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일강가에

아프리카 우간다의 빅토리아 호수에서 발원하는 백나일강과 에티오피아의 타나 호수에서 발원하는 청나일강이 하나로 만나 흐르는 땅, 누비아사막의 땅, 수단Sudan. 나일강은 누비아사막을 굽이굽이 적시며 이집트와 지중해를 향해 흘러간다. 이런 막막한 누비아사막 곳곳에 씨 뿌리고 경작하고 노래하며 대를 이어온 사람들이 있다. 거대한 모래 폭풍인 하붑이 지나가고 나면 농토는 낙타 발바닥처럼 쩍쩍 갈라지고 그동안의 수고는 물거품이 되지만, 농부들은 원망도 불평도 없이 논밭에 쌓인 모래를 거둬내고 다시 씨앗을 뿌린다. 주어진 한계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라는 듯이…. 사진 & 글 박노해

나 여기 살아 있다

Old Dongola, Nubian, Sudan, 2008.

모래 바람을 뚫고 살아남았다. 사막의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나를 지켜줄 것은 작은 흙담 하나. 그마저 하붑이 쓸어가 버렸어도 나는 이 자리에서 뿌리를 내려가며 끝내 푸른 잎을 휘날리리라.

나일강가의 저녁 기도

Old Dongola, Nubian, Sudan, 2008.

나일강에 붉은 석양이 내리면 수단 사람들은 저문 강에 얼굴을 씻고 네 번째 기도인 마그립을 올린다. 자신이 가야 할 곳이 어디인지를 아는 나일강처럼 나 또한 나의 길을 굽힘 없이 흘러가리라 다짐하면서. 모래에서 태어나 한 줌 모래로 돌아가는 인생을 신의 뜻대로 선하고 의롭게 살아가겠노라고.

엄마의 손

Old Dongola, Nubian, Sudan, 2008.

우리에겐 힘든 시간을 걸어온 정직한 두 발이 있단다. 우리에겐 어둠 속을 뚫고 나온 빛나는 두 눈이 있단다. 막막한 사막의 모래바람 속을 걸을지라도 아이야, 네 손을 꼭 잡은 엄마의 믿음의 손이 있단다.

노을녘에 종려나무를 심는 사람

Old Dongola, Nubian, Sudan, 2008.

누비아사막에 석양이 물들면 하루 일을 마치고 종려나무를 심는다. 뜨거운 모래바람이 치면 말라 죽고 다시 심으면 또 말라 죽어가도 수단 사람들은 날마다 모래 둑을 북돋고 나일강 물을 길어다 종려나무를 심어간다. 이름 없는 사막의 수행자처럼.

뜨거운 하붑이 지나가면

Karima, Nubian, Sudan, 2008.

거대한 모래 폭풍인 하붑이 지나가면 농부들은 논밭에 쌓인 모래를 거둬내고 말린 낙타 똥을 빻은 거름을 뿌린 뒤 나일강 물을 끌어와 씨앗을 뿌린다. 주어진 한계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해 분투하는 것이 자신의 할 일이라는 듯이.

박노해님은 1957년 전남 함평에서 태어나 1984년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을 출간하며 ‘얼굴 없는 노동자 시인’으로 알려졌습니다. 2000년 ‘생명 평화 나눔’을 기치로 한 사회운동단체 ‘나눔문화’를 설립했으며 2003년 이라크 전쟁에 뛰어들면서 중동, 아프리카 등 세계 분쟁 지역을 돌아다니며 평화 활동을 이어왔습니다. 저서로는 <사람만이 희망이다>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등이 있으며, 글로벌 평화나눔 사진전 <나일강가에>가 2013년 7월 12일에서 11월 13일까지 라 카페 갤러리(www.racafe.kr)에서 열립니다. (무료 관람)