사는 꾸벅 인사를 하더니 그냥 단상을 내려왔다. 아뿔싸! 당황한 아이는 단상 계단을 내려오다가 발을 헛디뎌 넘어졌다. 다행히 아이는 오뚝이처럼 일어나 무릎을 털고 제자리로 들어갔다. 맨 뒷줄의 나는 너무 놀라 입을 딱 벌린 채 ‘어어’ 하고만 있었다. 그리고 상황은 짧은 순간에 끝나 버렸다.

“진짜로 아깝다, 그쟈?”

갈비탕이 나오자, 나는 비로소 심중에 있던 말을 하였다. 잘하는 법만 지도했지 실수했을 때 추스르는 법을 가르치지 않은 내 불찰이다. 한나도 그저 웃었다. 아무튼 갈비탕이 나왔고 나는 아이와 머리를 맞대고 늦은 점심을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불만 만땅 중학교 선생의 한마디에 내 목구멍이 ‘켁’ 하고 막혀 버렸다.

“아까 그 초등학생이 넘어질 때, 담임 선생놈은 코빼기도 안 보이데? 그게 선생이야, 그게? 교육이 다 틀려먹었어!”

그는 그 선생놈이 나인 줄 모르고 애먼 화풀이를 해대고 있었다. ‘이런 젠장! 신파극 변사 같은 선생 같으니라구!’ 달려가 상투잡이를 하고 싶은 마음이 꿀떡 같았지만, 어린 학생 앞에서 차마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못 들은 척 갈비탕에 코를 박았다.

최형식 & 일러스트 유기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