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빼면 ‘예술감’도 다 사라지는 걸까?

객원기자 이기자입니다. 저는 훈훈한 인상의 한 중년 사진가를 만나보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완벽주의 때문에 주변 사람을 힘들게 했고, 잘나가고 싶고 각광받고 싶어서 몸살을 앓던 사진가였다며 자신의 과거를 ‘셀프 디스’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작가님하고 일하는 게 편해요”라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며 ‘깨알자랑’도 빠뜨리지 않더군요. 그의 말대로라면 실로 엄청난 변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과연 그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리얼하게 들어봤습니다.

원래 사진가가 되는 게 꿈이었나?

사진을 전공하고 작은 잡지사에서 사진 기자 노릇을 했어요. 그러면서 일간지로 가고 싶어서 노력 많이 했죠. 그쪽 사람들 만나서 짜웅도 하고 설레발도 많이 치고. 근데 기회가 안 왔어요. 아니, 그들이 기회를 안 줬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때려치우고 웨딩 스튜디오를 열었어요. 예식장과 거래하면서 찍고 또 찍었죠. 금액은 쌌지만 그래도 많이 해서 돈을 벌었어요. 그러다 보니 나도 비싼 거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코엑스 웨딩 박람회에 참가했고, 그 이후 원하는 대로 비싼 손님들이 들게 되었죠. 그 과정에서 스튜디오 직원들을 엄청 힘들게 했어요.

직원들을 어떤 식으로 힘들게 했다는 건가?

제가 완벽주의자였거든요. 제 기준에 안 맞으면 엄청 갈구고 닦달한 거죠. 그렇지만 비싼 손님들 많이 해서 돈을 버니까 당연하다 생각했어요. 그런데 웨딩 손님들이 자꾸 묻는 거예요. 사진작가 누구 아시냐고. 누구누구 아시냐고. 자꾸 그러니까 ‘아, 나는 그냥 사진 찍는 기사 아저씨구나.’ 이런 자괴감이 드는 거예요. 점점 사진 찍기 싫었어요. 사람들도 만나기 싫고. 지금 생각해보면 웨딩이나 찍고 있는 나를 스스로 비하하고 있었던 거예요. 힘들었어요. 사는 맛도 안 나고. 그러다 우연히 마음수련을 시작했어요. 수련을 하니, 점점 내 모습이 보이더라구요. 잘난 척하고 과시하고 싶고, 그런 마음 뒤편에는 열등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거.

어느 날 딸을 데리고 워싱톤과 뉴욕으로 여행을 떠났어요. 그러면서 사진을 찍었는데, 문득 외국 사진을 찍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돌아와서 그때 찍은 사진으로 전시회를 열고 잡지사마다 전화했죠. 나 이런 사람인데 사진 찍게 해달라고. 그 후 모 항공사 기내지에 내 사진이 팔리고 그때부터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마음수련하고 뭐가 달라진 것 같나?

전에는 말이 엄청 많았죠. 나 드러내기 바쁘고 나는 이렇다 저렇다, 척하느라고. 예전에는 누가 나한테 싫은 소리하고 간섭하면 백번 천번 삐쳤어요. 수련을 하면서는 말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애요. 상대가 뭐라고 말하건 ‘아~ 그렇구나~’ 하고 들어요. 해외 나가고 일을 하면서도 사람들 대하는 게 달라졌어요. 마이클이 잘못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잘못했구나, 그걸 금방 인지할 수 있게 된 거지. 그러니까 사람들하고 관계가 좋아지고, 편안한 사람이 되어 가는 것 같애요. 수련하고 객관적으로 늘 내 모습을 볼 수 있게 된 덕분이죠. 전에는 일거리 달라고 엄청 쫓아다녔는데 요새는 촬영 의뢰가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아요. 없으면 없는 대로 내 시간 가지면서 연구도 하고, 마음수련도 더 집중해서 할 수 있으니까 좋잖아요.

마음을 빼면 예술감도 사라지는 거 아니냐고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솔직히 사진은 틀이 많아요. 이럴 땐 역광이니까 안 되고 중앙을 분할하는 구도니까 안 되고. 그런데 지금은 이런 게 없어요. 이렇다 저렇다 하는 내가 없으니까 그냥 찍고 싶은 대로 찍어요. 어떻게 찍어도 다 예술인 거예요. 상대가 원하는 건 또 그렇게 찍어줘요. 그런데 내 사진은 내가 찍고 싶은 대로 찍어요. 내가 찍을 때 행복하고 보는 사람이 편안한 사진들이 나와요. 나만의 세계에 빠져서 나 혼자 이게 멋진 거라고 외치는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오래오래 좋아해주는 게 진짜 예술 아닐까요. 다른 사람의 작품을 바라보는 마음도 달라졌습니다. 누가 사진을 찍었는데 되게 어둡고 칙칙해요. 그러면 예전에는 엄청 시시비비를 했는데, 지금은 ‘어, 이 사람은 그렇게 보는구나~’ 하지 그런 마음이 없어요.

뭔가를 뺀다고 하면 내 거 다 빼가는 거 아냐? 하는 불안감이 있습니다. 하지만 수련하고 제가 확실히 깨달은 건, 내 틀과 관념들을 빼낸 만큼 더 큰 마음과 지혜로 채워진다는 겁니다. 세상과 하나 되기 위해 사진도 찍어야지, 이 세상과 등지고 있으면서 나 혼자 아무리 유명해지고 잘나지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멋지다, 예술가로서도 한 인간으로서도 더욱 멋진 사람이 된 거 같다.

3과정 수련하며 느낀 건데, 지금까지 일어난 모든 일들이 나 하나 이렇게 만들려고 그랬구나, 싶어요. 일간지 안 간 것도, 웨딩 사진 찍게 된 것도, 뉴욕 갔던 것도. 수련하고 나의 본래가 우주라는 걸 알게 되니까 모든 게 우주 관점이 돼요. 우주는 자기 드러내려고 하고, 눈치 보고, 잘난 척하고 그러지 않잖아요. 그래서인지 요즘은 “작가님하고 일하는 게 편해요”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전에는 어떤 자리에 가도 남음이 있었어요. 잘못해도 그 마음이 남고 잘해도 남고, 그래서 항상 찜찜했는데, 그런 게 없어서 좋아요. 지금은 그냥 다들 고맙고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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