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슬링 김현우 선수

 

“나보다 더 땀 흘린 선수가 있다면 금메달을 가져가도 좋다.”
2012 런던올림픽, 한쪽 눈이 잘 안 보일 정도의 부상, 퍼렇게 멍든 눈으로 금메달을 따내며 많은 이들을 뭉클하게 했던 김현우(26) 선수. 그의 승리는 스스로도 인정할 만큼 그 누구보다 많은 땀을 흘리며 해낸 혹독한 훈련을 통한 것이었다. 그 후 1년, 66kg급에서 74kg급으로 한 체급을 올려 2013세계선수권대회에 도전한 김현우 선수는 다시 한 번 승리를 거두며, 한국 레슬링에 14년 만의 세계선수권 금메달을 안겼다. 땀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스물여섯 청년, 그에게선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쳐흐른다.

최창원 & 사진 김혜진

레슬링은 대한민국 건국 이래 올림픽 사상 첫 금메달을 안겨준 종목이다.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 당시 전해진 양정모 선수의 첫 금메달 소식은, 개인의 영광을 넘어 경제적 낙후에서 조금씩 벗어나고자 했던 우리나라 국민에게 하면 된다는 희망과 긍지를 심어주었다. 그 후 8회 연속 매 올림픽마다 한 개 이상의 금메달을 따내며 매번 기쁜 소식을 안겨주었고 전 세계에 한국이 레슬링 강국임을 확고히 했다. 하지만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의 금메달 이후, 침체기를 겪었던 레슬링계. 2012년 런던올림픽 김현우의 금메달은 레슬링계에 새로운 도약의 계기가 되어주었다.

“나보다 땀을 많이 흘린 선수가 있다면 금메달을 가져가도 좋다” 메달을 따기도 전에 했던 그 말이 너무나 인상적이고 감동적이었습니다.

감독님이 늘 “하늘을 감동시켜라. 그래야 금메달을 준다” “니가 그만큼 하면 금메달 딴다. 다른 선수가 더 많이 땀을 흘리면 그 선수가 딴다” 그러셨어요. 처음에는 무슨 이야기지? 어떻게 하늘을 감동시키지? 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하늘이 보고 있는 거 같은 겁니다. 전에는 코치님 눈치도 보고 그랬는데, 그 이후로는 누가 있으나 없으나 열심히 하게 되더라고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하늘은 알고 있잖아요. 그렇게 훈련을 하다 보니까 몸이 안 아픈 날이 없었어요. 안 아프면 ‘내가 열심히 안 했나?’ 반성하게 되고…. 그래서 오히려 몸이 아파야 좋았어요.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다는 증거니까. 그만큼 제가 훈련을 했고 자신이 있으니까 그런 말도 나오더라고요. 정말 저보다 땀을 더 많이 흘린 선수가 있다면 그 선수가 가져가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요.

레슬링 선수들의 훈련은 특히 힘들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정말 매번 겁날 정도예요.(웃음) 하루 4번을 운동을 해요. 새벽 운동, 오전 운동, 오후 운동, 야간 운동. 운동하고 밥 먹고 쉬고 운동하고 밥 먹고 쉬고. 기계처럼 똑같은 날들을 보냈어요. 올림픽 때는 그렇게 4년을 준비하는 거예요. 한 번 운동할 때마다 하늘이 노래지고 근육이 터질 거 같을 때까지 해요. 힘들어도 참으면서 하다 보면 그 과정에서 몸의 한계도 넘지만 정신적으로도 ‘나는 할 수 없다’ ‘안 된다’의 한계들을 계속 뛰어넘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간절하게 원했던 금메달, 막상 딴 후에는 마음이 어땠나요?

너무너무 좋았죠. 아팠던 데도 하나도 아프지도 않고. 근데 시간이 조금씩 지나면서 뭔가 허무한 마음도 올라오더라고요. 삶의 목표가 금메달이었고, 특히 올림픽은 최고의 목표였는데, 더 이상 올라설 데가 없고 ‘이제는 뭘 해야 하지?’ 이런 생각도 들고요. 올림픽 후에 손가락 부상 때문에 재활 훈련을 받느라고 4개월 가까이 쉬었다가 훈련에 들어가면서 다시 열심히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도 들었습니다. 근데 올림픽 때 훈련했던 게 몸에 배어 있었는지 하면 또 열심히 하게 되더라고요. 몸이 자동적으로 뭘 시키면 열심히 하게끔 만들어져 버린 겁니다. 예전 같았으면 운동하면서 다른 생각을 막 하기도 했을 텐데, 다른 생각도 안 나고요. 올림픽을 준비하는 순간부터 그 이후로는 운동할 때는 운동 생각만 나더라고요. 프로의식 같은 게 진짜 생긴 거 같아요. 올림픽 이후에는 다시 새롭게 마음을 다지고 싶어서, 체급을 올려서 도전을 했어요. 다행히 좋은 성적을 거두어서 자신감은 생겼지만 아직 부족한 점이 많아서 더 열심히 저를 만들어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2012 런던올림픽. 그레코로만형 66kg급에서 금메달이 확정되자 감독과 코치를 향해 큰절을 올린 김현우 선수는 곧이어 건네받은 태극기를 앞에 두고 다시 한 번 큰절을 했다. 사진_연합뉴스

“올림픽은 나의 희망이다. 전 우주가 내 품에 들어오는 그런 기분….”
– 양정모(1976년 몬트리올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사람의 적응력이란 게 무서웠다. 죽어도 안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죽기 살기로 독하게 하니까 되었다.” – 심권호(1996년 애틀랜타, 2000년 시드니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심장을 토해낼 정도로 훈련했다.” – 김현우(2012년 런던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한국 레슬링계의 영광을 넘어, 평범한 개인이 노력을 통해 얼마나 큰 성취를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며 희망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자랑스러운 얼굴들.

그런데 지난 2013년 2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집행위원회가 레슬링을 2020년에 개최될 올림픽 ‘핵심 종목’ 25개에서 제외하기로 했다는 것.

모두가 침통한 분위기, 하지만 김현우 선수와 동료들은 그 순간에도 얼마 후 있을 아시아선수권대회와 세계선수권대회를 묵묵히 준비했고, 그것은 금메달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리고 다행히 지난 9월,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총회에서 가까스로 기사회생하였다는 소식이 다시 전해졌다.

레슬링이 올림픽 종목에서 제외되느냐 마느냐의 당시 마음잡기가 쉽지 않았겠습니다.

처음엔 너무 당황스럽더라고요. 하지만 절대 빠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레슬링이라는 종목이 고대 올림픽부터 이어져온 상징적인 종목인데 어떻게 빠질 수가 있나, 그런 생각을 했죠. 분위기에 다운되지 말고 평소대로 운동만 열심히 하자고 생각했습니다. 다행히 이걸 계기로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것 같아요. 퇴출 위기를 겪으면서 국제레슬링연맹에서도 룰을 공격적으로 많이 바꾸었어요. 좀 더 재밌게 관중들이 볼 수 있도록 만들려고요. 2분 3회전 세트제에서 3분 2회전 총점제로 바꾸었는데 그런 룰이 우리한테도 더 유리할 것 같습니다.

3분 2회전 총점제가 어떤 면에서 우리 선수들한테 유리하다는 거죠?

사실 레슬링은 유럽 선수들한테 유리한 종목입니다. 워낙 체격 조건이 좋으니까요. 한국 선수들은 그 부족함을 채우려고 체력 지구력 그런 쪽으로 훈련을 엄청 해요. 그래서 후반으로 갈수록 우리는 안 지치는데 상대 선수는 지치는 게 보이지요. 그러니까 한 회전의 시간이 길수록 우리한테 유리한 거예요. 하지만 솔직히 우리는 룰이 어떻든 거기에 맞춰서 하기 때문에 어떤 룰이든 다 오케이예요.(웃음) 훈련을 그만큼 하니까요. 체력적인 열세를 극복하고 우리나라가 레슬링 강국이 될 수 있었던 것도 강도 높은 훈련 덕분입니다. 우리나라 선수들이 정말 대단한 건 아무리 혹독한 훈련일지라도 다 따라갈 수 있는 정신 상태가 되어 있다는 점이에요. 깡다구 악바리 정신으로 해내는 거죠.

김현우 선수는 속칭 ‘만두귀’라 불리는 귀를 가지고 있다. 훈련을 하며 몸과 몸이 자주 부딪치고 바닥에 쓸리는 일이 많다 보니 핏줄이 터지고 연골이 망가지면서 찌그러져버린 귀, 그런 귀는 고된 훈련과 강한 의지를 말해주는 레슬링 선수들의 훈장이기도 하다.

중학교 때부터 레슬링을 시작한 김현우 선수는, ‘레슬링 신동’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어릴 적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주니어 국가대표로 2006년 아시아주니어레슬링선수권 금메달, 세계주니어레슬링선수권 은메달을 따는 등 승승장구하지만, 20살 허리 부상으로 2008년 베이징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하게 된다. 그 후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에 대표 선수로 참가하지만 2회전 탈락의 고배를 마시게 되고, 김현우 선수는 그 시기를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힘든 때였다고 말한다.

2013년 9월, 헝가리에서 열린 2013세계레슬링선수권대회 그레코로만형 74kg급 결승전에서 로만 블라소프(러시아)를 2-0으로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다. 블라소프는 3년간 세계 최강을 지켰던 선수. 김현우 선수로서는 66kg급에서 74kg급으로 체급을 올린 직후라 적응하기도 어려운 상태에서 우승을 했다는 점에서 더 화제가 되었다.

그 힘든 시기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궁금합니다.

2010년에는 진짜 준비를 많이 해서 나갔는데, 딱 지고 나니까 요즘 말로 완전 멘붕인 겁니다. 시합 끝나고 나와서 몇 시간을 밖에 앉아 있었어요. 눈물이 나면서 ‘열심히 해도 나는 안 되나?’ ‘레슬링 그만둘까?’ 그런 생각까지 하고 있는데 그때 김인섭 코치님이 오시더니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니가 여기서 밑바닥 쳤으니까 이제 올라가는 일만 남았다. 더 내려갈 곳이 없으니 열심히만 하면 돼. 나만 믿고 따라와. 2년 뒤에 꼭 금메달 따게 해줄게.” 듣는 순간 딱 안심이 되더라고요. 코치님에 대한 믿음이 있으니까. 그때부터 런던올림픽만 바라보면서, 운동할 때도 레슬링, 잘 때도 레슬링만 생각하면서 레슬링에 미쳐서 살았어요. 가장 큰 슬럼프를 코치님 덕분에 제일 빨리 나오게 된 거죠. 지금도 코치님한테 너무 감사해요. 지금 생각해보면 2008년에는 올림픽 나갔다고 해도 메달을 못 땄을 거 같아요. 그때는 그만한 간절함이 없었거든요.

여러 실패들을 통해 얻은 교훈이 있다면요?

광저우아시안게임을 준비하면서는 너무 긴장돼서 몇 달 전부터 불면증도 오고 그랬어요. 큰 시합은 처음이다 보니까 너무 떨리고. 그 마음을 컨트롤하지 못해서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상대에게도 진 겁니다. 다시 그런 실수 하지 말아야지 했지만 마음을 컨트롤하기란 쉽지 않잖아요. 그게 또 결과에 너무 욕심을 부리니까 불안하고 정작 중요한 순간에 집중을 못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그런 생각을 했어요. 시합이고 뭐고 생각하지 말고 훈련에만 집중하자. 그러면 당연히 실력도 좋아질 거고, 대회 때는 그대로만 하면 된다. 그리고 늘 긍정적으로 난 금메달 딸 수 있어, 그 정도 실력 있어, 그렇게 생각했더니 불안하지가 않은 거예요, 잠도 잘 오고요. 땀은 정말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 자기가 노력한 만큼 결과는 나온다는 걸, 그런 과정을 통해 알게 된 거 같아요.

레슬링을 하게 된 걸 후회한 적은 없었나요?

없었어요. 제 운명이었다고 생각하고. 솔직히 처음에 중학교 들어와서는 쫄쫄이 입고 운동하는 게 창피하고, 맨날 귀 찌그러져 있는 것도 힘들었거든요. 그런데 점점 커가면서는 없어지더라고요. 우리 중학교 은사님이 그 당시 우리들한테 정말 태릉선수촌에서 훈련하는 것만큼 빡세게 시키셨어요. 그때는 엄청 힘들었는데 지나고 보니까 그때 코치님이 계셨기 때문에 지금까지 레슬링을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레슬링이라는 게 재밌는 운동은 아니에요, 너무 힘드니까. 하지만 자유로운 기술이 구사된다는 굉장한 매력도 있습니다. 제 경기는 그레코로만형이어서 잘 모르시는 분들은 따분할 수 있는데, 자유형 경기는 기술이 화려하고 역동적이어서 딱 봐도 멋있거든요. 앞으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레슬링의 매력을 알 수 있게끔 묵묵히 역할을 하고 싶어요.

1935년 전후 일본에 가 있던 유학생들에 의해서 소개된 레슬링. 한국에 레슬링 경기가 본격화된 것은 해방 이후의 일이다.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레슬링 붐이 일기 시작했고 레슬링 인구도 서서히 증가했다. 레슬링에는 자유형과 그레코로만형 두 종류가 있는데, 자유형은 온몸을 이용하여 경기를 펼치는 데 반해 그레코로만형은 공격 때 발을 사용할 수 없고 또한 허리 이하를 공격할 수 없다. 이 방식은 19세기 초 프랑스에서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전통적인 레슬링 경기를 모방한 데서 유래했으며, 김현우 선수도 그레코로만형 선수이다.

열심히 운동하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레슬링 하면서 정말 많이 갖게 된 게 인내심이에요. 정말 간절하게 금메달을 갖고 싶으니까 뭐든지 참게 되더라고요. 놀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거, 훈련 힘든 거. 힘들었지만 목표가 확실하고 간절히 원한다면 다 견딜 수 있는 거 같아요. 그러니까 자기가 하는 것, 레슬링 선수면 레슬링, 유도 선수면 유도만 생각하면 좋겠어요. 그러다 보면 즐기게 되고, 즐기면서 하다 보면 금메달도 따게 됩니다.

2014년 9월에 있을 인천아시안게임을 준비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그 외에 계획이 있다면요?

아직 무슨 계획을 말하는 건 시기상조 같습니다. 지금은 인천아시안게임만, 또 거기 나가려면 국가대표가 돼야 하니까, 대표 선발전만 보고 있어요. 올림픽, 아시아선수권, 세계선수권에 이어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도 금메달을 따면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게 되니까 열심히 해야죠. 다음 올림픽 금메달에 대한 계획을 묻는 분도 있지만, 먼 미래보다는 지금 바로 앞에 있는 것들에 집중할까 합니다.

심권호, 정지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들을 보며 그들처럼 되고 싶다는 꿈을 꿨던 소년 김현우. 이제 아이들은 김현우 선수처럼 되기를 소망하며 레슬링을 선택한다.

“진인사 대천명. 사람으로서 할 일을 다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

레슬링을 해오면서 이런 좌우명이 저절로 생기게 되었다는 김현우 선수. 그에게 참 잘 어울리는 좌우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땀 흘린 자만이 하늘의 뜻도 기다릴 자격이 있지 않겠는가. 그의 성취가 더욱 값진 이유는, 그 과정이 그만큼 진실했고 간절했기 때문이다. 순간의 성취를 이룬 자는 많다. 하지만 그 성취가 오래도록 빛나게 하기 위해서는 하늘을 감동시켜야 한다. 어떻게 감동시키냐고? 레슬링 김현우 선수처럼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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