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 SNOWPIERCER

드디어 설국열차에 탑승했다. 프랑스 만화 <설국열차>를 홍대 서점에서 선 자리에서 다 보고 판권을 사서 오래전부터 준비했다던 봉준호 감독의 신작 영화. 430억 원이라는 엄청난 제작비의 글로벌 프로젝트이자 크리스 에반스, 존 허트, 틸다 스윈튼 등 해외 유명 배우들의 출연만으로도 화제를 불러왔다.

지구온난화로 인간은 CW-7을 살포, 그로 인해 신빙하기가 와서 모든 생물이 멸종하고, 지구를 순환하며 달리는 설국열차만이 인류가 살아갈 유일한 공간이란 설정에서 시작하는 이야기. ‘기차’는 바로 인류가 살아가야 하는 이 세상이고, 폐쇄된 공간이기 때문에 기차에 탑승한 모든 사람은 그 안에서 인위적인 생태계의 법칙이 적용될 수밖에 없는 운명에 놓인다. 비극은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피의 전쟁과 같은 아비규환을 겪고 생존 본능 하나만으로 살아남은 인간들이 이제 문밖으로 나갈 수도 없는 ‘기차’라는 공간 안에서만 살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 안에서 벌어질 일은 눈으로 보지 않고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기차를 만든 윌포드는 기차 안에서의 인류 문명을 유지시키기 위해서 히틀러와 같은 독재자가 되어 지배한다. 인간을 개체화시켜 기차 안의 인구, 식량 배급 등 모든 것을 통제하면서 말이다.

영화는 기차의 계급 질서 맨 아래에 속한 꼬리 칸 사람들의 혁명으로 출발한다. 인류 역사에서도 늘 있어왔던 피지배계급이 지배계급을 향한 저항 운동이 벌어지고 꼬리 칸의 리더 커티스(크리스 에반스 분)는 지배자가 있는 맨 앞 칸으로 한 칸씩 전진해가면서 기차 안의 평등과 자유를 찾고자 한다. 여기서 보안 설계자 남궁민수(송강호 분)는 기차의 문을 열 수 있는 유일한 존재로 등장하고, 그의 딸 요나(고아성 분)는 닫힌 문 너머를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아이로 나온다. 이들이 앞 칸으로 한 칸씩 전진해가면서, 칸칸의 자리에서 일하는 각각의 계급에 속한 사람들이 보인다. 그리고 최후의 앞 칸에 도달했을 때 비로소 영화의 주제와 메시지 그리고 반전이 드러난다.

남궁민수가 열고 싶었던 문은 앞 칸이 아니라 밖으로 나가는 문이었던 것. 너무나 오래 닫혀 있어서 문이라고도 인식하지 못했던 밖으로 나가는 문을.

이 영화에서 문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계급을 나누는 벽이고, 열차 밖과 열차 안이라는 소멸과 생존을 나누는 벽이며, 현실의 고통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으로 넘어갈 수 있는 ‘희망’의 유일한 통로를 상징하는 것이다.

커티스는 앞으로만 나아가려 하지만, 남궁민수는 우리의 아이들을 진짜 우리가 살아야 할 세상으로 내보내고자 한다. 그렇게 억압받는 시스템 안에서도 본능적으로 자유와 평등을 찾고자 노력하는 것이 역사의 진리이자 인간이 추구할 궁극의 목표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감독은 한발 더 나아가서 묻는다. 과연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온 세상이 설원으로 뒤덮인 멸망한 지구에서 그래도 인간은 인간답게 살아가려는 ‘인간 의지’를 가졌다. 궁극적으로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라서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개척하는 것이 인간이다. 그리고 과연 그 선택은 옳은가?라는 질문까지.

그래서 사실 관객에게 불친절하고, 불편한 영화이기도 하다. 설국열차가 그리는 디스토피아의 세상은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결코 보고 싶지 않은 영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봉준호 감독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에 대한 통찰은 돋보였다. 그는 ‘아이’를 통해 희망을 이야기한다. 열차에서 태어나 자라온 요나, 열차 안에서 태어난 많은 아이들을 통해 디스토피아의 세상에서도 인간은 꿈꿀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한다. 그래서 난 이 영화 <설국열차>가 좋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저 ‘문’ 너머의 희망, 더 나은 삶을 꿈꾸니까.

이상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